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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그라운드 May 07. 2019

삶을 공유하는 곳, 디웰하우스

임하영

FRAME은 체인지메이커들의 코워킹 커뮤니티 헤이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브랜드입니다. '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담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매우 진지했던 나는 십 대 후반에 지나치게 진지해지는 것도 모자라 스무 살이 되자 걷잡을 수 없이 진지해졌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 데 대한 충격과 위기의식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늘어졌고, 1년이라는 지난한 고민 끝에 결국 독립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으니, ‘어디서 살 것인가’, 그리고 ‘누구와 살 것인가’ 같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줄줄이 튀어나왔다. 다소 막막했지만 그래도 처연히 앉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고민을 지속하던 와중, 맞은편에 앉아있던 선량한 누군가가 디웰하우스에서 새로운 입주민을 뽑는다는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이하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고, 그렇게 나는 파주시 교하읍 연다산리를 떠나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살게 되었다.

 디웰하우스는 ‘체인지메이커들을 위한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그렇게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그렇다면 체인지메이커는 누구일까? ‘사회 문제에 깊이 공감하고, 새롭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나가는 이들’이라고 역시 홈페이지에 적혀 있다. 정말이지 멋있는 문장이다. “그러면 잠깐, 디웰에 사니까 너도 체인지메이커니?”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솔직히 조금 부끄러울 것 같다. 그래서 먼저 선수를 썼다. 반상회 자리에서 은근슬쩍 식구들에게 물어보았다. 다들 조용히 와인을 삼킨다. 역시 예상대로군.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일까? 도대체 왜 여기에 모여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를 한데 엮는,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체인지메이커라는 공통분모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고자 ‘체인지메이커의 정체를 찾아서’ 프로젝트를 발족시켰다. 물론 혼자서 조용히. 디웰하우스 2호점 거실 건너편 10.5㎡짜리 방 한 편에 쪼그리고 앉아서.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식구들이 각자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한 분은 평소에 수학 논문을 쓰다가 틈만 나면 서울숲을 달리고, 또 한 분은 서점에서 큐레이션을 담당하며 주말마다 힙합 공연을 찾아다니고, 다른 한 분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밤늦게 퇴근하지만 종종 곱창을 먹으며 삶의 위안을 찾는 등 저마다 독특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탐구를 계속한 결과 나는 모두에게서 두 가지 공통점을 찾아냈다. 겉모습이 아무리 달라도,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 발견할 수 있는 특징 말이다. 유레카!

무엇보다 먼저, 디웰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 가볼 수 있는 장소, 해볼 수 있는 경험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여기에 머무르며 안주할 경우 평생 세상의 일부밖에 보지 못한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 테두리를 확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나의 삶의 경계를 의식적으로 넓혀야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 있기에. 그래야 그들을 위해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면, 굳이 집을 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레 관성적인 삶의 자장을 벗어나게 된다. 종종 거실 흔들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2차 대전 당시 미국 통계학자들이 어떻게 전투기 격추를 막았는지에 대한 기이한 이야기를 듣는다. 윗집 누군가의 영향으로 박재범의 음악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고, 치앙마이 한 달 살이 무용담을 들으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작년 가을에는 옆방 누군가의 꼬드김으로 10k 마라톤 대회에 등록했다. 물론 발목이 접질리는 바람에 뛰지는 못했지만. 혼자 살았다면 상상도 못 했을 유쾌한 자극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디웰 사람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신을 지켜낸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사회를 바라보는 나의 따뜻한 시선을 지켜낸다. 사실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숱한 난관과 어려움에 생채기를 입다 보면 어느새 냉소하고 주저앉을 수도 있다. 세상을 비관할 이유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많다. 그럼에도 세상과 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꿋꿋이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비슷한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그저 분주하게 살다가도, 선택의 기로를 마주할 때면 이들의 존재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길을 택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뭐 하려고?” “이제 제도권으로 진입할 때도 되었잖아.” “그것은 순서가 틀렸어.” 이 모든 어려움을 나보다 먼저 헤쳐나간 선배들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틈틈이 응원의 한 마디를 건네준다. 소파에 앉아 넋을 놓고 듣다 보면 어느덧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비몽사몽 침대에 몸을 눕히며 생각한다.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이면 세상은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체인지메이커의 정체를 찾아서’ 프로젝트는 이렇게 또 혼자서 조용히 끝을 맺었다. 물론 쉐어하우스에 산다고 해서 하루하루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삶은 분주하고, 일상은 그대로이며, 불편함 점도 없지 않다. 갈등은 왜 없겠는가. 때로는 혼자 사는 것이 더 편할 듯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이곳이 특별한 이유를 찾자면, 바로 사람들이다. 단지 집뿐만 아니라 삶을 공유하는 식구(食口). 나는 식구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다. 함께 울고 웃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또 오늘을 살아낸다. 사회로 나가는 첫걸음을 디웰과 함께 내딛을 수 있어 얼마나 행운인지. 부디 우리 함께, 뚜벅뚜벅,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Writer 임하영 - 책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썼다. 체인지메이커를 위한 공유 주거 커뮤니티 디웰하우스에 거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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