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되고 싶다면

by 감 있는

집 앞 편의점을 지나 열 발자국만 가면 단골 미용실이 있다. 단골이라고 해봐야 일 년에 한두 차례 갈 뿐이지만 이곳이 사라진다면 미용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게 어디든 따라갈 거라고 애원할 거 같으니 단골이라 칭하겠다. 생긴 지 3년쯤 되었나. ‘〇〇〇청춘’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으로 간판이 걸렸을 때 한동안 갈까 말까 망설였다. 청춘이 되고 싶어서 그곳을 가기에는 내가 새파란 청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니던 미용실에서 남편이 내 머리가 곱슬곱슬할수록 좋아한다는 정보를 흘리자 내 머리를 폭탄으로 만들어 놓았다. 머리숱이 많아 부풀어 오르는 머리카락이 비가 오면 더 부풀어 오르는 폭탄을 동여매고 고생하기를 여러 달. 거울을 볼 때마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짜증이 후유증으로 남았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숱이 많았다. 아이가 파마하면 어른의 반값만 낸다는데 나는 어른과 똑같은 값을 냈다. 미용사가 이렇게 머리숱 많은 아이는 처음이라며 결코 반값을 받으면 안 된다고 종용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엄마가 파마하는 날 내 머리에도 파마 보자기를 씌웠다. 내게는 파마가 어울린다는 엄마의 소신이었다. 저녁이 되어 완성된 빠글빠글한 머리를 보며 이러고 어떻게 학교에 가느냐고 엉엉 울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신 파마를 안 할 거라고 다짐했다. 단발 의무화였던 중학생 때부터 오랫동안 생머리를 고집했다. 고등학생 때쯤인가. 생머리로 쫙쫙 펴주는 스트레이트 파마가 유행이었다. 내게도 찰랑찰랑 생머리가 생기다니. 그러다 생머리도 지긋지긋해질 무렵 내게 다시 파마의 시대가 왔다.


머리숱이 많다는 건 미용실 갈 때마다 대역 죄인이 된 심정이다. 노동의 강도가 높아지고 약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눈치가 보여서 미용사들의 서글서글한 미소와 태도에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가뜩이나 손놀림이 지친 그들에게 숱이 빽빽한 정원을 내미는 느낌이었다.


당장 머리를 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날, 청춘이 되고 싶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키가 크고 뿔테안경을 쓴 굳은 표정의 남자. 어서 오시라는 환영 인사도 없이 어떤 머리를 할 거냐고 묻는다. 파마요. 소심하게 대답한다. 그는 능숙한 손길로 머리 길이를 다듬고 숱치고 파마한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혹시 머리숱이 많아서 그가 화난 건 아닌지 내심 걱정한다. 그가 별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천년대 발라드 가요가 흘러나오는 그곳은 여타의 미용실과 분위기가 다르다. 친절하게 말을 건네오던 미용사들과는 달리 말을 시키지 않으니까 편하기도 하고, 왠지 불편하기도 하다. 나는 침묵이 어색했지만 그는 열중했다.


파마를 끝내고 며칠이 지났다. 내가 파마한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거 같았다. 구불구불 탄력이 없다. 엉터리 미용사 같으니라고. 돈만 날린 기분이 들었다. 엠마뉘엘 카레르가 쓴 『콧수염』이라는 소설에서 10년 동안 콧수염을 기르던 남자가 콧수염을 말끔히 깎았는데 아무도 못 알아봐서 죽고 말았다는 주인공 심정과 비슷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미용실을 찾아갔다. 내 머리는 파마약이 잘 드는 머리인데 잘 먹지 않았다고. 다시 파마하고 싶다는 말을 짤막짤막 전했다. 그러자 미용사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고객님이 머리가 커져서 동네 다니는 모습을 제가 어떻게 봅니까!”


처음이었다. 그간 내가 겪은 심경을 고스란히 느끼는 사람은. 손님의 머리를 내 몸과 같이 여겨주는 미용사를. 마치 내 머리가 사자의 갈기처럼 동네를 휘젓고 다닐 모습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다는 그 말은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관리하기 편할 거라고, 다시 파마하는 게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면서 진심 어린 눈빛에 탄복하고 말았다. 전문가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풀릴 듯 쉽게 풀리지 않는 굵은 웨이브가 유지되었다. 대충 바람에 말려도 마음에 들었다. 놀랍게도 시간이 갈수록 더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그가 싸구려 약품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몇 달이 흐른 후, 머리카락이 길어지고 무거워져 미용실을 찾았다. 그는 내 머리를 만져보더니 단번에 염색했냐고 묻는다. 뜨끔했다. 최근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헤라커피염색을 집에서 했다. 자꾸 솟아나는 흰머리를 화학약품이 아닌 천연염색으로 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내 눈에는 티도 안 나는데 그는 내 머리 색깔이 달라졌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진짜 화가 난 거 같았다. 미용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헤나라며 헤나는 파마약의 흡수를 방해하고 심한 경우, 목덜미를 새카맣게 물들어서 평생 그렇게 지내는 사람도 있다며 집에 가면 당장 버리라고 씩씩거렸다. 난 혼이 난 사람처럼 다신 안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파마하다가 또 헤나가 생각나면 헤나의 부작용을 열거했다.


그가 단호하게 말할수록 그는 머리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떤 손님이든 딱 한 사람만을 위해 그 시간과 장소를 할애하는 것도 그랬다. 트리트먼트를 꼭 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은 내가 스스로 머릿결을 소중히 여기게 했다. 헤어에센스를 바르고, 빗질을 해주는 작은 습관이 생겼다. 내게 긴 머리가 잘 어울릴 거라는 그의 조언대로 머리를 길러보는 중이다. 숏커트를 하든, 탈색염색을 하든 그는 내게 어울리는 머리를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가 내 머리를 걱정해준 거처럼 나도 그가 손가락, 목, 어깨, 허리, 다리 같은 뼈마디가 아픈 게 걱정이다.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목덜미에 부항 뜬 모습을 볼 때면 내 손가락도 움찔움찔하다. 그가 오래오래 동네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 나이가 들수록 머리카락이 푸석해지고, 흰머리도 많아지겠지만 청춘이 되고 싶은 단 하나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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