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로비 정재석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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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와이 황단단 | Photo 강희주
윌로비는 상수동에 위치한 프리랜서들을 위한 코워킹 공간이다. 윌로비라는 이름은 정재석 대표가 뉴욕에서 살던 집의 도로명에서 따 왔다고 한다. 공간에 들어서면 윌로비의 페르소나 격인 ‘댄 윌로비'의 취향에 대해 써 놓은 글이 인상적이다. 위스키와 초콜릿, 그리고 재즈를 좋아한다고. 본인의 관심사와 취향을 담아 일을 해 나가는 정재석 대표를 만났다.
지금 하고 계신 일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요. 프리랜서들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 ‘윌로비'를 운영하고 있고요. 프리랜서 네트워크라는 비영리단체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원래 제가 음악씬 관련된 일들을 많이 진행해 왔었는데, 그걸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최근에 Underover 에이전시라는 팀을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바쁘시겠어요. 그중엔 윌로비를 가장 먼저 시작하셨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사실 처음부터 공간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스무 살부터 7년 정도 미국에 있었는데, 원래는 미국에서 창업을 해보려고 했어요. 그때 아이디어가 프리랜서들이 더 일을 잘 찾을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이었고 투자 논의도 있었어요. 그런데 집안 사정으로 급하게 귀국을 하게 됐어요. 처음엔 미국에서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한국에서 사업으로 만들어 보려고 VC(벤처 투자자)들도 몇 명 만났어요. 그런데 대부분 한국 노동 시장은 다른 곳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저는 한국도 결국 프리랜서 비중이 매우 높아질 거라고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거든요. 그런데 너무 완고하게 많이들 이야기하셔서 조금 오기도 생겼어요. (웃음)
꽤 확고한 믿음인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믿음이 생겼나요?
뉴욕에 있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이 커요. 미국은 프리랜서, 혹은 Independent Worker라고 불리는 노동자 비중이 이미 40%를 넘었어요. 학자들은 결국에는 6-70%까지 올라갈 거라고 보고 있고요. 그리고 바로 옆 일본만 해도 1,200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해요. 저는 이 추세는 보편적일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도 집계를 안 해서 그렇지 많아지고 있다고 체감하고요.
윌로비는 프리랜서들의 코워킹 스페이스잖아요. 코워킹 스페이스를 떠올리신 이유가 있나요?
제가 미국에 있던 때가 위워크가 막 사업을 시작할 때였어요. 위워크 1호점에 가서 창업자들에게 안내를 받기도 했고요. (웃음) 그리고 뉴욕엔 각양각색의 코워킹 스페이스들이 많았어요. 회사 한 켠을 그냥 내주는 경우도 있고, 도미토리 같은 곳과 결합된 곳도 있었고요. 제가 애용하던 공간들이라 자연스럽게 떠올렸어요. 윌로비를 잘 만들면 프리랜서들을 많이 만나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제가 하려는 일에 관심을 가져줄 사람들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대표님은 프리랜서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저만의 정의라기보다는, 요즘 곳곳에서 프리랜서에 대한 정의를 하고 있는데요. 미국에서 특히 그런데, 프리랜서보다 조금 더 넓은 개념을 정의하고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미국에서는 Independent Worker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는 추세고요. 한국말로 하면 독립 노동자쯤 될까요? 예술가들도 여기에 포함이 돼요.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기간 혹은 계약 단위로 일을 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아 삶을 영위해 가는 사람들'이 독립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조금 추상적이기도 한데, 핵심적인 개념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윌로비가 종착지는 아닌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네, 윌로비를 비즈니스 모델로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는 생각은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코워킹 오피스는 돈 벌기 매우 어렵다는 생각도 강하고요. 저는 독립 노동자들이 더 일을 잘 찾을 수 있고, 반대로 이들을 찾으려는 입장에서도 기술을 잘 갖춘 개인들을 더 잘 찾을 수 있게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물론 이건 사적인 영역에서 진행해도 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도 담당할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독립 노동자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많아지면 분명 그들을 잘 담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봐요. 이런 변화 안에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고 해요.
그런 지향이 자연스럽게 프리랜서 네트워크로 이어진 거라고 보면 될까요?
사실 프리랜서 네트워크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어요. 저는 제가 살면서 비영리 단체를 만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는 돈이 정말 좋거든요.(웃음)
한남동에 첫 윌로비를 운영하면서 ‘서울에서 프리랜서로 살아남기'라는 포럼을 기획했어요. 공간도 있고 네트워크도 좀 있으니 해보자 싶었죠. 그런데 이때 어떻게 연이 되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행사에 왔어요. 원래는 30분만 참석하는 계획이었는데, 프리랜서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는지 3시간 정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저에게 곧 이들을 위한 정책적인 협업을 같이 해 보자고 했는데, 이 계기로 프리랜서 네트워크가 시작된 거예요.
프리랜서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어떤 것들을 하고 싶으세요?
크게 두 가지인데요. 정책과 법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 바꿔보는 것이에요. 프리랜서 네트워크를 만들 때 미국의 ‘프리랜서 유니언’이라는 단체를 조금 벤치마킹했는데요. 뉴욕시에서 세계 최초로 프리랜서 관련된 조례를 만들 때 그 제안을 한 단체예요. 저희도 서울시와 이야기하면서 시작한 만큼, 정책이나 제도에 관심이 있어요. 제가 노하우라는 단어를 굉장히 싫어하는데요. 시스템이 받쳐 주지 않을 때 개인에게 개인 역량으로 돌파하라는 말처럼 느껴져요. 개인 노하우가 없더라도 프리랜서들이 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본질적인 접근인 것 같아요.
그리고 프리랜서라는 집단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편견 같은 것이 있어요. 특정 영역에 속하는 분야에만 존재할 것이라거나, 어떤 영역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프리랜서라고 부르기엔 애매하다거나 하는 생각들요. 그런 부분들을 바꿔 나가보고 싶어요.
작년 초 첫 공식행사도 하신 걸로 아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공식행사를 하기 전에도 만들자마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바로 몇몇 건들에 대해 조언을 제공하기도 했고요. 그만큼 프리랜서들을 대변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없었구나 새삼 느꼈어요. 4월에 을지로 위워크에서 청책토론회를 열면서 첫 공식활동을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요. 기사가 정말 많이 났어요. 언론사에서 연락도 많이 오고요. 제가 가졌던 문제의식 자체는 확실히 파급력이 있는 것이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조만간 본격적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준비 중이니 기대해주세요.
한국의 프리랜서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모든 걸 스스로 찾아야 하고 물어야 하고 힘들게 경험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요. 프리랜서가 이미 많은 나라들은 훨씬 정보도 많고, 정보를 알 수 있는 경로도 한국에 비해 다양해요. 한국은 알음알음으로 물어봐야 하고, 아니면 직접 부당한 사례를 겪으면서 배워야 하기도 해요. 그리고 사업자 등록을 내야 한다는 점이요. 이건 진짜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얘기해도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하는 지점이에요.
아까 돈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향후 돈은 어떻게 버실 계획이세요?
이건 지극히 제 개인적인 인생 계획인데요, 제 20대의 목표는 인지도였어요. 20대부터 돈을 추구해서는 왠지 큰돈을 벌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히려 20대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리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인지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페이즈 1 같은 개념인 거죠. 이제 저도 서른이라,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돈을 버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선택하려고 해요. (웃음) 지금까지 페이즈 1에서 쌓아온 것들을 다음 단계로 넘겨가면서 돈을 버는 것도 많이 생각하려고 해요.
그런데, 큰돈을 벌면 뭘 하고 싶으신가요? (웃음)
제 어렸을 때부터의 꿈인데, 마흔까지만 일하는 게 꿈이에요. 어떻게 보면 바보 같고 너무 낭만적인 꿈일 수 있는데, ‘노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제가 일을 꾸미는 것은 너무 좋아하는데, 그걸 늘 운영까지 생각하면서 하는 것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40 이후엔 돈을 더 벌지 않아도 돼서 여러 재미있는 일들만 꾸미면서 살고 싶어요.
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있나요?
첫 번째는 제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재미없는 일을 정말 못 해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저는 조금 심한 편인 것 같아요. 재미가 너무 없으면 그 일은 아예 하질 못해요.
그다음으로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요. 그 보상이 꼭 돈은 아니어도 돼요. 하지만 그게 만족감이든, 네트워크든, 재미든, 인지도든 무언가 보상은 꼭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요즘 부쩍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충분히 재미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 더 재미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아마 조만간 페이즈 2로 넘어가는 큰 결심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일하는 정재석님에게 영향을 준 책이 있나요?
책은 아니고 사람인데요. Elon Musk요. 저는 Elon Musk가 미래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어떤 일을 더 앞당기고, 그 사이에 낭비될 수 있는 시간과 노력과 자원을 아껴서 그 미래를 사람들에게 더 빨리 구현하여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테슬라를 만들어서 수많은 다른 자동차 회사들의 전기차 제조를 앞당긴 것처럼요. 그의 말을 빌자면 “accelerate the inevitable”인 거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이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아요. 프리랜서 비중이 높은 노동시장은 결국 피할 수 없고, 늦지 않게 제도와 인식 개선을 마련할 수 있게 여러 곳에서의 움직임을 앞당기는 일이라는 면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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