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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그라운드 May 07. 2019

누군가는 남겨야 하는 일

다큐멘터리 <편안한 밤> 감독 이준용 인터뷰

FRAME은 체인지메이커들의 코워킹 커뮤니티 헤이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브랜드입니다. '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담습니다.


Editor 김와이 황단단 / Photo 강희주


 나는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를 좋아한다. 제품이 좋기도 하지만, 소비자로서 이왕 누군가의 돈을 벌게 해 주어야 한다면 파타고니아 같은 브랜드가 돈을 벌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적어도 그 돈을 안 좋은 일에 쓰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준용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 영상 작업을 문의해 오면 앞으로는 그를 소개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최근 <편안한 밤>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부산 영화제 초청을 받아 다녀온 이준용 감독을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났다.



<편안한 밤> 작품 소개 간단히 부탁드려요.

제목처럼 ‘밤'에 대한 이야기예요. 장위동 철거사업의 마지막 철거민 조한정님(이하 주인공)을 실제 철거가 이루어지기 전날 밤에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어요. 자본이 어떻게 사람을, 공간을, 그리고 거기 얽힌 기억과 정서들을 밀어내는가 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죠. 저로서는 관객들에게 내보인 첫 작업이기도 해요.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를 고르셨어요.

철거, 젠더, 노동과 같은 주제는 사실 한국 다큐씬에선 전통적인 주제예요. 특히 철거는 한국 독립다큐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다뤘고요.

우리가 사는 도시공간 안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다루기 쉽고 어렵고 여부를 떠나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큐씬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따로 있나 봐요.

인디 다큐 영화제 같은 것 하면 다 모이는 정도의 규모예요. 크지 않죠. 그러다 보니 품앗이 형태로 작업을 많이 해요. 제가 다른 친구의 B팀(보조 카메라)을 한 번 해주면, 그 친구가 제 작업을 한 번 도와주는 거죠. 보통 독립다큐 예산으로는 스탭들을 쓰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이번 영화 찍으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다큐는 영상으로 남기는 기록이고, 주인공의 집을 계속 영상에 담아야 하는데 진입하는 것부터가 어려웠어요. 사유지라고 못 들어가게 막는 용역분들과 계속해서 실랑이를 벌여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정말 심했죠. 


섭외도 쉽지는 않았죠?

처음에는 인물을 중심으로 할지, 공간을 중심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저와 동료들이 함께 철거 반대 운동을 하는 연대자이기도 했어서 주인공의 집에서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했는데요. 어느 날 주인공이 밤이 되면 참 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말이 신기해서 이건 인터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목이 된 거군요. 그런데 진짜 왜 밤이 편하다고 하셨을까요?

이전에 용산이나 상계동 올림픽 철거 때는 밤낮없이 폭력적이었다고 해요. 지금은 용역업체나 건설사 쪽에서 많은 것들을 의식해요. 최대한 법 안에서 집행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어. 용산 참사의 기억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각인되어 있고, 혹시라도 인명피해가 생기거나 하면 그들 입장에서는 일이 더 힘들어지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주인공의 ‘편안한 밤'은 굉장히 상대적인 거죠. 그가 겪은 낮이 너무나 소모적이니까, 상대적으로 밤이 편안하다고까지 느껴지는 것이었겠죠. 일반 사람들에게는 아주 힘든 밤일텐데도요.



처음 영화 소개하실 때, 물리적인 공간만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이 작품에서 꼭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기도 한데요. 그 집에 88년도에 심고 주인공이 돌봐 온 감나무가 있어요. 철거가 임박하고 상황이 촉박하게 돌아가니 주인공보다 감나무가 먼저 버티지 못하고 말라죽었어요. 철거촌에는 유기묘나 유기견들이 굉장히 많이 모여들기도 해요. 철거라는 행위가, 단순히 그곳에 물리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에요. 그곳을 이루던 하나의 생태계, 그리고 그 생태계 안에서의 각자의 기억과 추억들을 함께 밀어버리는 거죠. 편의를 위해 밀어 없애버리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번 영화 찍으면서, 집이나 주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서울의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이 집을 지을 때도 누군가는 여기서 밀려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엔 누구의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한국 사회에서 브랜드 아파트라는 것은 아주 평범한 욕망이 되었잖아요. 건설자본과 서울시가 어떻게 이 작업들을 해 나가는지 보게 되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이렇다 할 답을 내린 건 없지만요.


이번 작품으로 처음 관객들 앞에 섰어요. 어땠나요?

아시아나 국제 단편영화제 때 첫 상영을 하고, GV(게스트 간담회)때 주인공에게 마이크를 돌렸어요. 제 이야기는 작품에서 다 보여줬으니까요. 주인공이 직접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하는데, 영화는 비극이었지만 저는 그 순간에 쾌감을 느꼈어요. 이건 다큐멘터리만 가능한 방식이잖아요. 실제 영화 속 주인공이 그 삶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요. 종종 극영화 연출도 할 거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이 점 때문에 아마 저는 계속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안에 머물 것 같아요. 물론, 극영화는 잘할 자신도 없고요. (웃음)


다큐를 찍기 위해 생계유지로는 다양한 작업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다큐는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기 힘든 장르예요. 촬영감독들의 카페에 올라오는 알바, 브랜드 영상, 지인 작업의 보조 등 다양한 일을 해요. 다큐 감독이 되기 전에는 직업이 벌이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막연한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본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가 실재하고, 다큐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다큐 작업을 할 때와 생계를 위한 작업을 할 때 마음가짐은 어떻게 다른가요?

둘 다 저한테는 신성한 작업이에요. 돈을 받는 작업을 할 땐, 제가 뭐라고 제가 찍는 영상에 돈까지 주나 하는 마음이 들어요. 감사하죠. 반대로 다큐를 찍는 건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이에요. 어떻게 보면 돈을 받는 작업을 통해 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작업을 이어가는 건데요. 저희끼리는 ‘카메라 방향바꾸기'라고 불러요. (웃음)

예술과 노동 둘 다 저에게는 필수이고, 밸런스를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용산참사 이후 철거 지역에서 좀 더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어요. 어쩌면 사회적으로 점점 더 그런 분위기들을 만들어내는 역할의 한 지점에 다큐멘터리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용산참사는 워낙 사안이 커서 메이저 저널리즘이 깊이 관여했어요. 하지만 세상에는 저널리즘 카메라가 다루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있어요.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다루어야 한다고 믿어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볼 수 있는 형태, 즉 이야기의 형태로 보여주는 작업이 다큐 만드는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약자들이라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계속해서 다큐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여러 분야에서 유튜브가 촉발하는 엄청난 변화들이 있어요. 다큐 감독들에게는 어떤가요?

내부에서 매우 뜨거운 이슈죠. 선배 감독들이 술자리 오면, “어떡할래?”라는 말을 많이 해요. 5년 동안 공들여서 만든, 개인적으로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극장판 작품에 1,800명 남짓의 관객이 들어요. 반면 제가 얼마 전 시사in과 대림동 한 달 살기 작업을 해서 올렸는데 조회수가 2만 정도 나왔어요. 다큐의 목적이 관객들에게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는 이야기를 전하는 거라면, 어느 매체가 더 그 목적을 잘 이룰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거죠. 그런데 매체의 파급력에 대한 고민만은 아니에요. 유튜브나 페이스북은 파급력은 있지만, 대중성의 극에 있기도 하잖아요. 여기서 작가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나 하는 고민도 함께 있는 거고요. 개인적으로는, 다큐가 뉴미디어에서 적극적으로 실험을 해야 한다는 쪽이긴 해요.


개인적으로는 공감되는 의견이네요. 차기작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구로공단의 해고 노동자들 이야기예요. 제가 몰랐던 세계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저한테는 스트레스이면서도 재미있는 작업인 것 같아요. 핸드폰 공장의 중년 여성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모두 해고되었어요.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만지는 핸드폰의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점, 그리고 구로공단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잘 엮어서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해요.


아무래도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작업을 많이 하는데, 에너지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나요?

특별한 방법이 있지는 않고요. 밝은 영화를 보거나 다른 일들을 많이 해요. 그 감정에서 자꾸만 빠져나왔다가 다시 작업에 들어가려고 하고요. 그래야 지속 가능한 것 같아요. 무겁지 않은 분위기의 촬영 알바를 하고 나면 또 기분이 좀 나아지기도 하고요. (웃음)



자기만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기죽지 말자는 말이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위대한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믿어요. 그러니까 돈이 안 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너무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성취 차원에서는 저도 이제 겨우 영화제에 한 편 출품한 것이 다지만,(웃음) 자신이 잘 모르는 세계에 뛰어들어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에게 초점을 맞춰서 출품하던 2년 동안은 저도 계속 낙방했거든요.

기죽지 말고,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 보는 것, 저한테는 이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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