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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Sep 12. 2021

국제도서전이 뭐라고 3

4인방 친구들(탱고, 귤, 트위티, 도토리)

 책을 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기 민망하지만 가까운 지인에게는 알려야 한다. 아직 얼떨떨하고 이상해도,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해야 할 일이다. 작은 결실이라면 결실이라 카톡 사진에 턱 하니 올려놓았다. 생각보다 별다른 관심이 없다. 축하한다는 말을 꼭 듣고 싶었던 나는 4인방에게 쪼르르 알렸다.


 탱고, 귤, 트위티, 도토리인 나까지. 4인방은 동네에서 자랐던 친구들이다. 여중, 여고를 같이 나왔다. 같은 반 된 적은 없어도 학원과 도서관을 같이 다녔다. 결정적으로 중 3학년 때, 반 친구들과 내가 사이가 틀어졌을 때 이 친구들이 내 곁을 지켜주었다. 내게는 보배 같은 친구들이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4인방으로 결성되었다. 도시락 같이 먹고, 영화 보러 가고, 햄버거 두 개씩 먹고, 스티커 사진 찍는다고 쥐 파먹은 듯 빨간 립스틱을 발랐던 추억. 엄마가 사준 옷이 아닌 내가 쇼핑해서 처음 옷을 고른 것도 이 친구들 덕분이었다. 수능 백일 전, 탱고 집에서 맥주, 소주, 양주로 백일주 마시다가 인사불성으로 취해서 춤추고 복도를 뛰다 탱고네 옷 공장에 있는 옷더미에 토했던 기억. 격동의 사춘기 시절에 지우고 싶은 흑역사를 속속히 알고 있는 친구들이다.


 우리는 성격도 관심사도 정말 달랐다. 같은 연예인을 좋아한다거나 취미가 같다거나 공부에 열의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대화의 쿵작이 맞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4인이 완성된 느낌이라 한 명이라도 빠지면 허전했다. 의리 강하고 할 말은 하지만 따뜻한 탱고, 나무늘보처럼 느리지만 뚝심 있는 귤, 똑소리 나게 열심히 사는 트위티, 어리바리한 도토리인 나까지. 4인방이 사이가 항상 좋았던  아니다. 실수하고 비난하고 또 무정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시간이 해결해주거나 누군가는 용기를 내어 화해했다. 서로를 다 이해해서가 아니라 내버려 두었다. 그 내버림의 시간이 서로를 이해하게 될 만큼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였다. 그 시절 울고 웃던 친구들이라서 우정이라는 ‘정’이 흐를 만큼 켜켜이 쌓인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탱고는 내게 '넌 편지를 잘 쓰는 거 같아'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난 그 말이 좋았다. 우리는 경조사를 챙길 만큼 가까웠기에 소식을 알리자 다들 축하해주었다. 가끔 안부를 전하고 통화도 했지만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건 재작년 귤의 출산하기 며칠 전 양꼬치 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출간 소식에 내가 없는 카톡방에 싸움이 일어났다.


 건네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도서전에 언제 갈 수 있냐부터 시작해서 화환을 보내느니, 화분을 보내는지 설왕설래하며 그들은 의견 충돌이 일어났고 서로의 일정이 맞지 않았던 그들은 결국 내게 케이크와 화분을 보냈는데 더 큰 걸 보냈어야지 하면서 한 명이 카톡방에 튕겨져 나가도록 싸웠다는 후문.


 으이구, 못 말린다 정말. 화환? 화분? 저자 출판회도 아니고 도서전이라니까. 딴 데 돈 쓰지 말고 책을 사서 나눠주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들은 날 무지하게 축하해주고 싶었던 거 같은데 도서전에 나 없으니까 극구 오지 말라던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거 같다. 내가 바랐던 축하의 말을 넘어서 넘치도록 축하하려다가 고민에 빠지다니. 미처 몰랐다. 문제의 원인을 짚어보니 내가 뜬금없이 책을 낸 게 잘못이다. 나 때문에 싸웠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잠시 고민이 들었다.


 어쩌면 친구들은 근사하게 축하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는 동네가 멀어지고, 연락도 자주 못 하고, 일 년에 한 번도 못 만날지라도 친구는 친구였다. 그런 우리가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소통이 되지 않아 티격태격했을지라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대로였다.


 한 달 뒤에 만나기를 약속 잡았다. 사는 게 바빠도 너무 바빠진 4인방을 만나려면 한 달 전부터 약속을 잡아야 한다. 아이 키우고 일하느라 펑크가 날지 모르지만 친구들은 그날 만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가 생일에 갔던 피자헛을 갈지 아니면 곱창에 볶음밥을 먹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만나고 자랐던 왕십리에서 불나방 같은 4인방이 날아들 것이다.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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