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 코로나로 인해 당연했던 일상이 멈춰지자 사회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짜낼 힘도 없이 지쳐 보였다. 경제적 손실, 감염의 위기, 독박육아 등 내가 모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코로나의 시대에 난 그런대로 살만하다. 당장 날 마주한다면 배시시 웃음 번지는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코로나로 인해 삶의 권리를 포기한 사람들이 배신감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라고 호통친다면 코로나 심각성을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살만한 이유가 로또 당첨 같은 꿈 같은 현실은 더더욱 아니다. 세계평화와 일확천금이 아닌 보통의 하루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선 아이가 등교하지 않는다. 이 문장이 맞는지 한참을 읽어보았다. 사실 그대로다. 코로나로 인해 전무후무한 사태로 학교에 못 가고 있다.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었던 홈스쿨을 필연적으로 하고 있다.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한 학교 방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홈스쿨에 관심이 있었던 건 불순하게도 등교 준비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나도 졸린 데 더 졸려 하는 아이들을 깨우는 게 힘들었다. 아이를 키우는데 나의 복병은 다름 아닌 아침잠이었다.
유년 시절 학교생활이 버거웠다. 항상 졸렸고, 졸았다. 잠이 취해 있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병든 닭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졸고 있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등교 시간은 빨라졌다. 고3 때는 0교시가 8시였던가.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모래알 같은 아침밥을 한 수저 떠먹고,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학교에 갔다.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아침 일찍 보충수업을 듣는다고 성적이 올라가진 않았다. 그저 학교가 정해둔 범주를 쫓아가기 바빴고 많은 에너지가 거기에 쏟아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정신이 맑아졌다. 그런 내가 아침 9시에 맞춰서 사는 건 정말 고달팠다. 유현준 건축학자는 공장과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9시에 등교하도록 사회가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회사 조직 생활도 힘들었다. 커피로 잠을 쫓아보려고 해도 수시로 피곤했다. 여전히 아침잠이 많은 내가 아이들을 9시까지 학교로, 유치원으로 보냈다. 그런데 당분간 등교하지 말라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오랜 긴장의 끈이 스르륵 손가락에서 흘러내렸다.
9시 등교뿐만 아니라 엄마가 된 일상이 피곤한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나는 아이들 스케줄에 철저히 맞춘 생활을 보냈다.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듯 9시까지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면 둘째 아이가 다니는 병설 유치원으로 1시까지 데리러 가야 했다. 아이는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한두 시간 이상을 놀이터에서 매일 놀았다. 내 황금 같은 시간이 놀이터에서 사라졌다.
첫째가 하교하면 본격적인 엄마의 임무가 슬슬 시동이 걸린다. 로드매니저, 시간 관리 매니저, 과외 선생님, 가사도우미를 자처하는 동안 난 아이의, 아이에 의한, 아이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숨이 찰 정도로 하루가 빡빡했다. 아이가 학원에 다니지 않아서 더 그랬다. 아이와 밀착된 시간은 시간과 분 단위로 쪼개졌다.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나의 욕심은 더 좋은 엄마가 되기를 부추겼다. 아이들의 체력증진을 위해 가까운 산도 오르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박물관, 과학관, 도서관을 쏘다녔다. 그렇게 하루, 일주일, 일 년을 정신없이 보내면 출구 없는 엄마 노릇에 나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동동거리며 분주하던 생활이 코로나로 인해 거짓말처럼 멈춰졌다. 학교는 오지 말라고 했고, 공공기관과 시설은 잠정적으로 폐쇄되었다. 사회는 제발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했다.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에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겁이 많아서 세상이 정한 규범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에서 개근 상장만은 항상 받아오지 않았던가. 여백 같은 일탈. 세상이 멈춘 거 같은 단절감이 오히려 숨통을 트이게 했다. 하루가 단출해졌다.
아이들과 나는 늦게까지 놀다가 다음날 늦게까지 퍼질러 잤다. 우리는 밤이면 쌩쌩해졌다. 아이는 심심했는지 설거지해보고 싶다고 따라 하고, 밥통이 비면 쌀을 씻었다. 아이가 주로 읽던 학습만화 『사막에서 살아남기』, 『북극에서 살아남기』 같은 살아남기 마지막 코스 ‘집에서 살아남기’ 응용 버전을 실용적으로 터득해 갔다. 우리는 집에 있는 시간을 나름 잘 적응했다.
아이들과 밤늦도록 영화도 보고, 따로 책을 읽고, 조용히 놀았다. 밤 11시가 되면 왜 그렇게 배고픈지 편의점에 달려가 도시락과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어느 깊은 밤에는 베란다에서 컵라면을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내일이 크게 걱정 없는 오늘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미로웠다. 누군가는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자기를 계발했을지 모른다. 난 흘러가는 시간에 날 맡겼다.
내가 봐도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판이 새로 짜기 전 헝클어진 상태. 아이는 기초학력이 떨어지고, 사회성도 좁아지고, 집에만 있으니 체력도 쇠잔해졌다. 아이의 규칙적인 생활을 망치고, 면역력과 키가 걱정도 안 되냐고 자책이 들기도 했다. 엄마인 나는 허물어졌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사정없이 망가지고 엉망인 적은 없었다. 카오스 상태. 세상이 부여한 역할에 따라 부단히 움직이던 내가 세상으로부터 거리두기는 날 한없이 게으르게 했다. 무료한 시간이 흐르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본질적인 삶의 의미를 찾는 것.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충만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빠르다. 월요일을 시작하자마자 정신 차리면 목요일, 금요일이다. 빡빡한 하루를 뒤쫓아가던 느낌과는 다르다. 나의 속도에 맞게 하루를 지내고 있다. 해 질 무렵 가족들과 자전거를 타러 갔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다 분홍, 자주, 보랏빛으로 물드는 노을을 보았다. 노을 진 하늘을 한참을 바라보다 집 앞에 있는 식당에서 칼국수를 배부르게 먹었다. 유명 맛집이 아닌 동네 허름한 칼국수 집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이었다. 행복이 밀려왔다. 가족이 함께해서, 노을이 아름다워서, 칼국수가 맛있어서, 별일 없는 내일이 있어서 그랬다. 조만간, 언젠간 이 시간이 끝날 것이다. 지금처럼 느슨한 하루는 사라질 것이다. 엉망진창, 뒤죽박죽, 무질서한 이 시간. 사회가 정해둔 굴레를 벗어난 자의 보통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