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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Jan 29. 2021

글을 쓰지 않는 이유

글을 쓸 수 있는 이유

요즘 통 글을 쓰지 않았다. 대신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생각했다. 매일매일. 그것은 마치 연애하다 헤어진 애인을 바로 잊지 못했던 감정과 비슷했다. 너는 또는 나는 왜 떠나야만 했을까. 착착 꾸준히 글 쓰는 게 는 왜 그렇게 어려울까. 이유를 알면 나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기에 난 계속 물었다. 아침에 눈을 뜨기 시작해서 잠들기 전까지 오늘은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꼭 생각해냈다. 애정이 식었어? 싫증이야? 아니면 새로운 대안이 생긴 거니? 이 질문에 집요하게 매달리듯이.



그냥 귀찮았어.

집안일도 하고.

밥때기로 살면 하루 일당량이 금방 채워져.

맘속에서 맴돌아도 애써 찾지 않았어. 가끔 뭔가 차올라도 못 본 척했지.

가슴속에 묻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

어느 날은 아무 일도 없다고 넘어가고 싶었어.

글이든 책이든 읽는 게 얼마나 편하고 유익하고 재밌는지.

글쎄, 천혜향 껍질에서 나는 향기가 얼마나 감미롭던지 그날은 그것만으로 족했지 뭐야.

노트북 오래 붙들고 있으면 눈도, 허리도 아프잖아.

나 없이도 브런치의 세상은 잘 돌아가니까. 아하하.

근데 안 쓰니까 점점 수렁이 깊어지긴 하지만

무엇보다 하루가, 일주일이 너무 금방 가더라고.


그래, 알았어. 돌려 말하지 않을게.

사실은 말이야. 괜찮은지 알았거든.

뛰어넘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를 꺼내 보이는 게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건지.

그리고 얼마나 실망스럽고 수치스러운지.

일기 같이 쓰면 너무 내밀해서

공적인 글을 쓰면 나 같지 않아서

다 표현할 수 없는 가려진 언어에서

쓰면 쓸수록 한계를 느꼈어.

허들을 뛰어넘는 일처럼 매번 나를 넘어야 통과할 수 있더라.

힘들게 허들을 넘을수록 용납받고 인정받고 싶어지는 거야.

고등학교 때 쉬는 시간마다 1반부터 8반까지 차례차례 교실 앞문을 차고 들어가서 그렇게 오지랖 떨고 마당발이던 내가 꼬물꼬물 감춰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혼자 낯가림이 생기는 거 있지.

재작년 동네 수영장에 가면 초중급 수영 선생님들과 20대 아가씨들부터 80세 넘은 할머니까지, 외국인, 기센 언니들과도 금방 친해지던 내가 글을 쓰면 쓸수록 내 안에 갇혀지더라고. 진심이 담긴 만큼 진지해지니까. 도통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우리는 만난 적이 없어도 글로서 만난 사이여서 그런지 찐하게 느껴져서 그럴까.




최근 무명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말이야.    

 

마음이 가는 가수들은 꼭 탈락했어. 탈락해서 다시 붙은 가수도 있고 아직 남은 가수들도 있지만 애정이 던 가수들이 떨어지는 게 마음이 아플 정도였어. 충분히 매력 있었거든. 결국 매력과 실력을 넘어서 가능성이 있는 가수들이 살아남더라고. 많은 가수들이 자신이 가진 열정과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노래를 하는데 더 내놓으라는 거지. 그것은 마치 기술이든 감각이든 보여줄 게 더 있는 이들이 살아남는다고 말해주는 거 같았어. 글도 그렇지 않니. 어떤 글도 술술 쓸 수 있는 사람.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처럼 변화무쌍하게 둔갑하고 내공있는 작가들이 살아남는 거처럼. 끝내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작가들처럼.


난 말이야, 그냥 그들의 노래를 듣고 싶었던 거야. 누가 일등하는지 별로 관심 없어. 그들만의 색깔로 이루어낸 음악을 듣는 자체가 황홀했어. 무명이든 말든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껴안고 살아온 사람들. 그들이 가진 목소리와 몰입된 감정, 간절하고 촉촉한 눈빛이 얼마나 감동이 되던지. 어느 가수의 노래는 매번 눈물이 찍 나는 거야. 얼마나 힘들게 그 자리를 버티고 버텨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마주했는지 느껴져서. 벼랑 끝에서 부르는 그녀의 노래는 눈물샘을 꼭 터트려.


그들의 최선이 그들의 한계와 맞닥뜨리는 걸 보면서 괜히 마음을 동동 굴렀어. 좋아서 시작했던 음악이 전부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어떻게 심사평을 할 수 있겠니. 나 역시 무슨 마음으로 작가들의 열망을 응원하고, 또 나를 응원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야. 무슨 가능성인지 모를,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닌, 이게 그냥 나인데. 글을 쓰고 펼치고 보인다는 거 자체가 기적인데.


가수들은 탈락하면서 하는 말이 있어. 무대에 선 거만으로 행복했다고. 정말? 그토록 오래 간직하며 쓰다듬고 어루만졌던 노래를 부른 거만으로 행복했다는 말. 자신의 소중한 것을 사람들 앞에 보이는 거만으로 행복했다는 말이겠지. 어쩌면 그들은 알고 있던 거야. 경쟁이 될 수 없다는 걸. 아름다움이 어떻게 비교가 되고, 숫자로 평가되고, 합격과 탈락을 말할 수 있겠어.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울 뿐인데.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 잡은 히어로들도 많지만 난 자신의 것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가는 사람들도 멋있다는 걸 알았어. 천천히 가든, 지속적이든, 그냥 거기에 있는 사람. 아니, 돌아서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막연한 두려움 앞에 서서 갈팡질팡하는 마음은 언제든 찾아오니까.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게 어떤 모습이든지. 괜찮다고 말이야. 너도 나도 그렇게.




브런치를 하는 친구가 옆에 있다면 꼭 하고 싶었던 말이다. 아니, 브런치가 아니더라도 무언가에 슬럼프에 빠진 친구가 있다면 깊은 밤, 요즘 남편이 꽂힌 뱅쇼를 나눠마시며 하고 싶은 말이다. 그리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이다. 어떤 목적과 방향 없이 두런두런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사진: 금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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