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이 안 나는 편이다. 땀구멍이 열려서 주르륵 땀방울을 흘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땀 흘리는 상황을 피한다. 여름에 산을 오른다거나 달리기하는 등 숨이 차오르는 액션을 즐기지 않는다. 매운 음식을 먹어도 콧물이 날 뿐이다. 한증막에 들어가면 벌겋게 얼굴이 익어서 콧잔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겨드랑이에 땀이 젖기도 하지만 줄줄 흐를 정도는 아니다.
땀이 흐르는 얼굴을 보면 무언가 열정이 느껴져서 숙연해진다. 같은 오늘을 살아가면서 땀을 흘리는 수고가 대단해 보이는 건 땀은 뜨거울 때 터져 나오는 것이어서 그런가. 빗방울 같은 땀이 아닐지라도 땀 한 방울의 가치가 내겐 없었던 건 아닌지, 밤이 되면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이유가 별 성과 없이 하루를 보낸 건 아닌지 묻는다.
전업주부가 식사 준비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은 살림의 기본 옵션이다. 빨래는 세탁기가, 청소는 청소기가,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하지만 기계가 굴러가기까지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일은 없다. 예측하지 못하는 일에 따라, 숙련 정도에 따라 노동의 강도는 달라진다. 앞치마를 두르고 출근한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는다. 스위치를 누르면 데굴데굴 구르는 빨래처럼 나도 집안일에 굴러가는 하루가 반복적이고 일정하다. 삼시 세끼의 총 책임자로서 밥 차리고 치우는 일. 먹고사는 일이 하루 삼세번, 매일 찾아온다.
지인이 보낸 매실 10킬로가 도착했다. 왕방울처럼 큰 황매실이다. 도전! 경건한 마음으로 주방에 입실한다. 매실의 잔털을 깨끗이 씻어내고 물기를 닦고 꼭지를 따고 씨를 분리한다. 씨를 쏙 뺀 매실에 설탕을 콸콸 쏟아붓는다. 꼬박 반나절 걸려 완성된 매실청을 커다란 유리병에 담는다. 청을 담는다는 것은 정기적금을 드는 것과 비슷하다. 일 년 뒤 가족이 배가 아프면 매실차로 마시고, 요리할 때 설탕 대용으로 쓰일 것이다.
잠시 뒤 매실청을 덮었던 덮개와 뚜껑이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다. 매실이 숙성되면서 생기는 가스에 폭발된 모양이다. 거품이 보글보글하다. 땟국물 같은 설탕물이 줄줄 흘러넘친다. 낭패다. 매실을 덜어내고 설탕을 부었다. 가스가 찬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는데 지인이 내게 병을 흔들었냐고 물었다. 그분은 매실 120kg을 항아리에 담고 땅에 묻은 숙련자였다. 주걱으로 슬슬 휘저어야지 병을 흔들면 가스가 생긴다고 한다.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려다가 설탕이 빨리 녹으라고 흔들어댔던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무심코 흔들었다. 한발 늦었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매실청에 다시 기대어본다. 효소가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열심히 숙성되기를.
이웃이 막 딴 머윗대를 내 손에 들려주었다. 머위 껍질을 까고 데치고 무쳐서 처음으로 머위들깨나물을 완성했다. 한 입 먹었는데 이상하다. 질겨서 삼킬 수 없다. 껍질을 깐다고 깠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실패다. 요리 블로그와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숙지했는데 실전과 다르다. 낭패와 실패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매실 손질하느라 손바닥이 쭈글쭈글하고, 머위 까느라 손가락 끝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손이 따가운지 부끄러운지 화끈화끈하다. 뭔가 애쓴 거 같은데 가스가 찬 매실청은 베란다 구석에 있고, 머위 나물은 고기보다 더 질긴 밑반찬이 되었다. 밥상에 차릴 반찬이 없다. 마트로 달려간다. 무얼 사야 할지 몰라 머리가 멍하다. 입맛이 없다. 마트를 돌다 우두커니 섰다가 또 돌다 서성인다.
저녁 식사를 하면 긴장이 탁 풀린다. 설거지가 남았다. 배가 부르니 손 하나 까딱하기 싫다. 고비다. 하지만 내일 아침 산더미 같이 쌓인 설거지통을 마주하면 그날 하루의 시작이 꼬여 버린다. 냄비를 닦다 머리가 핑 돈다. 하지만 땀이 나는 건 아니다.
다이어리를 편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생각한다. 한참 고민하다 ‘매실청’이라고 적는다. 매실을 담그는 숱한 과정이 담기지 않는다. 멀쩡한 매실청이 아닌 먹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스러운 매실청의 이야기는 생략된다. 편식하는 아이들을 위해 메뉴를 고민하고, 마트를 가고, 장바구니를 무겁게 들고 온 과정은 써 내려갈 수 없다. 십 년을 살림했어도 손에 늘지 않는 요리 실력에 몇 번이나 레시피를 찾고 읽었던 노력은 다이어리 하얀 여백에 무심히 사라진다. 양파를 썰다가 눈이 따가워 눈물을 줄줄 흘린 것도 쓸 수 없다. 음식을 조리하면서 간을 보고, 갸우뚱거리면서 맛을 보았던 나의 수고를 쓰기엔 왠지 사사롭다.
밥 먹는 일 같은 당연한 일에 나의 노동은 무게감이 실리지 않는다. 이상하다. 티도 안 나는 집안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하루라도 청소하지 않으면 티가 너무나 나는 집안일이다.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숨이 가쁠 만큼 고되었는데 땀이 날 정도의 일은 아니었을까. 뜨겁게 흐르는 땀방울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앞치마를 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