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커 송경호 대표 인터뷰
Hey Listen은 성수동 체인지메이커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헤이그라운드팀의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Hey Listen 인터뷰는 팟캐스트와 그를 요약한 텍스트로 발행됩니다. 생생한 목소리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분들은 글 아래의 링크를 누르시면 풀버전 청취가 가능합니다.
지난 한 뉴닉 뉴스레터의 첫 번째 주제는 우리나라 10대 청소년 19명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부가 기후위기에 잘 대처하지 않아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신들의 기본권 - 생명권, 행복추구권, 환경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건데요. 2009년 이후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지켜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작년 9월 옐로우독 대표 제현주님은 경향신문 칼럼 [제현주의 굿 비즈니스, 굿 머니] 미래에서 온 메시지 편에서 그레타 툰베리의 유엔 연설을 언급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로부터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운동이 탄생했고, 이 운동에 전 세계 2200여 곳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동참했다고 합니다. 임팩트 투자자라는 핑계 뒤에서 그저 혁신적인 기업가들을 기다리기만 하는, 충분치 않은 행동이 그 자체로 다음 세대의 미래를 갉아먹는 것일 수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어요.
온실가스 배출 문제 같은 거대 담론은 계속해서 각 나라들과 기업들의 관심과 개선이 필요한 문제일 겁니다. 이번 주 인터뷰에서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더피커의 대표 송경호님은 개인이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비문화의 회복을 이야기합니다. 인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는, 인류가 충분히 편리한 삶을 누리면서 환경에도 적은 영향을 주는 시점이 있었을 거라는 거죠. 그리고 그 수준으로 소비문화를 되돌리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제로웨이스트가 일상이 되길 바라는 더피커 송경호님의 이야기, 많이 듣고 읽어 주세요!
ps.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유발 하라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각 나라들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협력을 해 올 수 있었던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시험대에 올라 있다고 말합니다. 그간 자유주의가 종교, 국적을 넘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화해시킨 비결은 ‘모두에게 파이의 몫을 더 키워주겠다는 약속’이었는데, 그게 무너졌다고 지적하면서요. 미국의 트럼프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 등을 강력한 징후로 듭니다. 꼭 2008년 위기가 아니었어도 이 기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계속되는 경제성장이 지구 생태계 위기의 주범이었으니까요.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버리는 성장이라는 톱니바퀴의 방향을 늦기 전에 조금씩 돌려놓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소비문화의 회복을 꿈꾸는 송경호님
브랜드 이름이 ‘더피커'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사람들이 무언가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만 ‘픽’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담았어요. 소비나 구매 과정에서 생기는 불필요한 쓰레기나 행동 등을 배제하고, 꼭 필요한 것만 ‘픽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요. 여기에 더해서, 저희가 식재료도 많이 다루는데 식재료를 ‘수확하듯이', 날 것 그대로를 가져오는 것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더피커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쓰레기를 줄여나가는 행동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브랜드입니다. 포장이 전혀 없거나 포장을 최소화한 제품들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 샵을 2016년부터 성수동에서 운영해 왔어요. 이렇게 운영하려면 사실 선행되어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는 기업들과 소비자들의 소비문화를 바꾸는 캠페인을 하기도 하고, 기업들에 친환경 패키징 등의 제안을 하기도 해요. 정부 정책 제안이나 자문을 하기도 하고요.
매장에서는 어떤 제품들을 취급하나요?
식재료와 리빙 제품 위주입니다. 일반 마트나 시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분 포장 없이 들여와서, 포장하지 않은 상태로 진열한다는 점이에요. 당연히 소비자들도 물건을 담아갈 수 있는 주머니나 용기를 가져오셔야 구매가 가능합니다.
식재료의 경우 필요한 만큼만 구매할 수 있게 무게를 달아서 팝니다. 리빙제품은 대체로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 위주로 판매하는데요. 이런 경우 저희가 많은 공을 들이는 부분은 생산자에 대한 검증이에요. 생산 과정에서 불필요한 자재를 안 쓰고,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물/탄소 사용량을 줄였는지 등을 꼭 직접 가서 확인합니다. 유통도 포장 없이, 혹은 재사용 가능한 방법으로 저희에게 보내줄 수 있어야 하고요.
정말 철저한 ‘픽' 과정이네요.
친환경, 필환경 같은 말이 트렌드가 되다 보니 유행으로 보고 그 컨셉만 가져와서 장사하려는 분들이 많아요. 있어 보이니까 아주 부분적으로만 차용하기도 하고요. 잘 고르려면 열심히 발품 팔아서 볼 수밖에 없어요.
트렌드가 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군요.
(목소리로 듣기) 장단이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도 한 패션잡지 인터뷰를 했는데요. 밀레니얼 세대들이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힙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요. 사실 저희의 경우 이렇게 문화화, 트렌드화 되는 것은 지양하긴 합니다. 유행보다는 일상이 되길, 특별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이 되길 바라거든요. 그래도 좋은 점은, 관련한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많아졌어요. 자신에게도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다양한 삶의 방법이 있구나 하고 인식의 문이 열리는 것은 긍정적이죠. 다만 이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너무 중요한 문제인데, 유행처럼 휙 올라갔다가 푹 꺼지면 지구에 뼈 아픈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더피커가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을 알리기 위해 만드는 콘텐츠들을 보면 재미있고 따뜻한데요. ‘이렇게 해야 됩니다' 보다는 ‘이렇게 하면 좋은 것들'로 친절하게 말 거는 느낌입니다. 이건 대표님들의 스타일인가요?
(목소리로 듣기) 제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생각해보면 저도 까칠한 면이 있죠. 물건을 살 때 내가 내 돈 주고 사는데 왜 쓰레기까지 사 와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한 거니까요. (웃음) 초반에 친한 지인들에게 사업이나 미션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제가 욱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상대방이 ‘뭐하러 그렇게까지 해?’라고 물으면 따박 따박 근거를 들어가며 반론하곤 했어요. 그랬더니 역효과가 크더라고요. 너 때문에 다시는 친환경은 안 들여다볼 거야 하고 멀어지는 거죠. 그런 경험을 통해, 가르치는 듯한 느낌이 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변화가 느려도 단단히 다지고 가고 싶어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소리로 듣기) 초반에 들으면 상처 받던 질문 중 하나인데요. (웃음) 저도 사실 답답함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해요. 현대로 올수록 속도가 중요해졌잖아요. 다들 즉효성이 있는 솔루션을 찾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문제들은 효과를 보는데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래서 보통은 삶에서 좀 더 오래 실천해 보시라는 대답으로 시작합니다. ‘비싸다는 것'에 대해서는, 오래 이런 습관을 실천하시는 분들의 경우 생활비가 40% 정도 감소했다고 하는 분들이 꽤 있어요. 아무래도 오래 쓰고 고쳐 쓰니까요. 원하는 양만큼만 사기도 하고요. ‘시간 적인 여유'와 관련해서는, 이런 생활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거꾸로 ‘여유를 찾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삶의 우선순위를 재배열하는 과정 속에서 인식의 전환이 생기는 거죠.
40%라니 솔깃하네요.(웃음) 사실 어떻게 보면 시간도 덜 쓰는 것 같아요. 소모품이 다 떨어졌을 때 싼 것 찾아서 계속 검색하다 보면 시간도 꽤 많이 쓰고요.
맞아요. 그리고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라는 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사서 버리는 것까지를 소비로 보면, 다들 버릴 때 꽤 노력이 들잖아요. 버리는데 쓰는 에너지를 살 때 용기를 챙겨가는 것에 쓰는 것으로 대체한다고 생각하면 번거로운 정도는 사실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 노력을 소비의 전반부에 할 거냐 후반부에 할 거냐의 문제죠.
지금의 아내 분인 홍지선 대표님과 함께 창업을 하셨습니다. 어쩌다 함께 하시게 됐나요?
창업할 당시에는 연인 관계였어요. 홍지선 대표(이하 홍대표)는 식수 관련 NGO에서 일하고 있었고요. 저는 전역하고 조그마한 사업을 했다가 마무리한 시점이었어요. 그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제 방향성이 조금씩 드러났어요. 사회적 경제나 환경이 키워드였죠. 그 아이디어들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홍대표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어요. 피드백도 많이 받았고요. 그러다 홍대표가 재미있어 보인다며 합류하게 됐죠. (웃음)
2016년에 성수동에서 매장을 오픈하셨어요. 왜 성수동이었나요?
(목소리로 듣기)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저희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보니 사례를 만들기 적합한 곳을 원했어요. 큰 상권보다는, 생소한 컨셉을 제공했을 때 그 리액션이 도드라져 보이는 작은 지역이면 좋겠다 싶었어요. 물론 현실적으로 임대료가 비싼 곳은 제외하기도 했고요. 그때 막 성수동이 한국의 브루클린이라는 별명을 얻던 때라 한 번 보기나 하자는 생각으로 와서 봤죠. 그런데 서울숲도 있고, 주변 주택가 골목들도 조용하고 아기자기하더라고요. 저희가 그리던 곳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죠.
더피커 하면 성수동의 맛집으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레스토랑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왜 레스토랑을 시작하셨나요?
(목소리로 듣기) 늘 명확하게 얘기하는 부분인데, 레스토랑 파트는 ‘병설’이었어요. 저희가 쓰레기 없는 매장을 지향하는데, 식재료를 팔다 보니 이걸 못 팔면 재고가 되어 버려야 하잖아요. 거기서 오는 자괴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재고를 원활하게 소비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레스토랑을 시작한 거죠. 매장으로 고객들을 유입시키는 창구도 될 것 같았고요. 그래서 실제 저희가 옆에서 직접 파는 재료들을 활용한 레시피로 레스토랑을 운영했죠.
그러다 레스토랑의 정체성이 강해졌군요.
저희의 그로서리 매장이 워낙 생소하니까 레스토랑이 부각됐던 것 같아요. 저희 메뉴가 ‘비건 지향’이었는데, 국내에 갈 곳이 별로 없던 채식인 손님들도 많이 왔고요. 음식점이 메인이고 사이드로 재료를 파는 곳이라고 생각한 분들이 많았죠. 실제 그렇게 해서 재료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고요. 저희에겐 긍정적인 효과가 많았죠. 운영의 지속성도 레스토랑으로 많이 담보할 수 있었고요.
인기도 아주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레스토랑은 왜 그만하게 되셨나요?
지금도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감사하죠. 저희도 당연히 아쉽기도 하고요. 지금은 저희가 원래 하려고 했던 활동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중단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힘들기도 했고요. (웃음) 저희가 전문으로 요식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하려던 것도 아닌데, 주문이 쌓여가고 줄까지 서는 걸 보면서 압박감이 컸어요. 게다가 저희 철학에 맞추다 보니, 손질된 재료를 받아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재료를 다 씻고 손질해야 했으니까요. 병설로 생각한 레스토랑인데 운영하는데만 리소스가 너무 많이 필요했던 거죠. 하루는 홍 대표가 냉장고 옆에서 우는 모습도 봤어요. 원래 저희가 하려던 일과 실제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사이의 갭이 너무 커져서 고민이 있었죠.
결국 하고 계신 일이 무브먼트를 만드는 일일 텐데요. 실제 경호님의 생활에서는 어떻게 적용하고 계신가요?
저도 결국 같은 시장 체제 안에서 사는 사람이니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요. 꼭 필요한데 포장이 있어서 아예 안 쓰거나 참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집중하는 건, 오래 끝까지 써내는 일이에요. 요즘 환경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것이 플라스틱인데요. 막상 삶에 적용한다고 생각해보면 특정 ‘소재’ 차원에서 적용하기는 어려워요. 저희 같은 경우는 뭔가 하나를 소비하기로 결정하면 끝까지 쓰고, 고쳐쓸 여지가 있다면 고쳐 쓰고, 폐기해야 한다면 최대한 환경적으로 폐기하려고 합니다. 거기까지가 소비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경호님의 꿈은 뭔가요?
(목소리로 듣기)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소비문화 회복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회복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저는 인류가 살아오던 어느 지점에서는 분명 편리함이 충분하고 자연과도 공생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이후로는 아주 조금의 편리함을 위해 자연을 크게 훼손해 온 것 아닐까 합니다. 그러기 전의 어떤 지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영향이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쉽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휴가를 오래 가 보고 싶네요. (웃음)
Interview 헤이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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