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코로나

by HOON

220322-220403 at 논산 육군훈련소



한 번 더

나 이제 이등병이여야 하는데.

아니 사실, 이등병이 맞긴한데…


밀접접촉자가 되었다. 그리고 확진.

다시 시작된 감금생활. 식판에 비닐을 끼워 밥을 먹고, 화장실가는 시간을 정해서 움직이며, 양치와 샤워를 통제받는다. 입대 직후 2주간의 격리가 끝나고 체력 단련 시간에 소대장이 그랬다. 가축마냥 방 안에 갇혀서 사육당하는 것보단 이렇게 나와서 푸쉬업이라도 하는게 좋지 않냐고. 뭔 개소린가 싶지만 그 땐 진짜 그랬다. 움직이고 싶어 방 안에서 복싱이니 줄넘기니 군장매고 스쿼트 이것저것을 했으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움직임이 없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처럼, 생각이 많을 땐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 생각이 없어진다. 그래야 생각이 없어진다. 그래도 시간은 정직하게, 혹은 조금은 더 빨리 지나가기에.


그래서, 훈련병일 때의 기억들을 복기했다.



숨을 헐떡이며

난 고3때 인생 최고 몸무게를 달성했었다. 체육 시간은 체력을 아껴야 한다는 이유로 설렁설렁 뛰어다녔고, 하루의 대부분을 앉아있었다. 그래서인지 수능이 다가왔을 즈음엔 저녁만 되면 앉아 있기만 해도 허리가 아팠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재수할 땐 몸 관리를 했다. 먹는 것을 줄이고 집에 갈 때는 지하철역부터 수십 분을 뛰어서 갔다. 그렇게 재수 기간동안 10kg가 빠졌다. 대학에 들어가고 그 몸무게를 유지하다, 2학기 기말고사 기간에 많이 놀면서 먹었다. 공부하다 부르면 맥주 한 잔 하러 나가고, 술자리가 많았다. 그렇게 살이 점점 붙더니 90kg을 찍었다. 고3 시절 보다 더 늘었다. 그 상태로 군대에 왔다. 90을 찍고 군대에 왔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 몸으로 구보를 뛴다. 숨이 찬다. 안경에 김이 서린다. 우리들의 머리 위로 김이 올라온다. 땀에 젖는다. 여름이라 땀에 젖는건 아니다. 지금은 2월이다. 구보를 할 때 마다 숨 넘어가기 직전의 경계를 보고 왔다.


모두가 동의하는 가장 힘든 구보를 뛴 날이 있었다. 그걸 뛰고 생활관에 돌아와 동기들에게 물었다. 오늘 구보가 가장 힘들지 않았냐며. 너넨 안 힘들었냐고. 동기들의 대답은 의외였다. 자기들도 죽을 것 같았다고. 그런데 앞에서 휘청거리며 개같이 뛰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차마 열외를 할 수가 없었다고. 내가 놀란 이유는. 그들도 힘들구나. 동기들은 구보를 꽤나 잘 뛰길래 그저 그런 뜀걸음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들도 격리 후 첫 구보, 군화 신고 뛰었던 구보, 아침에 일어난 직후 뛰는 구보, 체력 단련 시간에 뛰는 구보 모두 힘들었구나. 또 하나는 그들이 나를 보며 버텼다는 것. 뿌듯함이라 하기엔 상황과 장소가 맞지 않고. 그 순간에 든 생각은, 이곳에서 지덕체 중 적어도 하나는 얻어서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그 날도 구보는 이어진다. 연병장 두 바퀴가 죽도록 힘들었던 그 때와 다르게 오늘은 뛸 만 하다는 것. 할만하다. 할 수 있다. 뇌를 뺀다. 그저 개같이 뛰어보자. 앞사람만 바라본다. 오른쪽 발이 앞으로 나가면 내 오른발을 앞으로 밀며 왼쪽 발이 움직이면 같은 발을 내민다. 구보가 끝나간다. 중대 건물 앞에 수백명이 서있다. 수백개의 머리 위로 김이 피어오른다. 숨쉬기 운동을 한다.


찬바람이 폐에 스친다.



손으로 쓴 편지

군대에서는 손편지를 쓰게된다. 인편에 답장을 하기 위해서, 매주 부모님께 보내는 효도 편지에도, 심심해서 글을 끄적이면서도 손으로 글을 쓰게 된다. 근 10년간 손으로 글을 쓴 경우는 문제 풀이, 설문조사, 서술형 답안 정도 밖에 없지 않을까. 나를 위한 글을 쓰다가 누군가를 위한 글을 쓴다는 것. 나만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누군가를 바라보는 관점이 된다는 것. 손편지를 쓰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글을 끄적이다 보면 그 사람과의 기억이 떠오른다. 난 왜인지 사소한 기억이 많다. 기억력이 좋다고 해야하는지, 작은 것들도 쉽게 놓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지나가듯 했던 대화 한마디, 카톡 한 구절들이 나에겐 깊이 박혀 잘 빠지지 않는다. 내가 편지를 쓸 때면 동기들이 항상 그랬다. 아직도 쓰고 있냐고. 자신은 3-4장을 쓰는 동안 한 장을 다 못채우고 있냐고. 어쩔 수 없다. 떠오르는 모든 것을 쓰기엔 너무나 많고, 그들을 압축해 녹진한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한 글자에도 무게를 조금 더 담고 싶었다.


편지 그 자체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손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오늘 손편지를 쓰면서 하는 생각과 기분을 그 사람도 경험하면서 그 편지를 썼을까. 같은 경험이라면, 그 편지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종이 한 장의 무게는 터무니없이 가볍지만 그 편지에 담긴 무언가는 무겁다.



20대의 호르몬은 즐겁다

젊어서 그런가. 그런 말이 있지 않나. 10대는 옷깃만 스쳐도 깔깔대며 웃는다고. 20대 초반도 아직 그러한 것 같다. 대학가를 가보면 삼삼오오 모여 웃고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대 초반의 건강한 남성을 집단으로 하는 이 공간도 그러하다. 뭣같은 곳이지만 결국 그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종교행사가 있는 일요일이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행사는 없지만 각 종교에서 종이를 나눠주며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을 오전에 보장해준다. 훈련소의 종교행사는 조금 특이하다. 종교적 의미 그 자체보다 조금 재밌게 쉬어갈 수 있다는 시간. 방 안에 갇혀서 종이를 들여다보는 이 시점에 그 부분이 와닿진 않지만, 그래도 하나의 낙은 간식. 종교마다 간식이 다르다는 풍문에 우리 분대원들은 각기 다른 종교를 선택했다. 한 종교는 초코파이가 나오고 다른 한 종교는 몽쉘이 나온다. 몽쉘을 좋아하는 동기가 자신의 초코파이와 바꿔달라며 빌고 빈다.


초코파이와 몽쉘이 뭐라고 우리는 그렇게 즐거워했다.



1 2 3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밀접접촉으로 분류되기 직전, 자대배치를 받았다. 우리 분대원은 총 8명. 일곱이 운전병이고 한 명은 통신병이다. 모두가 후반기교육을 받기에 훈련소에서의 자대 배치는 어느정도 정해져있는 셈이다. 통신병은 정보통신학교라는 곳으로 간다. 즉, 자대 배치라고 할 것이 없다.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그러나 운전병들은 마음을 졸일 수 밖에 없다. 운전병의 후반기교육을 담당하는 수송교육대는 세 곳이다. 강원도 홍천의 1수교, 경상북도 경산의 2수교, 경기도 가평의 3수교. 이제는 전국으로 자대 배치를 받는다고 그렇게 떠들어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1수교는 강원도로, 2수교는 한강 이남으로, 3수교는 경기도로 간다. 그리고 여기에 ‘나는 아니겠지’는 통하지 않는다. 7명은 자대 배치에서 2수교가 뜨길 기도한다. 자대 배치의 결과는. 3명이 2수교, 4명이 3수교. 나는 3명일까 4명일까.


후반기교육 받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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