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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그라운드 Jun 07. 2019

오늘의 이유 있는 풍경

오늘의 풍경 신인아 디자이너 인터뷰

FRAME은 체인지메이커들의 코워킹 커뮤니티 헤이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브랜드입니다. '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담습니다.


Editor 김와이 황단단 / Photo 강희주


 조명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길가의 오래된 빌딩 4층에 위치한 디자인 스튜디오 <오늘의 풍경> 사무실을 찾았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빛이 잘 드는 아담하고 정겨운 느낌에,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이라는, 정체성을 가득 품은 이름의 커뮤니티를 운영 중인 신인아 디자이너를 만났다. 그녀는 디자인은 철저하게 논리적인 작업이라고(이어야 한다)고 했다.

스튜디오의 이름인 <오늘의 풍경>은 어떻게 지었나요?

사실 제가 아주 후회하고 있는 건데…(웃음) 너무 서정적이잖아요. 제가 하고 있는 작업물들을 잘 표현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너무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느낌이라. 제 디자인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벌써 4-5년이 되어가니 바꿀 수도 없고 아쉬워요.


서울 풍경에 흥미를 느껴서 지었다고 하신 걸 봤어요.

제가 있는 곳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풍경들,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은 매일매일 서울에서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있고요.


쉽게 그려지지는 않아요.

<모텔꿈의궁전> 출판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모텔 꿈의 궁전,을 찍은 것이 아니라 공사판에 모텔 꿈의 궁전을 가리키는 표지판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안 찍고 표지판을 찍은 사진들”인데요.(웃음) 사진가가 찍은 서울의 모습이 제가 보는 서울과 많이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지금 여기 서울을 사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보였어요. 외국인 관광객, 허무맹랑한 모텔의 이름, 재개발 공사, 모든 것이 서울스러웠어요.


왜 문화나 풍경에 관심이 많을까요?

해외에서 대학을 다녔는데요. 고3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전공을 골랐는데, 그 전공이 시각 디자인과 International Studies라는 두 개의 전공을 6년 동안 배우는 코스였어요. 조금 특이하다면 특이하죠. 나중에 한국에서 알게 된 건데 International Studies라는 전공이 ‘문화인류학’과 유사한 것이더라고요. 전공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International Studies를 전공한 것이 디자인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시나요?

디자인 작업 자체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접근하는 방법론에는 영향을 많이 준 것 같아요. 디자인이 사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은 오만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디자인이 사회적으로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세심한 촉을 갖는 데에는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디자인의 사회적인 부분을 많이 고려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다닌 학교가 워낙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학교였어요. 3학년 때 NGO와의 협업도 필수로 진행해야 했고요. 학교에서 세뇌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웃음)


일할 때 꼭 지키는 신념이 있나요?

무조건 디렉션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방적인 클라이언트와는 같이 일하지 않아요. 우선 의뢰가 들어오는 모든 일을 받아서 시작하지만, 중간에 무조건적인 수정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중도하차하기도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제가 하는 일이 협업이라고 믿는데, 그 기본적인 믿음에 반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요즘은 계약금을 꼭 선입금받고 일을 시작해요. 과거에 돈을 못 받은 적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닌데, 그냥 그게 맞다고 느껴서요.


다른 인터뷰에서 할머니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셨어요. 흔치 않죠? 특히 한국엔?

확실히 적어요. 지금 떠오르는 사람도 2명밖에 없네요. 그런데 외국도 사실 나라마다 천차만별이에요. 스스로 온전하게 계속 일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도 좀 적은 것 같아요. 나이가 굉장히 많은데도 여전히 강의를 하거나 실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이 들고, 막연하게 나도 그렇게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물론, 일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 온다면 안 하겠지만요.(웃음)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이하 FDSC) 결성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할머니 디자이너가 되기 어려운 것과도 관련이 있겠죠?

여성 디자이너들이 오래 못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업계의 정보들에서 제외되어서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영향력 있는 위치에는 남자들이 워낙 많잖아요. 아마 여성 디자이들도 곳곳에 각자 개별적으로는 일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나 팁들이 있을 텐데, 모여서 나누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해서 소모임이나 만들까 하는 생각으로 SNS에 글을 올렸죠. 그랬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아마 많이들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문제의식을 건드렸던 것 같아요. 그때 함께 첫 설명회를 준비한 창립멤버 분들(김소미, 양민영, 우유니게)을 만나면서 시작됐죠.


바로 FDSC의 아이디어가 나온 건가요?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이름이 먼저 나왔고요. 한 친구가 갑자기 로고를 만들어 왔어요. 로고가 있으니 SNS 채널을 만들어야겠다 싶어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또 장소 협찬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럼 설명회를 해야겠다 해서 50명 정원으로 설명회를 모집했죠. 그런데 200명이 넘게 신청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50명의 회원가입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일하면 이런 순서로 일이 진행이 되는군요.(웃음) 회원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다 함께 모여있는 슬랙 방이 있어요. 여기서 서로 정보도 나누고, 지식in처럼 누군가 질문하면 다른 누군가 답하기도 하고요. 좋은 자료들을 나누기도 하고, 구인구직이나 프리랜서 작업 연결, 그리고 번개 모임을 하기도 해요. 설명회를 듣고, 공감하고 신청하면 누구나 가입 가능한 구조예요.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스스로 솔루션을 실행하는 연대 같은 것이군요.

한국에서 디자이너들은 모교를 중심으로 네트워킹 하는 경우가 많아요. 국민대는 국민대끼리, 홍대는 홍대끼리. 여기서는 그런 것 없이도 잘 만나요. 어떻게 보면 저는 국내에 동기들이 없어서 대학 네트워크 문화의 피해자였는데, 그 부분도 조금 해소한 측면이 있네요.


설명회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라던데, 여전히 유효한가요?

네. 주로 여자들이 왜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냐 했을 때 나오는 이유들을 리서치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적은 거예요. 유효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다른 항목들은 대부분 이해가 되는데요. 2번 항목은 바로 이해가 되지는 않아요.

디자이너의 작업은 논리적인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논리적인 과정이라는 것은, 그 결과물에 대해 토론과 비판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이 유명한 디자이너의 결과물에는 비판을 잘 못해요. 신격화되어 있는 이른바 스타들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 그런 분들도 정말 너무 디자인을 잘해서 유명해진 측면과 유명하니까 디자인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혼재되어 있거든요.
이게 결국 1번의 야근과도 연결이 되어 있다고 보는데요. 제가 처음 에이전시 입사했을 때, 선배들이 어떤 선생님은 몇 주를 밤새서 작업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훌륭한 디자인이 나오지 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땐 고갤 끄덕였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해요. 밤을 새우면 작업 효율이 떨어지는데 밤을 새워서 작업한다고 디자인이 잘 나올 리 없잖아요. 자기만 괴롭지. (웃음) 저 말대로면 결국 시간을 갈아 넣는 것이 열정이고, 열정이 좋은 디자인을 만든다는 것인데, 이 논리에서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소외되는 지점이 분명히 생겨나요. 또 그런 이미지(디자이너는 밤샘 작업이 많다)가 굳어질수록 업계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고요. 그래서 저는 디자인이 철저하게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논리를 바탕으로 누구든 서로 비판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예를 들어 시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 "아 이건 느낌이 안오는데~" 혹은 밑도 끝도 없이 '이 색이 싫어요' 이런 두루뭉술하고 주관적인 피드백이 아니라 '우리 메시지는 이러이러한 느낌으로 가기로 했는데 지금은 너무 따뜻한 것 같아'라던가, 디자인의 이유가 디자이너/클라이언트 모두에게 명료해야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영감을 얻으시는 인아님만의 방법도 여쭤보려고 했는데요.

같은 맥락인데, "영감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영감이라는 말이 디자이너를 어떤 신비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포장하는 것 같고 그래서 특정 기술을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인으로 바라보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는 주어진 텍스트를 보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을 논리적으로 고민해요. 사례를 보고 참고를 하긴 하지만요. 디자이너에게 ‘영감’이나 ‘감각’ 같은 모호한 단어들을 붙이는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디자이너들의 역량 차이는 어디서 생길까요?

디자이너에게 과제가 주어졌을 때, 여러 가지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주관식인 거죠. 오답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정답은 아주 많은 거죠. 그리고 클라이언트와의 합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의 결과물만 보고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게 아주 잘 나왔을 때에도, 아주 이상할 때에도.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사이의 오고 간 전략이나 목표, 에피소드는 당사자만 아는 거니까요.

스스로의 목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디자이너가 크려면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의외로 아주 적거든요. 기본기가 있는 디자이너가 스스로 목표를 잘 알고 있는 클라이언트와 일한다면, 대부분은 여러 정답 중 하나의 결과물이 나온다고 봐요. 그중 화제가 되는 프로젝트들이 생기는 것 같고요.


그 기본기는 어떻게 쌓는다고 보세요?

제 경우엔 제가 좋다고 느끼는 디자인에 대해 왜 좋은지 치열하게 파고들었어요. 어떤 부분이 나에게 멋있어 보이는지 분석하려고 노력을 했고요. 그 훈련을 어느 정도 하고 나니 다른 디자인들의 맥락도 보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말 기본기들이 있는데요. 3년 정도 실무하면 대부분 쌓인다고 봐요. 그 이후의 노력은 그 기본기나 규칙들을 변주하려는 개인의 고민들에 달려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떤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세요?

웃기거나 의외거나. 둘 중 하나를 만족하는 디자인이요.


FDSC의 앞으로의 목표가 있나요?

저도 클럽도 오래오래 하는 게 목표예요.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려운 일 같아요. 곧 1주년을 맞이하는데 유료화를 고민 중이에요. 다른 건 아니고 슬랙을 유료로 써서 지나간 정보들이 쌓여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 정도의 회비만 받고요. 그냥 날아가면 아까운 정보들이 너무 많거든요. 후원금 없이 자력으로 운영이 되도록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스튜디오 오늘의 풍경은 생존에 대한 걱정을 안 하는 날이 오면 참 좋겠다 싶네요. (웃음)


디자인을 직업으로 시작하려는 여성분들께 한 마디 해주신다면?

저보다 님들의 미래가 더 창창하니까 마음껏 일하시고 많이 나대시길 바랍니다! 긍정&도전정신으로! 얘들아 지치지 말자!


신인아는 디자인 스튜디오 <오늘의 풍경>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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