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dering] 왜 그 순간에 말하지 않았느냐고?

약자들을 목소리를 짓밟는, 너무나 이기적인 말

by 하젤리

폴란드에 영화 [곡성]이 개봉했다. 초대권이 생겨 플랫메이트와 밤늦게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다녀오는 길이었다. 평소 야근 및 모임 등의 이유로 새벽에 귀가해도 어두움 말고는 그닥 무서울게 없던 동네였다. 조금 놀라게 되는 일이 있었다면 밤늦게 산책나온 목줄 없는 반려견들이었는데, 이곳 개들은 훈련을 잘 받는지 크기가 큼에도 불구하고 위협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공포영화를 봤기 때문일까, 칼바람이 더 날카롭게 두꺼운 오리털 자켓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에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종종걸음으로 아파트 건물을 향해 걸어가고있었다.

pavel-lozovikov-HYovA7yPPvI-unsplash.jpg Photo by Pavel Lozovikov on Unsplash

그날도 여느때와 같이 목줄 없는 큰 사냥개 종류의 개 한마리가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그 개는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나와 친구의 길을 막는 바람에 약간 긴장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평소 개를 좋아하던 친구가 조금 무서웠다며 로비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을 서둘렀고, 때마침 그 개와 주인이 우리 쪽으로 왔다. 아- 같은 라인에 사나보다 하는 찰나 개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몸을 가로로 돌려서 움직이지 않아 나는 멈칫했다. 나름 애교있는 개였던 같지만 크기 때문에 함부로 만지거나 밀 수가 없어서 우왕좌왕-한 10초도 안되는 시간이었겠지-하고 있는데 뭐가 내 옆구리를 툭 밀듯이 감쌌다. 당연히 친구의 손이었겠거니 하고 뒤를 봤는데 개 주인남자 였다. 추운날 멀리서 봐도 참 얇게 입고있던 한눈에 봐도 꽤 불량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픽-웃으면서 영어로 꼬!고! 하며 미는 바람에 나와 친구는 로비로 밀려들어갔고, 얼떨결에 엘레베이터까지 같이 타게 되었다. 좁은 엘레베이터 안에서 친구는 애써 개의 성별과 이름을 물었고 난 그 남자의 손과 목 주변에 새겨진 갱스터 느낌의 타투를 보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친구는 그 남자 너 그렇게 만지면 안됐고, 우린 거기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했는데 아무일도 없었던 척 해야하는 이런 상황이 너무 엿같다고 했다. 사실 자기도 무서웠다고 했다. 기분이 더러웠지만 그 남자의 옷차림과 타투 그리고 말투를 보니 해코지하면 당하겠다 싶더란다. 집에 온 후 3분 5분 10분이 지나니까 애초에 그 손길에 그렇게 분개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내 신체의 일부분을 자기의 소유물마냥 툭 만진 그 남자가 너무 싫어서 화가 났다. 두꺼운 옷을 입어서 다행이야-라고 애써 위로할 점을 찾아내며 총기소지증이 있는 내 플랫메이트는 다음에 그 남자 만나면 해드샷을 날려주겠다고 했다.


내가 만약 놀랐다는 이유로 그 개를 발로 차버렸다면 그 개는 평생을 어두운 곳에서 만나는 모든 인간에게 두려움을 느낄거다. 그렇다 한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 개가 자기를 '개를 해할 수도 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나 있을까? 그래서 밤늦게 산책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처음 보는 인간만 보면 경계하게 된다는 걸 짐작이라도 할까? 만약 알아낸다 한들 '잠재적 가해자'로 몰려서 기분이 상하는 게 먼저일까 당한 개가 안됐다고 생각하는 게 먼저일까? 난 99프로의 사람이 후자에 해당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에 해당하는 1프로를 나는 상대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결여되거나 굉장히 편협적으로 작동되는 문제있는 인간이라고 본다. 그런데 개 라는 단어 대신 여자를 넣어서 맥락을 다시 읽어보면 고개를 갸웃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다시 대상을 어린아이, 장애인으로 바꾸어보자,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기분 나쁨' 보다는 '연민'을 선택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모든 남자를 가해자로 규정하는 건 나에게도 영 찝찝한 맥락이다. 반오십을 살면서 여자라면 겪어봤을 이런저런 성추행을 알게 또 모르게 당해봤음에도, 더럽게 기분이 나빠봤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잠재적 가해자의 프레임에 불편함이 1도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다. 그 만큼 내가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조신하고 조심해라], [니가 이뻐서 관심표현하는 거다]와 같은 정말 *같고 한심하기 그지없는 사회관념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딴 사회관념은 비단 한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러시아워라도 옆에 서있는 여자 먼저 전철에 타도록 양보하는 남자들이 있는 폴란드에서도 똑같다. 나에게 문을 잡아준 폴란드 남자들은 여자에게 양보를 했단 이유로 잠재적 가해자의 범주 밖에 있는 걸까? 그 남자가 집에가서 부인을 때릴지 부모를 학대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학대와 가해의 대상이 '여자'여서 위와 같은 프레임에 동의를 못하겠다면 '약자'로 단어를 바꾸면 된다.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여자는 '남자'(=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쉽게 자신의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존재)에 비해 불안정하고 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게 다다.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다.


여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동물보호 단체가 모피, 공장형 축산법에 대해 선정적인 반대운동을 하는 것, 학대되고 방치되는 아동 혹은 난민들의 인권을 위해 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고기를 소비하는 인간이고, 지금도 포탄이 날아다니는 시리아의 안전보다 본인들의 권익을 더 챙기는 정치인들이 가득한 나라에서 풍족하게 살고 있는 시민이지만 위와 같은 목소리들에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고기를 소비함으로써, 중동의 아픔을 묵인함으로써 잠재적으로 그 피해에 가담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손가락질에 우리는 부끄럽지 '기분'이 나쁘거나 억울하진 않을것이다.


자의와 상관없이 권리를 박탈당하고 존엄성이 침해당하는 존재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성스러운 움직임을 감히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Written in Feb 2017, in Wars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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