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데이트

by 감 있는

연애할 때 오빠라고 부르던 오빠가 남편이 되었다. 친정에서 오빠를 부르면 남편과 친오빠가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 불상사가 생겨났다. 친오빠는 이 세상에 오빠는 하나밖에 없는 거라며 남편을 여보라고 부르라고 강권했다. 남편을 여보로 부른지 어언 십 년. 처음에는 여보라고 부르기가 영 어색하고 점잖게 들렸는데 이제는 입에 착착 붙는 말, 여보. 결혼 초창기부터 오빠는 오빠고, 남편은 여보로 신박하고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오빠와 새언니가 아이들을 하룻밤 맡아준다고 했다. 결혼한 지 십 년 동안 아이들과 따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너무나 평범한 글귀처럼 느껴져서 다시 강조하고 싶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떨어져 잔 적이 없다. 아이들을 안아주고 보고 싶을 거라며 돌아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일 분 일 초가 아까웠다. 무조건 버스를 올라탔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보낸 터라 갑자기 찾아온 둘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아주 고민스러웠다. 일생일대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오랜 추억에 파묻힌 단어, 데이트. 데이트라는 걸 하고 싶었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손을 꼭 잡았다.


코로나로 방콕을 일삼아서, 주로 아이들이 갈 만한 곳을 일삼았던 가정평화협정 조약에 길들어져서, 마땅한 장소가 번득이질 않는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조급하지만 신중한 마음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종로, 정동, 광화문을 얼마나 정처 없이 걸었던가. 오직 상상만으로 말이다.

나에게 정복되지 않은 미지의 공간,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 익선동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는 명소였다. 아이들과 가면 재미없지만 데이트하기에 어울리는 장소 같았다. 늦은 시간이라 거리가 한산하다. 방울방울 내리던 비가 멈추고,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즐비한 곳에 사람들까지 없다니. 꿈에 거닐던 종로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거 같았다.


골목 미로 같은 길을 남편과 걸었다. 눈빛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왔다. 난 아이처럼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연애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촉촉한 밤하늘, 로맨틱한 거리,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함, 캄캄한 밤에 별처럼 총총히 빛나는 노란 조명.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밤기운에 취해 사랑에 빠진 여인이었다. 카페에 들어가 주문하는데 그만 점원의 말이 날 현실 세계로 돌이켜 세웠다.


“방문 기록에 서명해주세요. 가족은 한 분만 하시면 돼요.”


‘연인과 데이트하는 익선동’이라는 황홀한 그림판에 점원은 틀린그림찾기 선수처럼 ‘가족과 데이트하는 익선동’이라고 명명해주었다. 십 년 전 데이트와 지금의 데이트를 비교해서 틀린 그림 한 조각이 발각된 기분. 난 속으로 물었다.


‘이봐요, 젊은이. 어딜 봐서 가족으로 보이는 거요?’


정말 이상했다. 어딜 봐서 가족인 거지? 왜 연인으로 보이지 않는 거야? 연인 때처럼 설렘이 그대로인데 우리가 가족처럼 보인다고? 빼도 박도 못하는 가족 판박이? 난 서명하는 동안 꾹 참았던 말을 남편에게 속사포로 쏟아냈다. 나의 주책맞은 바람에 남편과 나는 마구 웃었다. 누가 봐도 가족. 아이가 없어도 부부. 밤에 마실 나온 아저씨, 아줌마.


마치 리마인드 웨딩처럼 진행된 리마인드 데이트였다. 셀카를 찍으니 단번에 증명되었다. 리마인드 웨딩사진에서 느꼈던 느낌대로 나이 든 연인이 보였다. 아이들 키우느라 도낏자루 썩는지도 몰랐던 남편과 내가 약간은 지치고 후덕해진 얼굴이 보였다.


“연애 때보다 지금이 좋아.”


밤길을 걸으며 남편이 말했다. 그 말이 위안이 되도록 가족이어서 좋은 점을 헤아려보았다. 우선 헤어지지 않아서 좋았다. 남편은 1호선 끝쪽에 사는 나를 데려다주고, 반대 방향 1호선 끝에 사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남편이 살이 쫙쫙 빠졌었다. 게다가 결혼하니 믿을 수 없는 인체의 신비, 서로를 오묘하게 닮은 생명이 태어났다. 연인일 때는 몰랐던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속사정, 가족의 속사정까지. X-파일 같은 비밀들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알게 되는 가족이라는 이름.

그날 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거리를 걸었다. 남편이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난 어두운 밤을 헤치며 삼청동 공원 끝까지 걸었을 기세였다. 이 밤이 끝나지 않기를 걷고 또 걷고 싶었지만 남편은 다리가 아프다며 멈추었다. 그렇다. 우리의 외모가 변한 만큼이나 남편의 체력도 떨어졌다.


집에 가는 길이 못내 아쉬워 남편을 오빠라고 한번 불러보고 싶었다. 입을 열기도 전에 목에 가시가 켁 걸린다. 남편을 여보로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 시간이 흘렀다. 설렘보다 안정감에 물들어버린 모습. 미운 정 고운 정 닮아버린 얼굴. 2인 1조가 되어 착착 달리는 호흡. 그런 당신과 한동안 익선동을 떠올리며 골목을 걸을 것이다. 오직 상상만으로.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던 밤, 쉽게 돌아오지 않은 밤일 테니까.




빗방울이 맺혀 있는 자전거도 아름다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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