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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그라운드 Apr 23. 2019

하고 보는 김다인

FLRY 김다인 대표 인터뷰

FRAME은 헤이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브랜드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특유한 시선들'을 담습니다.


Editor 김와이 황단단 / Photo 강희주


 나는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고, 그런 점이 스스로 못마땅할 때가 많다. 회사 동료들을 통해 김다인의 ‘빠른 실행력'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독감에 걸린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이들은 늘 참 부럽다.


지금 하고 계신 일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사단법인 리플링이라고 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FLRY(이하 플리)와 어니스트 플라워라는 두 개의 브랜드가 있는데, 플리는 2016년부터 플라워 리사이클링이라는 컨셉으로 시작했어요. 결혼식 등에서 버려지는 꽃들을 유의미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해서, 결혼식에 쓰고 버려질 꽃들을 기부받아서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 미혼모 주거 시설 등에 가져다줘요. 지금은 이를 넘어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고요. 꽃을 매개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사회문제를 환기시키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요.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꽃이 아주 좋은 수단이라고 믿어요.


어니스트 플라워는 어떤 서비스인가요?

비영리 사단법인이 지속 가능하려면 후원을 받거나 수익사업을 해야 하는데, 저희는 수익사업을 함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어니스트 플라워는 작년 5월부터 시작한 온라인 플라워 택배서비스예요. 다른 서비스들과는 다르게 농장에서 직접 포장해서 소비자한테 바로 보내줘요. 플리가 꽃의 유통에서 마지막 버려지는 단계에 집중했다면, 어니스트 플라워는 꽃의 가장 처음, 생산자들에게 집중한 브랜드죠. 


플리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인데, 꽃 온라인 배송은 그렇지 않아요. 어니스트 플라워의 가장 큰 차별점은 뭘까요?

농장 직거래라는 점이요. 모든 꽃집에서 택배서비스를 하지만, 생산자가 바로 보내는 경우는 제가 알기로 국내에는 없어요. 생각보다 어려운 모델이거든요. 미국의 The Bouqs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Farm-to-Table이라는 이름의 비슷한 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우연히 충남 태안 화훼단지에서 협업 제안이 왔고, 논의가 잘 진행되어 시작할 수 있었어요.


농장에서 직배송해주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보통은 농장에서 일반 꽃 소매점에 오기까지 3-7일 정도 소요되는데, 저희는 농장에서 가장 신선한 상태로 24시간 안에 소비자한테 배송이 돼요. 그리고 생산자가 자신의 얼굴 스티커를 붙여서 보내니까 품질도 최대한 신경을 써요. 

또 다른 점은, 재료 상태 그대로 배송이 된다는 거예요. 이건 고객들마다 조금 호불호가 있긴 한데, 저희는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감자라는 식재료랑 비교해보면, 감자는 생산자가 직접 트럭에서 팔 수도 있고, 식당에 팔기도 하고, 마트에 팔기도 하잖아요. 소비자 입장에서도 조리된 것, 날 것 다양한 형태로 소비가 가능하고요. 꽃도 더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는 문화가 생길 수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꽃산업도 그래야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나라 꽃 소비는 특별히 더 저조한 편인가 봐요.

시장이 아주 작아요. 그나마도 우리나라는 경조사 용도가 7-80%에요. 일상 소비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정도죠. 외국은 일상 소비가 아주 많아요. 일주일에 한 번씩 마트에서 사서 갈아주는 경우가 많아요.


추세는 어떤가요?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나무들은 많이 팔린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꽃은 새로운 소비 시도는 있는데 여전히 일상재로 자리 잡는 건 시간이 걸릴 거예요. 아직은 사치재에 가깝죠. 그래도 요즘 투자사나 대기업들이 꽃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긴 해요. 이 시장에서 혁신이 나올 수 있다고 보는 거죠. 대부분의 플로리스트들이 꽃을 사는 큰 시장이 두 곳 있는데, 여전히 수기 영수증만 쓸 정도로 정체되어 있는 산업이거든요.


플리에서 진행했던 여러 캠페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보통은 결혼식에서 사용한 꽃을 기부받는 것을 주로 하는데, 저희가 직접 결혼식 자체를 선물한 적이 있어요. 홀트 장애인 복지회의 장애인 두 분의 결혼식이었죠. 저희 봉사자들이 꼭 하고 싶어 한 일이었어요. 예전에 디웰에서 알게 된 웨딩드레스 사업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재능기부를 해 주셨고요. 결혼식에 썼던 꽃들은 일산 복지타운에 기부했어요. 여러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멋진 결혼식을 선물할 수 있어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김다인님 소장 웨딩기프트 사진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특별히 많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어머니가 30년 넘게 봉사 활동을 하고 계신데, 초등학생 때부터 자연스럽게 쫓아다녔어요. 제 전공이 경영학인데, 많은 친구들이 돈이나 좋은 커리어에 매몰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그건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스스로 어떤 순간에 행복한지 자주 떠올리려고 했죠. 10년 전쯤 졸업을 했는데 그땐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 벤처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때에요. 탐스 슈즈 같은 회사를 보면서 막연하게 언젠가는 저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정도죠.


그런데 커리어 시작은 경영 전략 컨설팅으로 하셨어요.

그때는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스타트업이 많을 때도 아니었고요. 우선은 저의 무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컨설팅 회사에서 많이 배우고 좋은 경험도 많이 했는데, 아주 오래 있지는 못하겠다고 느꼈어요. 모두가 특정의 비슷한 목표를 보며 미친 듯이 달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성장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나요?

무엇이 주어져도 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요. 사람이 못하는 일이 어딨겠나 하는 생각. (웃음) 정말 어떻게든 시간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곳이니까요. 무모한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고 그게 지금도 도움이 돼요.


그다음 선택이 비영리 법인인 루트임팩트였죠?

네. 5년 정도 하고 나니 컨설팅을 계속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MBA를 가야 할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해 볼지 고민했어요. 제가 다녔던 회사에는 익스턴십이라고 해서, 다른 회사에서 2년 일하고 나서 다시 받아주는 제도가 있었거든요. 그때 비영리 기관도 알아보고,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도 만나봤어요. 루트임팩트는 비영리이면서 스타트업이기도 했고, 허재형 대표와도 첫 직장에서의 연이 있어서 합류하게 됐죠. 팀원들이 모두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는 점도 참 좋았어요.


루트임팩트에선 어떤 일을 하셨나요?

루트임팩트가 초기일 때 2년 반 정도 일했어요. 따로 포지션이랄만한 것도 없었죠. 한창 사회적 기업들에 대한 스터디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때였어요. 청소년 진로 잡지를 도와주기도 하고, IT 대기업의 소셜 공모전을 함께 기획하다 중단되기도 했죠. 그러다 나중엔 성수동이 소셜벤처 타운이 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아주 초기 기획과 지금은 신촌 살롱이 된 디웰 살롱의 오픈과 운영도 했어요.


경영 컨설팅과 비영리 법인, 간극이 컸을 것 같아요.

일하는 방식이나 문화 차이가 컸어요. 컨설팅은 아무래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어느 정도의 틀이 있어요. 5년 동안 그 틀 안에서 일을 했는데, 그 틀을 깨는데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아요. 컨설팅 회사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에 극도의 효율을 추구해요. 퍼포먼스와 속도 경쟁이죠. 그 당시 루트임팩트는 일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오래 했던 것 같아요. 더 깊이 계속 파고들면서 답을 찾아가는 방식에 가까웠죠. 각각의 장단이 있다고 봐요. 루트임팩트에서 배운 것도 많았고요. 다만 시기적으로 한 켠에는, 실행에 대한 갈증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갈증이 창업으로 이어진건가요?

플리를 전업으로 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당시 루트임팩트 동료였던 강보라 매니저(현 루트임팩트 사외이사)와 떡볶이를 먹다가 해외의 버려지는 꽃 기부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바로 지인의 결혼식에서 파일럿으로 실행을 했어요. 처음엔 결혼식 꽃 기부만 하는 프로젝트라 주말에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이 가능했죠. 그러다 프로젝트가 스브스 뉴스 페이스북에 소개되면서 봉사자들이 많아지고, 함께 하던 강보라 매니저가 해외로 가게 되면서 결정을 해야 할 시기가 왔어요. 그즈음 첫 회사에서도 복귀 제안이 와서 고민을 하던 시기였는데, 아무래도 플리를 이대로 접기는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덜컥 전업으로 시작하게 됐죠.


플리는 완전히 비영리 프로젝트인데,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했나요?

1년 동안은 아예 수입이 없이 버텼죠. 그러다 다행히 2017년에 구글 임팩트 챌린지에 선정되면서 상금을 받았어요. 그때 상금을 받지 못했다면 아마 지속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직원과 대표의 업무 간극도 매우 컸을 것 같아요.

허재형 대표의 마음을 너무 잘 알겠더라고요. 왜 평소에 그렇게 허대표에게 불만만 이야기했을까 하는 반성도 좀 했고요. (웃음)

직원들의 월급을 걱정해야 하고 일의 영역도 아주 작은 의사결정부터 큰 것까지 다 해야 하는 자리더라고요. 그중에도 저는 조직을 이끌어가는 일에 대한 어려움이 가장 컸어요. 구성원으로서 일을 잘하는 것과 조직을 끌어가는 것은 너무 다른 영역이더라고요. 제가 누군가를 만나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은 여전히 컨설턴트의 스타일이 남아 있는데, 이게 리더의 방식으로는 전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어요. 저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해 오던 분들과 조율하고 맞춰나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결국 사람이 제일 힘든 거죠.



슬럼프는 없으셨어요?

작년이요. 제일 힘든 1년이었어요. 육아 휴직, 파트타임 업무를 하다가 풀타임으로 복귀한 것이 작년인데요. 아이도 보면서 일을 풀타임으로 하려니 힘들었어요. 집에서 나를 종일 기다리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아이를 재우다가 잠들면 그 날 할 일을 다 못했다는 죄책감도 있고요. 어니스트 플라워 런칭하면서 이탈하는 멤버도 있었고, 정말 힘든 한 해였어요. 그래도 이제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 좀 나아졌어요.


전략 컨설팅 회사가 힘들기로 악명 높은데, 그때보다 더 힘들었나요?

작년이 훨씬 힘들었어요. 컨설팅 회사 때는 어떻게든 나 혼자 내 시간을 들여서 더 일하면 돼요. 프로젝트가 끝나면 쉬기도 하고요. 그런데 육아와 일 함께 하면 쉼이 없어요. 아마 워킹맘들은 많이들 공감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도 육아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고 자책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또 힘은 힘대로 들고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예요?

아주 소소한 순간들이에요. 아이가 어제 못하던 것을 할 때, 고객의 좋은 후기를 볼 때, 좋은 농가를 발견하고 응원받을 때 같은 순간들이요. 요즘 드는 생각인데, 보통은 워라밸을 시간의 배분으로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시간보다는 일과 삶의 각 영역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순간들이 일상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고요.


꽃과 가족 이외에 혹시 꽂힌 것 있으세요?

농구에 한동안 꽂혔다가 출산 이후에 은퇴했어요. 얼마 전에 한 번 다시 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웃음)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캠페인이 있나요?

Flower Trash Festival (부제 - 유채꽃, 다시 꽃피우다)라는 행사요! 잠깐 홍보하자면, 5월 18-19일 반포한강지구 서래섬 일대에서 진행하고요. 유채꽃 드로잉, 유채꽃 패브릭 염색, 꽃과 맥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벤트도 준비중이에요. 


김다인에게 꽃이란?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웃음) 원래 꽃을 좋아하긴 했어요. 첫 회사에 있을 때 꽃꽂이를 배워보기도 했고요. 길 가다 보면 늘 기분 좋은 것이면서, 일로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존재인 것 같아요.


취업이나 이직을 준비 중인 분들께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도 지금 제가 아주 잘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다들 자기 기준으로 사는 거잖아요? 저는 그때 그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충실하려고 했고, 지금도 후회하지는 않아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결정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순간순간 충실했던 것들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하나로 모여서 좋은 시너지로 올 수도 있다고 믿어요. 전환을 해 보거나 시도를 해 보는 것에 두려움을 덜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전략 컨설팅을 하다가 꽃을 팔고 있을 줄은 정말 상상 못 했어요. (웃음)

아, 그리고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는 누군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친구든, 동료든. 제 경우엔 남편이었어요.


남편 분을 만나게 된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제가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를 혼자 자주 갔었는데, 거기서 만났어요. 서울에 돌아와서 술을 한 잔 하다가 제가 먼저 대시했죠. (웃음) 컨설팅 다니면서 제가 알던 모든 남자들과 결이 달랐어요. 감수성이 있었어요. 페이스북에 같이 아는 친구가 아예 없더라고요. 너무 달라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플리에서 일하면 좋은 점 자랑 좀 해 주세요.

지금 플리와 어니스트 플라워 모두 채용중입니다! (웃음)

실행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생각하면서 바로 실행하는 조직이거든요. 꽃을 좋아하는 분도 당연히 좋은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믿어요. 꽃의 생산부터 소비, 처리되는 과정까지 전 과정을 함께 혁신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회사예요. 그리고 아이 키우면서 일하기 좋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김다인이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리플링은 플라워 리사이클링 브랜드 FLRY와 꽃 농장 배송 서비스 어니스트 플라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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