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를 만났다. 나는 줄곧 언니는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밤마다 채팅하고 낮에는 드라마 보고, 끼니는 보조사가 차려주고, 전화를 걸면 전화벨이 한 번 울리자마자 받는 언니여서 언니는 하는 일이 없는지 알았다. 태어나자마자 산소공급이 부족하여 뇌성마비 2급 장애인이 되었다. 다리에 힘을 주어 걸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방에서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언니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형제들과 동떨어지게 살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4월 14일 블랙데이에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주는 걸 무척 행복해했다. 다시 말해서 내가 깜빡 잊고 지나가면 너무 섭섭해서 끝내는 일주일 차이 나는 내 생일을 일부러 모른 척 지나쳐서 네 생일은 어땠냐고 물어보곤 했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라는 시간에는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 막 한숨 돌리는 시기에 다다른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언제나 그렇듯 전화벨이 한 번 울리자 바로 받는다. “언니, 나야. 기억해?” 언니는 씩씩하고 정감 있는 목소리로 대신한다. “내가 널 어떻게 잊겠니?” 우리는 만나기로 약속하여 난 카스테라를 사고 언니네 집 앞 놀이터에서 기다렸다.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밤기운이 똑 떨어진 으슬으슬한 한밤중에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울퉁불퉁한 보행로에 전동휠체어를 운전하는 언니는 거침없어 보였다. 길가의 작은 턱에는 전동휠체어를 뒤로 돌려서 넘어가고, 턱이 높으면 차도를 질러서 지나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동차, 오토바이, 뒤엉킨 사람들 사이로 언니가 굴러가듯 지나가면 그녀만의 오롯한 길이 열렸다.
익숙한 듯 태연한 언니를 한 발짝 뒤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천천히 따라 걷다가 다가갔다. 언니에게 다가가 도와드려도 되냐고,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당시에는 도움을 청하기 전에 도와주려는 태도가 무례하다는 걸 미처 몰랐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 사람이 다가와 당황스러웠을 텐데 언니는 그날을 떠올리면 “내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넌 딱 봐도 나쁜 사람이 아니었어”라고 말해주었다.
40대 중반인 언니는 연극배우였다. 뇌성마비 여자장애인들이 모여 공연을 준비한다고 했다. <고도를 기다리며> 티켓을 보여주었다. 공연하는 날, 난 서둘러 퇴근하고 꽃다발을 안고 공연을 보러 갔다. 언니는 에스트라공 역할을 맡았다. 고도를 기다리는 주인공에게 계속 떠나자고 하는 인물이었다. 언니는 어디로 떠나고 싶었을까. 언니가 기다리다 지쳤던 고도는 무엇이었을까. 듬성듬성한 관객의 자리에서 빈 메아리처럼 끝이 났다.
공연이 끝난 뒤에 아무리 멀어도 꼭 와줄 거라는 믿음 섞인 언니의 얼굴이 좋았다. 가끔 언니 집을 찾아갔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언니에겐 끔찍한 영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홍두와 공주의 끝내주는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거센 목소리로 여자장애인이 성폭력 당하는 영화라고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언니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되었다.
언니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사 먹고 길거리에서 예쁜 털모자도 샀다. 영화와 연극도 보러 갔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영화와 연극 보러 가는 일은 시간이 꽤 걸리고 수고스러웠다. 우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영화관을 찾는 일부터 시작하여 의자에 앉으려면 장성한 남자들이 언니를 번쩍 들어 올려 앉히는 도움이 필요했다. 연극을 보러 가면 가로줄의 연결된 의자를 모조리 빼야지만 휠체어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종로 한복판에 신호등이 켜지면 순식간에 깜빡거리는 신호등 표시에 경찰이 차도에 서 있는 차들을 막아야 큰 건널목 사거리를 가로질러 건널 수 있었다. 평소 혼자 다니던 시간보다 대략 세 배는 더 걸렸다.
집 근처 산책길을 갈 때 사람 한 명 통과할 만한 비좁은 길이 언니에겐 사회가 얼마나 배려 없는 것인지 알려주었다. 문턱이 있는 식당은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했다. 집을 벗어난 곳이 아무리 불편해도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멀찌감치 사람들이 비켜섰다. 언니와 나를 피해 주는 것인지 아니면 피하고 싶은 것인지 모를 너와 나를 분리하고야 마는 시선이 못내 따가웠다.
언니가 전동휠체어를 능숙하게 타고 다가온다. 언니는 다리에 두유가 놓여 있다. 우리는 카스테라와 두유를 먹으며 그동안 못 본 시간을 달래듯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바깥 풍경보다 얘기하는 것에 푹 빠져있다. 언니는 유독 기억력이 좋아서 내가 예전에 말한 걸 소소하게 기억해냈다. 내가 육아하면서 느꼈던 감정에 무조건 이해하려 들었고 열심히 공감해주었다. 언니는 빨강머리 앤이 너무 좋아서 앤을 그려보고, 마음에 드는 글자를 옮겨서 자신의 책으로 만들어 볼 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앤처럼 언니의 머리 한 가닥이 곱게 땋아 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설레는 언니의 모습에 보조사가 특별히 땋아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앤과 다이애나처럼 우리의 우정이 오래갈 수 있을까. 그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니는 언제나 그렇듯 헤어짐을 아쉬워하기보다 씩씩한 목소리로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우린 만났을 때처럼 꼭 안아주고 헤어졌다. 난 그런 언니가 문득문득 자주 생각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