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연
FRAME은 헤이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브랜드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특유한 시선들'을 담습니다.
사실 언제부터 식물을 좋아하게 되었냐는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릴 때 했던 수많은 방학숙제 중에 식물 관찰일기가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숙제였던 것을 보면 어릴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싶긴 하다. 그 이후에는 구체적인 장래희망을 결정하는 고등학생 때부터 특별한 이슈 없이,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간 곳이 조경학과였다. 졸업 즈음 친구들이 설계와 시공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 때, 나는 국립수목원 인턴을 택했다. 수목원에서 겨울, 봄, 여름을 보내며 식물을 매일 들여다보던 그때가 내겐 너무나 값진 경험이었다. 조경학도일 때엔 식물을 보고 만지는 기회는 별로 없이 열심히 그림만 그렸으니까. 그 후로도 조경을 좀 더 배우고 싶어 대학원과 연구원을 다녔다.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배우고 경험하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좀 더 명확해졌다. 결국엔 식물을 직접 만지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이 식물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퇴사 1년 후, 어쩌면 무모하게 위드플랜츠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하면서 살아서 너무 좋겠다.’ 위드플랜츠를 하면서 적잖이 들어온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며 손사래를 치기도 하고, 때로는 내심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분명 많은 직업인들이 듣지 못하는 말이니까.
하지만 사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의 당혹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업 초기, 모든 시행착오를 어마어마하게 거치고 있을 때,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하잖아. 대단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좋아하는 일?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모든 결정과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는 것이었고, 이렇게 무거운 중압감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세상에 혼자 발가벗겨진 채로 놓여있는 기분이었고 휴일 없이 일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그 질문에 좋아하는 일을 해서 좋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지켜오고 있는 일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초기에 비해 마음의 여유는 조금 더 생기게 되었다. 일 년 365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식물을 만지며 사는 일을 7년째 하다 보니 해가 갈수록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다. 식물에 대한 진짜 공부도 물론이거니와 부지런해지는 습관, 인내하는 마음,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꿀팁 같은 것들이 소소해 보이지만 아주 크게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두 식물과 함께 하면서 얻은 소중한 산물들이다.
식물을 만지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에 무모하게 덤벼들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때에도 그 모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좋아하는 일이 식물이라서 식물이 주는 에너지를 항상 받고 있었던 것이 내가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견디고,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식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포인트이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사는 식물은 없다. 움직이지 않을 뿐, 식물은 그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다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는 식물도 많이 보았고, 나의 관심으로 살아나는 식물도 많이 보았다. 잘 키우고 있었는데 잠깐 소홀한 사이 시들어가는 식물을 보면 안타깝고, 때로는 배신감마저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 내 탓이니,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얼른 훌훌 털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죄책감은 들겠지만 너무 쳐져있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식물을 더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과정이니까.
식물을 업으로 삼는 일이 고된 육체노동을 동반하기도 하고 식물이 시들거나 죽게 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하는 일이라 아름다운 일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식물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오는 행복감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아주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많은 식물을 죽이고 많은 식물을 살리며 식물과 함께 하는 삶을 사람들에게 권유한다.
Writer 권지연 - 성수동의 조경 디자인 스튜디오 위드플랜츠(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책 <오늘부터 우리 집에 식물이 살아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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