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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Sep 11. 2021

국제도서전이 뭐라고 2

『감처럼 무르익고 싶어』를 찾아주세요!


 전시회 날, 엄마랑 아빠가 오셨다. 나는 길이 복잡하니까 오지 말라고 했건만 두 분은 헤매다 겨우 도착하셨다. 오랜만에 구두를 꺼내 신은 엄마는 길을 헤매는 동안 발가락이 무척 아팠다고 했다. 걷고 또 걸으시면서 내게 전화를 거셨다. 통화음에 “내 딸이 책을 냈어요. 들어갈 수 있어요?”라고 관계자에게 물어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입구 앞에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체온 측정하고, 입장료를 내야 들어가는 절차를 모르셨기 때문이다. 어쩌면 엄마는 자랑하고 싶으셨을지도 모른다. 별 볼 일 없었던 막내딸이 책을 냈다고. 내가 그 애 엄마라고.

  

 입구 앞에 이마에 땀을 슬쩍 닦고 계시는 아빠가 보인다. 우리는 도서전에 들어가 내 책이 전시된 부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책 한 권씩 들고서.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로 행사에 아빠를 본 건 처음이어서 좋기도 하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쑥스러웠다. 마스크에 이 가려졌어도 우리는 웃고 있었다. 아빠는 열 권을 사셨다. 지인들에게 “내 딸이 쓴 책이야”라며 내미는 모습을 시늉하시면서 웃으셨다. 그리고 내 책 옆에 있는 다른 책도 사셨다. 아빠가 책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는데도 말이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내게 아빠는 “내가 더 고맙다”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나진 않았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빠가 땀이 나고, 엄마가 발가락이 아팠어도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분들의 얼굴은 화려한 책 시장 앞에서 주눅 든 나에게 힘을 주었다.


 수많은 책과 좋은 책들 사이에서 엊그제 막 나온 내 책을 집어 든다는 것. 그것은 마치 무심코 하늘을 치켜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는 확률보다 낮을 거 같았다. 무명이 썼고, 크기도 작고, 디자인도 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두움을 밝히는 별처럼 책을 사가는 분들이 계셨다. 난 속으로 그들을 향해 절을 열두 번도 하고 싶었다. 그분들이 사인해달라고 내지를 펼쳐 들 때마다 손이 달달 떨렸다. 내가 무슨 사인을 한단 말인가. 상상해보지 않았기에 연습도 못 했고,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라 까마득했다. 몇 번의 실수로 내지를 찢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별똥별처럼 그들은 책을 가지고 사라졌다.


 오전 11시부터 밤 8시까지 부스를 지키느라 점심도 굶었는데 하나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오히려 배가 불렀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서 책을 팔고 있다는 사실이 축제였다. 책이 많이 팔려서 그런 건 아니다. 한 권이라도 팔린 게 기적이어서 그랬다.




 그날 아빠는 가게로 가시고, 엄마는 집으로 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타셨다. 엄마가 탄 마을버스는 집과 다른 방향으로 가버렸는데 팻말을 잘못 보고 타신 것이다. 어느 할머니가 가만히 있으면 집이 다시 나타날 거라는 조언에 엄마는 한 시간 넘게 마을버스를 타고 투어하셨다.


 그러다 종점에서 소독하시는 아주머니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셨는데 어디에서 내리시냐고, 소독해야 하니 내렸다가 다시 타는 게 좋겠다며 담소를 나누셨다고 했다. 마침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냐고 물음에 엄마는 딸이 책을 내서 다녀오는 중이라면서 책을 꺼내셨다. 엄마는 밝고 호방한 아주머니에게 책을 선물로 주셨다. 그 아주머니는 첫 책이니 사인해달라고 해서 엄마가 사인을 해주셨다. ‘2021년 9월 9일 〇〇〇의 엄마.’  


 엄마는 그렇게 사인을 하고 마을버스에서 내리셨다. 엄마는 무엇이든 나눠주시는 분이라서 기분 좋게 선물하셨을 거다. 엄마가 인심 좀 팍팍 쓰게 책을 더 찍어낼 걸, 아쉬울 정도였다. 어쨌든 엄마의 신난 목소리에 내 움츠려진 어깨가 웃느라고 들썩인다. 눈이 아파도, 자다가도 일어나서 새벽에 책을 아껴가면서 읽는다는 우리 엄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아빠는 안 읽으셔도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 그게 싫지 않은 걸 보면 내가 그분들에게 안긴 작은 첫 열매여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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