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내 이름

by 감 있는

내 이름은 김도경. 법도 도(度), 서울 경(京). ‘서울의 법’이라는 뜻이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인생을 살아가는 바람이나 의미를 담기 마련인데 서울의 법이라니. 이름을 소개하면 이름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때마다 나는 얼굴이 벌게져서 머뭇거렸다. 누구나 홀랑 까버리기에는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으니까. 이름과 다르게 법률 단어를 아는 게 없고, 서울의 법을 지키며 살아간다고 하기에는 이름의 운명을 설명하는데 충분하지가 않다.


내 이름의 뜻을 부모님께 물어보면 작명소에서 비싸게 지은 이름이라는 말뿐이다. 도도하게 살기를 바랐다는 아빠의 우스갯소리는 전혀 도도하게 넘어갈 수 없다. 살면서 도도함은 쉽게 지닐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름이 중성적인 느낌이어서 남자와 여자에게 두루 쓰인다. 흔하디 흔한 이름은 아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내 이름을 마주칠 때가 있다.


아들이 새 어린이집을 가던 날, 집에 오자마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반에 엄마랑 이름이 똑같은 친구가 있어.” 여섯 살 난 아들의 친구가 나와 이름이 같다니. 그럼 아들은 친구에게 엄마 이름을 막 불러댈 게 아닌가.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일이었다. 순간 나의 이름이 낯설고 묘연하게 느껴졌다.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엄마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자연스러운 일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갔다.


어린이집 졸업식 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분위기 속에서 졸업식은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이별 노래를 부르며 선생님과 아이들이 울었다.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거 같아 나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지막 순서로 선생님은 아이가 부모에게 고마운 점을 손수 쓴 상장을 주는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갑자기 “김도경 어머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갔다. 평소 내 이름은 기역 순으로 항상 앞부분에 호명되지 않았던가. 나는 눈물을 훔치며 의자 사이로 걸어 나갔다. 뒤에서 남편이 황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 자기 아니야.”


기분이 싸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아이에게 엄마 둘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아이는 자신과 닮은 엄마에게 상장을 건네고 안겼다. 그 아이는 바로 아들의 친구, 김도경이 분명했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황급히 돌아섰다.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저 여자가 앞으로 나갔을까?’ 이유를 몰랐겠지만 남편은 입을 틀어막고 웃어댔고 나는 한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졸업식 이후 김도경이라는 아이는 만날 수 없었다. 한동안 나만의 이름으로 독차지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상담 기간에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직접 책 만드는 수업을 했다며 아들이 만든 책자를 보여주셨다. 글과 그림이 정성껏 채워져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흰색 가운을 입고 이름표에 ‘김도경 박사’라고 써진 인물을 발견했다. “엇! 김도경 박사네요.” “네, 아이가 말하지 않던가요?”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난 속으로 ‘아들이 엄마를 박사로 생각해주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 아들이 물어볼 때마다 귀찮아하지 않고 무엇이든 대답해주려고 했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박사 학위가 없어도 엄마를 척척박사로 자식이 인정해주면 되지. 내가 자랑스러웠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들뜬 마음은 주체할 수 없었다. 집에 뛰어 들어가 아들에게 외쳤다. “아들아, 김도경 박사 왔어!” 아들의 눈이 놀라서 동그랗다. “어? 어떻게 알았어?” “네가 쓴 책 보고 알았지. 어쩜, 엄마를 그렇게 생각하다니.” 난 감격에 겨워 아들을 꼬옥 안았다. 그러자 아들이 담담하게 말한다. “엄마, 그거 책에 나오는 이름이야. 『인간만 골라골라 풀』이라는 책. 그 책을 따라 만드는 과제였어. 거기에 김도경 박사가 나와.”


아들이 평소 엄마의 이미지를 떠올려서 쓴 이름이 아니라 동명이인 등장인물. 이번에도 헛다리, 김칫국 한 사발. 뭔가 툭 하니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떤 말보다 달콤했기 때문에 “아냐, 엄마는 김도경 박사 할 거야”라며 우기기 시작했다. 급기야 아들이 현관문 앞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조용히 암호를 대라고 했고, 아들은 “김도경 박사!”를 외쳐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름 덕분에 예상치 못한 수모를 겪는다. 점점 내 이름이 특별해진다. 본래 나로서의 김도경도 있지만 입체적인 사연들로 다채로워지기 때문이다. 내 이름의 여러 지분이 있다면 진정 아들의 친구가 되고 싶고 똘똘한 엄마가 되고 싶다. 지식적인 걸 뛰어넘어 아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이자 박사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