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가족

by 감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쉽게 가까워지지 못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새언니. 새언니는 털털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그런 새언니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의 동공은 지진이 나듯 흔들린다. 나보고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고 한다. 네가 아무리 편해도 새언니의 입장은 시동생인 네가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울 거라고 만류한다. 선을 지키는 게 배려라고 한다. 언젠가는 네가 상처받을 거라 한다. 마지막에는 답답한 눈으로 보다가 나를 몰상식한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하나씩 정답을 맞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시’와 맺은 가족관계에서 선을 지키라고. 맞는 말이다. 내 편이 하나도 없으니 크게 잘못한 기분이 든다. 내가 마더 테레사처럼 이타적인 사상가도 아니고, 그저 새언니가 좋았을 뿐이다. 왜 언니를 꼬박꼬박 ‘새’언니로 불러야 하는지 번거로웠다. 그럼 나는 할머니가 되어도 새언니에게 영원히 ‘아가씨’인가. 그렇게 말하는 내가 세상 이치를 모르는 바보 같았다.

알고 있다. 새언니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는 것을. 서로를 가릴 만한 높다란 담벼락이 있다는 것도. 적당한 선으로 관계를 규명하고, 담벼락을 세워 멀찌감치 지내는 게 편하고 안심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크든 작든 호의에 감사했고, 피해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제사, 김장 등 집안 행사 때 새언니가 며느리로서 육체노동보다 감정노동으로 지칠까 봐 나는 거드름이나 게으름을 피운 적 없다. 새언니를 한 인간으로 살피고 좋아한 건 부모님에게는 며느리와 오빠에게는 아내이기 이전, 나랑 같은 여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마냥 좋았던 건 아니다. 오빠가 새언니를 소개할 때, 새언니는 까만 얼굴에 노랗게 염색한 숏커트, 검정 가죽 재킷, 검정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오빠가 사슴 같은 여자를 만날 거라 예상했는데 완전히 빗나갔다고 했다. 예고 없는 반전 드라마를 본 거처럼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까칠하고 강렬한 인상 때문에 쉽사리 다가가기 어려웠다. 설마 결혼할까 싶었는데 오빠는 첫사랑이었던 새언니를 6년 동안 열렬히 사랑하더니 결혼했다.


새언니는 임용고시 필기시험을 한 번에 붙을 만큼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실수로 면접시간을 착각하여 떨어지고 말았다. 새언니는 문화센터에서 아이들과 주부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새언니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슈만의 Widmung(헌정). 노래도 아름다웠지만 혼자 무대를 꽉 채우는 새언니가 자랑스러웠다. 그동안 배우고 연습하면서 심취했을 모습이 보기 좋았다.


새언니는 딸 셋을 낳는 동안 흑갈색 머리와 단정하고 모던한 스타일로 변했다. 개성 강한 새언니가 언제부터 평범해졌을까. 이십 대 영국으로 어학연수 가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어를 배우고, 외국 친구들을 사귀면서 글로벌하게 젊은 시절을 보낸 언니가. 잘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팔방으로 돌아다니던 언니가 지금은 요리하는 게 가장 재밌다고 한다.


새언니가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다 숨이 안 쉬어져서 영화관을 빠져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영화를 보다 울부짖었기 때문에 그 심정을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어느 날은 새언니 혼자 훌쩍 여행하고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좀처럼 화내지 않는 새언니가 얼마나 속상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오빠는 종손의 외아들이다. 종갓집이어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새언니가 셋째를 임신하던 해에 나는 둘째를 임신했다. 우리는 같은 해 출산했다. 새언니는 딸을 낳았고, 나는 아들을 낳았다. 운명의 장난처럼 성별이 바뀐 것 같았다. 새언니는 넷째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면 오늘 당장이라도 낳을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 새(新)언니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밟혔는지 모르겠다. 나는 결혼하고 본가를 벗어나면서 새언니가 나 대신 본가를 지키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와는 분명 입장이 다른데 나도 모르게 가늠하고 살폈다.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새언니의 본래 모습이 사라지는 걸 보며 못 본 척하고 싶어도 눈에 들어왔다. 지혜롭고 당차고 현명한 새언니지만 남편 내조를 잘해야 칭찬받는 아내, 맏며느리가 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나의 주제넘은 관심이 새언니에겐 불편할 수 있다. 사람들이 쉽게 단정하는 그런 ‘시(媤)’와 관련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라도 괜히 오해가 생기는 사이다. 나도 시누이가 네 분이 계셔서 알고 있다.

가족의 재구성이 되는 결혼. 그로 인해 파생된 관계. 서로 넘나들 수 없는 선과 질서. 그 체계 안에서 우리는 가족이다. 가족의 테두리에 꽁꽁 묶어두려는 게 아니라 가족이기에 함께하고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아내와 엄마, 며느리로 사는 걸 알기에 누구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싶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말하지 않아도 생일선물을 챙겨주는 사이가 된 것은. 그날만큼은 존재로 축하받기를 바라는 마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데,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데 진심마저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멀리서 사랑과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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