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시작하며

by 감 있는

우리 집 둘째 귀요미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입학과 개학. 새 학기를 맞았다. 작년에는 아이가 코로나로 유치원에 거의 못 가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올해는 ‘with 코로나’로 1학년은 전면등교를 하니 아이에게 부담이 되는 건 당연지사.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 반경이 넓고 큰 학교에 적응하려고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닌가 보다. 마스크를 써서 눈만 동그랗게 보이는 아이의 얼굴이 얼어붙어 있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학기 초에 오는 스트레스로 아이들이 복통을 호소한다고 주변 엄마에게 말로만 들었지 내 아이에게서 들을 줄 몰랐다. 꿀물을 타 먹이고 겨우 보냈다. 엊그제는 밤에 자다가 열 번도 넘게 깼다는 말을 들었다. 밤에 아이를 안아주고 잠을 재웠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는 아이를 보니 짠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았다. 난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아이는 “모르겠어”라는 말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러다 기분이 좋아지면 아주 조금씩 이야기해주었다. 짝꿍 이름이라든지, 급식 메뉴라든지. 아이가 개학한 다음 날이던가. 자기 반이 아닌 다른 반에 앉아있었다는 것을 며칠 지나 우연히 알게 되었다. 아이는 나에게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지각해버린 아이가 얼마나 당황했을까. 아이가 가방을 메고 두리번거리는 뒷모습이 그려졌다.


12시 20분. 하교하는 시간이다. 1학년 담임 선생님을 선두로 아이들이 교문까지 줄지어 나온다. 아이들이 한 명씩 선생님께 꾸벅 인사하고는 마중 나온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 나왔다. 귀요미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더니 힘껏 달려와 품에 안겼다. 우리는 잠시 멈춰진 시간처럼 아무 말 없이 서로를 꼭 안았다. 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고 싶었다는 듯이. 무사히 만나서 다행이라는 듯이.


그 뒤로 며칠 후, 선생님이 마지막 학생까지 인솔하고 배웅하는데 귀요미가 보이지 않는다. 난 선생님께 달려가 아이가 없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주변을 한 바퀴 빙 둘러보시더니 “그러네요” 차분하게 말씀하시고는 같이 찾자고 하신다. 낯선 곳에서 혼자 방황하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급식실을 지나 운동장을 훑어보았다. 그때 본관 앞 돌계단에 몇몇 아이들이 쨍한 분홍색 조끼를 입고 앉아있는데 여기, 여기, 귀요미가 있다.

“왜 거기 있어?”


선생님 따라 정문으로 하교하지 않고 왜 분홍색 조끼를 입고 있는지 물었다. 아이가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끔뻑 감았다 뜬다.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는 표정이다. 귀요미 주변을 보니 아이들이 분홍색 조끼를 입고 있다.


그날은 맞벌이 부모들을 위해 방과 후 학교 돌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분홍색 조끼는 돌봄 하는 아이들에게 입히는 옷이었다. 선생님이 “돌봄 하는 아이들, 남으세요”라고 했을 테고, 귀요미는 ‘학교에서 돌봄 받을 수 있다고? 나도 돌봄 받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졸래졸래 쫓아갔을 것이다. 돌봄이 방과 후 위탁 교육 ‘돌봄’인지,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단어로서의 ‘돌봄’인지 몰랐을 것이다. 아이는 돌봄을 바라며 그 자리에 앉았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어찌 표현할 길이 없어 안절부절못하는 귀요미에게 돌봄 선생님은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하시면서 분홍색 조끼를 입혔던 거다.


아이는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렸는데 난 웃음보가 터졌다. 어리바리한 1학년이 왜 그렇게 귀여운지. 실수한 걸 보이기 싫어하는 아이는 부끄럽고 속이 상해서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속없는 엄마는 한참 웃다가 또 한참 울었다. 긴장하고 안심했던 감정의 댐이 무너진 상태였다. 그때 말없이 사라지신 담임 선생님은 같은 반 여자아이 손을 붙잡고 오셨다. 그 아이도 엉엉 울고 있었다.


“얘는 돌봄 하는 아인데 정문 앞에 왜 엄마가 없냐고 우네요. 1학년은 그래요.”


그러니까 귀요미는 돌봄이 아닌데 돌봄에 앉아있고, 그 귀여운 여자아이는 돌봄인데 하굣길에 나갔다가 엄마가 없다고 울고 있고. 돌봄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상황에 울고 있었다. 선생님도 하굣길에 머릿수를 세면 딱 맞아떨어지니까 헷갈리셨겠지. 돌봄 첫날이라 누가 누가 돌봄 하는지 모르셨겠지.

아이들은 우르르 자리를 떠났다. 돌봄이라는 말이 왜 그리 애틋한 거냐며 속으로 탓했다. 귀요미와 나는 그 자리에서 딱 달라붙어서 한참 부둥켜안고 울다가 일어섰다. 자꾸만 눈물이 새어 나왔다. 선생님은 날 보면서 웃다 울다 감정조절 안 되는 이상한 엄마 같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는 침울하고 기분이 나빠 보였다. 나는 집에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엄마 말은 학기 초에는 혼란스럽고, 섞이고, 휩싸일 수 있어. 내가 잘못한 게 아니어도. 중요한 건 지금 너랑 내가 같이 있다는 거야. 아무 일도 아니었어. 알겠지?”

귀요미가 대답했다.

“모르겠어.”


우리는 그날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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