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 나이를 말할 때 3으로 시작되었던 앞자리 숫자가 4로 바뀌었다. 수련 과정에 따라 태권도 띠 색깔이 달라지는 거처럼 인생의 십 주년마다 하얀 띠에서 노란 띠로, 초록 띠에서 파란 띠로 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의 띠에는 승급심사가 없어서 그런가. 인생을 수련할수록 막힌 담을 거침없이 발차기로 깨부수고, 날아 차기로 후려치며 인생을 역전시키는 방법을 배우면 좋으련만 살아갈수록 몸뚱어리는 굼떠지고, 빛이 바래지는 중년이 되어버렸다.
마흔이 될 무렵 몸에 크고 작은 신호가 나타났다. 이마에 여드름이 났다. 사춘기 때도 여드름이 없었는데 이마에 크고 작은 좁쌀들이 자꾸만 났다. 흰머리도 부쩍 많아졌다. 흰머리 한 올 뽑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10원씩 주었는데 아이들이 내 흰머리를 뽑으면 용돈을 벌 수 있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허리디스크의 고질병은 한 시간 이상 서 있으면 허리가 무너져 내릴 거 같고, 새로운 곳을 가면 화장실부터 찾는 엄마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되었다.
며칠 전에는 얼굴이 새빨개진 사건도 있었다. 처음 참석한 모임에 식사하는 자리였다. 앞에 앉으신 남자 어르신이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할 말 있다는 표정이다. 밥을 먹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다 꾹 참는 게 아닌가. 혹시 내게 무슨 할 말이라도? 그분의 머뭇거림을 기다리다 못해 자리에 일어섰다. 마침 사람들이 내게 알은체하자 다가가려는 순간, 그분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이 다급하게 바지 지퍼를 올리라는 손짓을 보냈다. 이럴 수가. 앞 지퍼가 반쯤 내려가서 팬티가 보일락 말락 하고 있었다. 후다닥 뒤돌아서 바지 속에 넣었던 티셔츠를 꺼내 덮었다. 지퍼가 동그랗게 굴곡진 똥배의 압력을 못 견디고 슬슬 내려간 것이다. 이런 실수를 얼마 만에 한 것인지. 이건 분명 나이 탓이다. 젊게 입어보겠다고 티셔츠를 바지에 넣었다가 똥배가 가만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입맛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에는 콩이 쥐똥같이 생긴 게 맛이 없었다. 콩을 골라내 식구들의 밥그릇으로 몰래 옮기는 것은 고역이었다. 지금은 콩이 어찌나 구수한지 쌀밥만 먹으면 허전해서 꼭 콩을 넣는다. 여름이면 콩국수의 담백한 국물을 호로록 마셔야 살 거 같고. 또 예전에는 아무 맛도 안 나는 떡이 요즘은 왜 이렇게 찰지고 홀리는지. 세상에서 가장 맛없다던 콩떡이 냉동실에 쟁여두고 꺼내먹는 간식이 되었다. 그렇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들의 재발견이랄까.
어른 입맛으로 바뀌는 증거가 속출하는 가운데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떼어 놓는 데 명확하고 압도적인 대명사가 있다. 바로 두리안. 열대과일의 황제라는 두리안을 처음 맛보았던 건 이십 대 초반 캄보디아였다. 두리안을 생으로 만든 주스를 한 입 마셨다가 욱 코를 감싸며 세상에 이런 과일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방구석에서 몇 달 곪은 과일을 시장 물정 모르는 외국인에게 파는 게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삭힌 홍어를 아무리 좋아해도 두리안의 특유한 냄새는 참기 어려웠다. 내 인생에 아웃이라고 선을 그었다.
엄마가 자신의 생일에 청과물시장에서 두리안을 사 오셨다. 도깨비방망이가 있었다면 두리안이랑 흡사했을 것이다. 둥그런데 껍질이 두껍고 가시가 뾰족하다. 꽤 묵직하다. 맨손으로 들었다가는 고문의 도구로 쓰일 만큼 가시가 촘촘하다. 맛도 없는데 비싼 걸 사 왔다며 엄마에게 성화를 부렸다. 엄마는 어느 호텔 카페에선가 두리안을 먹었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며 큰맘 먹고 사 오셨다고 했다. 엄마는 생일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순간 두리안을 꺼냈다. 손에 목장갑을 끼고, 두리안을 톱질하듯 칼로 갈랐다. 쫙하고 반으로 갈라졌다. 속살은 마치 커다랗고 노란 애벌레가 나무 숨구멍에서 잠들어 있는 거 같았다. 구릿구릿 냄새가 살살 퍼졌다.
엄마는 무스 케이크처럼 흐물흐물한 속살을 포크로 떠드셨다. 엄마의 눈이 자동으로 스르륵 감기더니 눈을 번쩍 뜨셨다.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다른 식구들이 “오, 먹을 만해. 맛있어!”라는 말이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나도 용기를 내어 한 입 떠먹었다. 이십 년 전 느꼈던 강렬한 냄새와는 다르게 향긋한 크림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내가 알던 맛이 아니다. 꾸덕한 식감이 은은하게 달면서 촉촉하고 깔끔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접시에 묻은 두리안을 혀로 싹싹 핥고 있었다. 나는 수줍게 웃으며 왠지 수분크림처럼 피부에도 좋을 거 같다며 두리안의 잔흔을 손등과 얼굴에 펴 발랐다. 며칠 동안 코끝에서 향기가 아른거릴 만큼 또 먹고 싶었다.
난 두리안을 먹고 다시 태어났다. 세상에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여드름과 흰머리, 똥배만큼이나 숨기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질 테지만. 발을 힘껏 차올라 거꾸로 물구나무 서보고, 길을 걷다 좋으면 갑자기 텀블링해보고 싶은 충동에 마음만 팔랑거리겠지만. 몰랐던, 이미 알았던 세상에 화들짝 놀란다. 여전히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