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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 있는 Sep 25. 2021

국제도서전이 뭐라고 4

『감처럼 무르익고 싶어』

 

 책이 한 권 나오고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분명 달라진 게 있다. 도봉문화재단에서 취재가 들어와서 이웃들을 만날 기회가 몇 차례 생겼다. 또한 교회에서 3개월마다 묵상집이 발간되는데 목사님을 찾아가 신앙 에세이를 연재하고 싶다고 간청해서 허락받았다. 어쩌자고 일을 벌였는지, 무모한 용기였다. 글로 소통하고 싶었던 마음이 지역사회로, 교회로 끈을 붙잡고 있으면 글을 계속 쓰지 않을까 싶었던 모양이다.

    

 선량한 동네 언니가 책의 탄생을 축하한다며 케이크를 선물해주었고, 연락이 뜸해진 지인과 오랜만에 약속이 생기기도 했다. 뭐니 뭐니해도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친정 식구들이 책 한 꼭지씩 돌아가면서 낭독해주었다. 새언니, 오빠, 아빠, 엄마, 남편, 조카들까지. 가족의 목소리로 글이 읽히는 건 매우 낯간지럽고 민망했지만 한바탕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책이 타인의 손에 넘겨진 이상 책의 운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깍두기 같던 막내인 내가 그때만큼은 주인공이 된 거 같아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유가 있었다.

   

 책은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책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이 모든 게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감격스러웠으나 내면적으로는 몹시 괴로웠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얼마나 두려움이 많은 사람인지 실체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상하리만큼 기쁘지 않았다. 얼떨떨하거나 안절부절못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스스로 그런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물었다. 칭찬받을 때마다 내가 이룬 성과가 아니라고 손사래 치며 부인하기 바빴다. 누군가는 그랬다.


“왜 이렇게 말을 더듬어? 좋으면 좋아하면 되잖아.”

 이 모든 게 처음이어서 그렇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내 얼굴을 살피는 사람 앞에서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기뻐해도 되는 건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건지,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책에 돈을 받는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 자신이 없었다. 무엇인가로부터 눈치가 보였고 두려웠다. 내 안에 있던 공포의 그림자가 멱살을 잡고 “누가 너보고 글 쓰래? 누구 맘대로 책을 낸 거야? 누가 읽기나 할 것 같아?”라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긍정은 이 모든 걸 은혜라고 말했고, 부정은 과분한 성과라고 말했다.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 내 안에 작은 아이가 웅크려있기 때문이다. 내 책이 읽히기를 바라면서도, 나의 치부가 드러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왜 이렇게 책이 팔리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그것이 나의 수준 같은 기분. 보잘것없어도 잘 찾아보면 보잘 것 있을 거라고 긍정의 저울이 움직여지기를 바라는 기대. 이런 기분을 요약하자면 마치 도서관에 책이 꽂혀 책장 끝자락, 맨 밑 남들의 발등에 가려진 상태가 만족스러울 거 같았다. 책을 내고 싶으면서도,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누군가 알아차릴까 부끄러운 마음. 이중성이 널뛰었다.


 등단하지 못해서 오는 자격지심 같은 것일까. 남들보다 독서량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그럴까. 아니면 글을 꾸준히 쓰는 성실함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최선을 다해서 내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다가서려고 용기 냈고, 소심하게나마 글을 써 왔던 것인데 이런 부끄러움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글을 쓸 때는 철저히 동굴 안에 갇히는 것처럼 책이 나온 이후의 감정도 동굴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 모든 게 처음이고, 어색하고, 어렵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내 안에 있는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면 명확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부정을 잠재우기 위해 조금씩 노력할 것이고, 긍정을 선택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그게 지금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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