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라이딩 신고식

by 감 있는

코로나와 장마, 태풍으로 여름휴가를 제대로 못 갔다.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했다. 구름이 자욱하고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 우리는 때를 기다렸다.


장마와 태풍의 고비가 지나고 소강상태의 토요일, 드디어 그날이 왔다. 우리는 맘만 먹으면 강촌, 가평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친정엄마와 저녁에 냉면을 먹기로 했으니 오늘은 가볍게 친정까지 가보자고 했다. 우리 집에서 친정까지는 버스로 26개의 정류장을 경유하는 거리. 자전거 경로 21km. 예상시간 1시간 24분.

우리는 얼음물을 챙겨 약속된 시간보다 두 시간 전에 출발했다. 남편의 자전거 푹신푹신한 뒷좌석에 유치원생 아들을 태웠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주행 본능을 맘껏 펼칠 수 있다며 잔뜩 들떴다. 자전거 도로가 평지로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탈 만했다. 바람이 자전거 핸들 잡은 손목의 땀을 식혀주었다. 길가에 소담히 핀 장미꽃 향기가 코끝을 진동했다. 자전거로 추월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이 간혹 “안녕하세요! 지나갑니다!”라고 인사하면 스포츠계 동맹 사람들과 경주를 즐긴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 20분쯤 달렸을까. 우리는 벤치에 드러누웠다. 물은 벌써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아파도 너무 아팠다. 우리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심기일전 다시 달렸다.

맞은편에서 쏘잉쏘잉, 쑤잉쑤잉, 쐐잉쐐잉 쏴악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만 들어도 비싸고 좋은 자전거라는 게 느껴졌다. 난 묵직한 페달을 밟으면서 중고마켓에서 13만 원 주고 산 자전거로 라이딩한다는 게 과연 적합한 건지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왜 선수들이 타는 자전거에는 바구니가 없을까, 왜 등산 모자를 쓰고 달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까, 발이 닿지 않은 높이에서 페달을 밟는 사람들은 어떻게 멈출까, 가랑이 통증을 어떻게 견딜까. 온통 궁금했다. 분명한 건 주위에 달리는 자전거와 비교할수록 내가 타고 있는 바구니 달린 14단 접이식 자전거로는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또다시 쉬었다. 남편이 “가평은 안 되겠다. 이걸로 자전거 여행은 끝이야!”라고 했다. 나는 대꾸할 힘도 없었다. 남편의 눈가에 땀방울이 주르륵 맺혀 있었다. “눈물이야?”라고 물었더니 남편은 바로 아니라고 했다. 아들이 방전된 모습을 좀처럼 본 적 없었는데 길거리에서 자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이제 3분의 1 왔다느니, 5분의 2 왔다면서 돌아가기엔 아깝다고 했다. 되돌아가서 출발하기에는 시간도 어중간했다. 우리는 다시 달렸다.


사람마다 속도가 달랐다. 추월당하기도 하고, 추월하기도 했다. 어느덧 내 속도에 맞춰 달리는 게 편해졌다. 페달을 밟으며 중심을 잡고 치우치지 않는 게 묘미였다. 내가 달린 만큼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앞서 달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힘든지 고개가 옆으로 축 처진 아이 뒤통수에 대고 응원했다. 그 목소리는 나 자신에게도 하는 메아리였다.


도착할 무렵 마지막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좁은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안간힘을 쓰다가 자전거에 내려 끌고 갔다. 땅에 발이 닿으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가랑이는 마취한 듯 찌릿찌릿하고 허벅지는 터질 거 같았다. 추월하는 사람들에게 ‘방해해서 미안해요. 마실용 자전거로 두 시간째 주행 중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멀리 보이는 시야에 남편이 아이를 뒤에 태우고 가까스로 오르막길을 오르는 순간은 와! 명장면이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정말 힘들어 보였다. 가다 쉬고를 반복하여 2시간 20분 만에 도착했다.


냉면 두 그릇을 비웠다.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냉면이었다. 엄마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집에 갈 때는 무조건 지하철을 타라고 했다. 남편은 알겠다고 했지만 뒤돌아서서 아까와 길이 다르다며 금방 도착한다고 속삭였다. 아들은 금방 회복했는지 자전거를 더 타고 싶다고 했다. 왔던 만큼 돌아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자전거를 매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생각을 하니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다시 달리기로 했다. 십 분쯤 달렸을까. 남편이 엉거주춤 서서 허벅지를 문지르더니 지하철을 타야 할 거 같다고 했다. 근육 경련이 온다고 했다. 우리는 여기까지 달린 것도 대단하다며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 안은 시원했다. 이렇게 좋은 신문물이 있다며 웃었다.


지하철 안에서 라이딩을 즐기신 할아버지 두 분을 만났다. 헬멧과 타이즈, 배낭까지 멋져 보였다. 딱 봐도 자전거가 비싸 보였다. 어디 다녀오시냐고 물었더니 김포에 있는 아라 전망대에 다녀오시는 길이라고 한다. 70km. 우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오늘은 적게 탄 편이라고 하신다. 이때다 싶어 어떤 자전거를 타야 하냐고 여쭤보니 단계적으로 있는데 1,000만 원까지는 욕심이라고 하셨다. 우리나라에 좋은 자전거가 많이 나오니 10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면 싸고 괜찮다고 하셨다. 100만 원이 넘는 자전거가 싼 거라니. 마침내 ‘중고마켓에서 산 자전거로 라이딩은 역시 아니었어’라는 결론을 얻었다.


깨달은 것을 정리하자면 바구니 달린 기아 14단 접이식 자전거로는 라이딩이 택도 없다는 것. 등산 모자가 아닌 자전거 전용 보호 헬멧을 써야 한다는 것. 아마추어는 자전거 타는 자세를 숙지하고 충분히 연습하고 타야 한다는 것이다.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다음날 얼굴이 땡땡 부었다. 관절은 기름칠해야 하는 자전거처럼 삐거덕거렸다. 얼마나 힘껏 오래 쥐었는지 핸들을 잡은 손아귀에 멍이 들었다. 한 번은 해봐야 직성이 풀렸을 가족의 첫 라이딩 신고식. 오르막길을 오르던 장면은 고비를 넘긴 가족의 전우애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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