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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그라운드 May 21. 2019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에 대해 묻다

FRAME팀

FRAME은 헤이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브랜드입니다. '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담습니다.



가족은 어때야 한다든지 좋은 가족이란 어떤 것이다든지 이런 식의 정의를 내리지 않으려 한다. 어떤 형태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어느 가족>을 만들었다.

<어느 가족>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내한하여 가진 한 인터뷰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 말이다. 일을 하다 보면 정확한 구분, 명확한 정의 등에 대한 강박을 갖게 된다. 특히 기획을 할 때가 그렇다. 하지만 막상 기획을 실제로 적용하다 보면, 어딘가 어긋나 있음을 느낀다. 아마도 현실 세계가 애당초 명확함이나 정확함과는 무관하게 생겨먹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예술은 모호함, 판단 유보, 정의하지 않음을 담당하는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모호함을 파고들어 초월적 공감이라는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우리는 ‘거장’이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세 편을 각각 보고 느낌을 적었다.



<걸어도 걸어도> - 2009년

영화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색채를 가졌지만 긴장감과 조심스러움이 가득하다.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를 통해 혈연 가족이 가진 은근하고 미묘하게 불편한 특성을 비췄다. 


영화 속 등장하는 가족들은 큰 아들 ’준페이’의 기일을 맞아 부모님 댁에 모인다. 오랜만에 모였지만 아버지는 가족들에 대해 무심한 태도로 일관한다. 자신의 대를 이어 의사가 되고, 누군가를 구하려다 물에 빠져 죽은 큰아들 ‘준페이’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인다. 열등감, 서운함, 질투, 미움이 공존하는 가족들은 가족이기에 더욱 서로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쉽게 꺼내놓지 못한다. 어머니는 모두에게 사려 깊지만 사실 날 선 마음을 숨기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무언의 불편함은 결국 기약 없는 만남을 전하고 쓸쓸한 뒷모습만 남긴다. 


가족들은 죽은 이를 그리워하고 추모하지만 서로가 함께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른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준페이’처럼, 언제가 서로의 마지막인지 모름에도 아버지는 가족에게 무심한 태도를 보이고, 료타는 가족을 불편해하고 이유모를 권태감을 느낀다. 영화의 말미에 료타와 산책을 하며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꼭 한 발짝씩 늦는단 말이지..” 


영화를 보며 마지막 장면이 시사하는 ‘가족’에 대한 관점을 각자의 생각대로 느껴보았으면 한다. (한소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2013년

두 부부가 6년 만에 산부인과에서 서로의 아이가 바뀌었던 것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두 가지 큰 질문을 던진다. 하나는, 피(유전)와 추억(시간) 중 무엇이 더 가족을 가족으로 만드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는 의지와 돈 중 무엇이 더 부모의 자격인가 하는 것이다.

영화는 영화의 표현에 따르면 '꽤나 구식'으로, 피와 돈을 중시하는 아버지인 주인공 료타의 변화를 따라가며 원래 아버지'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깊고 묵직하게, 그리고 인위적이지 않게 짚어냈다는 느낌이다.


극 중에서 아직 어린아이들은, 경제적인 조건보다는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는 가족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건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만약, 어른의 사회를 경험하고 그 기억을 갖고 다시 돌아가서 선택을 한다면 몇이나 자연스러운 선택을 할까. 우리 사회는 얼마나 깊숙이 인위적인가. (김와이)



<어느 가족> - 2018년

많은 고레에다 감독의 팬들과는 반대로, 나는 그의 날카로운 초기작보다는 따뜻한 근작들을 좋아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느껴지는 일상의 풍요로움이나 <태풍이 지나가고>의 작은 소동극 같은 것들. 힘을 빼고 조용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통해 내 삶이 좀 더 섬세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럼에도 그 안에 스산히 드리워진 질문들이 좋았다. 이 영화도 여전히 그러하지만, 따뜻하게만 보이는 분위기의 안쪽에는 조금 더 뼈 있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이며 그 역할에는 자격이 있는가? 출산하지 않으면 엄마가 될 수 없는가? 보수적인 혈연 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우리는 ‘균열’을 얼마나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사회는 가족과 아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어디까지 해주어야 하는가? 


전작들이 가족이라는 주제를 통해 빚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가족 그 자체의 정의에 대해 정통으로 묻는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나는 한참 <이상한 정상가족>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정상가족’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그를 욕망하며 고통받는 우리들과 소외되는 ‘비’정상 가족에 대한 내용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이 책의 렌즈를 통해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마음속에 빗발쳤다.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서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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