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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Sep 08. 2021

국제도서전이 뭐라고 1

『감처럼 무르익고 싶어』를 찾아주세요!


 독립서점 겸 출판사인 '도도봉봉'이 우리 동네에 있다. 도도봉봉의 주인인 도도님은 동네 도서관에서 8주 차 글쓰기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는데 난 학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나는 이러다 절필하면 어쩌지, 글쓰기 끈을 붙잡는 심정으로 모임을 나갔다.

 

 글쓰기 모임 6주 차쯤이었을까. 도도님은 동네 인근에 있는 서점 두 곳과 같이 국제도서전에 나가게 되었다고, 새로 출판할 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글쓰기 모임에서 숙제를 빠지지 않고 해오던, 혹은 두 편씩 써갔던 내게 책을 내보자고 제안했다. 계속 내리던 비가 멈춘, 해가 뜨겁고 습한 여름,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날, 불쑥 제안을 받았다. 기대치 못한 말에 얼떨떨했고, 벅찼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글 쓰는 기쁨이 스멀스멀 차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이 나올 무렵 도도님에게 아무것도 없는 내게 왜 제안했냐고 슬며시 물어보았다. 난 세간에 파묻혀 자식 키우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도도님은 내 얼굴이 슬퍼 보였다고 했다. 이 사람은 책을 안 내면 병 들겠구나라고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도도님이 출판사를 겸업하는지 몰랐기에 난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도도님은 밀어붙이는 성격은 아니었다(만약 그랬다면 난 엄청 쫄려서 쫄바지가 되었을 거다). 무척 바쁘셨다. 국제도서전까지 한 달 남짓 남아있었는데 글을 모아 보라는 이야기 말고는 아무 얘기가 없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은 것 같기도, 긴 것 같기도 했다. 혼자만의 사투가 벌어졌다. 퇴고의 개미지옥에 빠졌다. 같은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내가 그렇게 군더더기가 많은 사람인지, 질질 끄는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끊임없이 잔가지가 뜯기고, 걸러 나왔다. 며칠 밤을 새우고, 먹지 못했다.


 국제도서전을 일주일 앞둔 시점, 표지 디자인을 마치고 인쇄소에 맡겼다. 국제도서전이 임박하여 ISBN을 달고 나오지 못했다. 앞으로 또 언제 나올지 모르는 책이어서 몹시 아쉬웠다. 첫 책이 나온다는 것은 나의 바람을 내려놓는 것,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책이 나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제도서전 바로 전날, 택배 기사님이 보내줄 따끈한 책을 동네서점에서 기다렸다. 도도님은 국제도서전 부스에 책을 세팅하러 갔고, 추적추적 비 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택배사에 연락해보니 추석 전이라 물건이 많아서 잔류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책이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책이 출판하기까지 쉽지 않은데 어쩜 도착하기도 쉽지 않다니. 난 동동 발을 구르며 고객센터 콜센터 상담원, 기사님과 통화를 했는데 물류센터 콘솔에 묶여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한다. 직접 찾으러 간다고 해도 안 된다는 얘기뿐이다. 온 세상이 책 나오는 걸 막는 기분이랄까. 콩자반이 간장에 졸아지듯 애간장이 녹았다.


 ISBN이 없어서 검색할 수 없었던 내 책은 국제도서전에 꼭 전시하고 싶었다. 수많은 책에 끼였을지라도, 마지막 줄에 맨 꼴찌일지라도, 빼꼼히 고개를 들어 알리고 싶었는데 그것마저 나에겐 섣부른 바람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닌 상황이 그랬다.


 다음 날 기사님에게 아침 일찍 연락이 왔다. 오후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제일 먼저 갖다 주겠다고 하셨다. 기사님은 이런 상황을 다 알지 못하셨음에도 내 갈망을 이해해주셨다. 동네 아는 사람들끼리여서 괜찮다고 하셨다. 난 그제야 책은 나만의 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여러 사람의 협동 작전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구덩이에 빠져 있는 날 건져주신 도도님이 계셨고,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학인들이 서로 응원하며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가 그랬고, 자신의 아끼는 사진을 내어주신 디자이너의 손길이 있었고, 인쇄소, 콜센터 상담원, 택배 기사님까지 점점 살이 붙어서 마지막 읽어주는 독자까지.




 책이 도착했다. 책이 든 상자를 싣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2층에 위치한 출판사 부스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40권 가량의 책이 박스에 들어 있어서 분명 무거웠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비상구 계단을 뛰어오르던 순간이야말로 내 생애 잊지 못할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애쓰면서 살아가는 걸까. 그게 무엇이라도 엄청 귀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편의 글을 읽어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뼛속 깊이 깨달았다. 집에 먼지 쌓인 책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배웠다. 무엇보다 실패할 것에 두려워하기보다 실패하면 어때, 여물어가는 과정이야,라고 말해준 우리 엄마. 길거리에서라도 팔고 싶다는 우리 엄마도 계셨다. 또 집안일과 아이들을 맡아준 남편과 응원해준 아이들까지. 그렇게 한 권의 책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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