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댓글이 달리다
좋아요! 훈훈해요!라는 세상을 꿈꾸며
몇 주 전 인터넷 신문에 내가 쓴 글이 올라갔다. 내 이름이 걸린 기사가 뽀얀 핸드폰 창에 비쳤다. 그동안 정식 기자들만 기사를 쓰는 건지 알았다. 아니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글을 쓴다 해도 글의 수준이 가늠이 안 되는 상황에서 꿈에도 그리지 못했던 일이었다. 처음 쓴 글이 메인이라니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편집기자에게 연락이 왔을 때 허공에 떠다니는 내 글이 안착하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큰일을 저지른 기분도 들었다. 난파된 해안에 파도에 떠밀려 나라는 사람이 발각된 느낌이랄까. 기사 사이로 자리를 딱 차지하고 있는 글이 낯설고, 자랑스러웠다. 만감이 교차한 마음도 잠시,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웅성웅성한 군중 속에서 댓글이 차곡차곡 쌓였다. 선플도 있었지만 악플도 달렸다. 내 의도와 맥락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자신이 들었던 감정과 생각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그동안 난 악플을 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고, 악플로 고통을 받는다는 연예인들의 마음도 크게 헤아리지 못했다. 특히 연예인들이 가족을 건드리는 건 못 참겠다는 말이 교과서처럼 들릴 만큼 흔한 말이었는데 정말 가족을 건드리는 말은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했다. 악플로 인해 목숨까지 잃는 연예인들의 부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웠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무지했다. 얼마나 지속해서 그들을 괴롭혀왔을까. “저 좀 예뻐해 주세요”라는 고인이 된 유명 연예인의 말이 “살려주세요”라는 말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녀를 위해 싸우지 않았다는 사실은 결국 지켜주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세상이 내 맘 같지 않다고 느꼈지만 같은 글을 읽고도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했다. 어떤 글에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진심으로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또 좌절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에게서 온도와 개성이 느껴졌다. 처음 기사가 올라간 것도 경사인데 연속 기사가 올라가니 난 댓글 세계에 헤어 나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글에 대한 심상을 가지고 꼬집었다. 모두가 날 이해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자꾸 악플에 눈이 갔다. 사람들은 무심코 내뱉기도 하고, 쏘아대기도 했다. 가시처럼 아팠다.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들은 돌아서서 잊어버릴 기사와 댓글이었지만 내 인생에 처음으로 안아본 비단 같은 글이었다. 그 비단이 더럽혀지고 짓밟히는 느낌이 억울했고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처참했다.
몇 개의 기사를 쓰고 올리면서 난 궁금했다. 조용히 하트 혹은 좋아요를 누르는 가시는 분들은 많은데 왜 소수의 사람들은 비방과 냉소로 영역표시를 하듯 하고 가는 것일까. 오히려 글을 두둔하는 사람들은 폭격당하고 못 이겨 삭제해버리는 현실이었다. 그러면 외로운 전장에 홀로 싸우는 기분이 들었다. 참사당하고, 혹사당하고, 무참히 칼에 찔려 베이는 느낌. 흰머리를 뽑아내듯 악플을 깡그리 뽑아내버리고 싶었다. 그 사람의 눈으로 글을 읽으면 부유물에 쌓인 거처럼 글이 퇴색당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 느낌. 내 실력이 부족했거나 오해가 되었거나.
똑같은 글을 읽어도 다 다르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입장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은이의 동기나 취지를 한 번쯤 헤아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세상에 폭탄을 던진 것도 아닌데. 댓글을 보면 글에서 진짜 폭탄이 터질 거 같았다. 굳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거친 맘을 쏟아내면 후련해질까. 그런 댓글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던데 말 그대로 악성, 악함이 흘러나오고야 마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처음 겪는 일이라 하루는 꼬박 위축되었다. 유명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내가 익명의 사람들로부터 쓴소리를 듣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작은 댓글에도 이렇게 마음이 상하는데 기자들과 공인들이 악성 댓글이 수두룩하게 쌓일 때마다 삭혀야 한다는 게 극한직업처럼 느껴졌다. 꿋꿋이 버텨낸 글과 사람들에게서 멘탈을 본받고 싶었다. 화살에 꽂혀 움직일 수 없었던 다음 날, 댓글로부터 지킬 힘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꼭 일러바치는 거 같은 신고하기, 차단하기. 그것만으로 나에게 힘이 생긴 거 같았다.
신고하기, 차단하기 말고 그들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혹시 댓글 단 사람 중에 초등학교 때 내가 지우개를 빌려주던 아이였는지도 모르는데, 길을 가다 길을 알려준 행인일 수도 있었는데, 운전하다 양보해준 차였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우리는 만나고 스쳤을, 혹은 아는 사람들일지 모른다고 구차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얘기하고 싶었다.
간혹 아르바이트생이 입은 셔츠에 쓰여 있는 글귀, 전화상담원과 통화하기 전 들리는 연결음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아빠, 엄마이고,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며 형, 누나, 언니, 오빠, 동생이라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말할 일은 없으니 나에게 속삭여야 했다. 글을 쓰려면 잡초처럼 단단해져야 한다고. 무엇보다 글을 쓰는 이유,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말이다. 한 사람을 지키려면 무뎌지고 무장해야 한다. 무뎌지는 시간보다 돌아서면 까먹는 블랙홀 같은 기억력이 더 빠른 거 같아 다행이지만. 소외되고 상처 받은 사람들, 소리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소리 내야 한다는 마음은 더 또렷해졌다. 나의 작은 글이 한 사람에게라도 닿아지길 바라는 마음, 그것뿐이다.
그림: by 디자인한스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