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56번 교육생

by HOON

220404-220424 at 경산 2수교



인력수송 물자보급

논산을 떠난다. 경산으로 간다. 운전병. 일빵빵 소총수 다음으로 많다는 운전병이다. 훈련소 배출 일자의 아침은 빨리 찾아온다. 전 날 밤, 아쉬움에 끊기지 않은 많은 대화로 늦게 잠들었지만, 훈련소를 떠난다는 긴장감에 눈이 또렷이 떠졌다. 먹는둥 마는둥 아침을 먹고, 짐 정리를 마무리 한다. 전투복을 갖춰 입고, 서로의 배레모 각을 잡아주며, 커다란 의류대를 맨다.



연무대역으로

논산훈련소를 나온 사람들은 기억할까. 연무대역으로 향하는 커다란 직선 도로를. 흔히들 보았을 ‘호국요람’이 아닌 곧게 뻗어 군부대임을 보여주고 위병소가 설치된 그 곳을.


걷는다. 또 걷는다. 위병소를 지난다. 육교를 건넌다. 걷는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기차 플랫폼이 등장한다. 등 뒤로 중형 버스 하나가 지나간다. 군악대가 내린다.


둥 두두둥 두두두두둥, 빠라바라밤.

육군훈련소, 조교, 군악대의 마지막 인사.


아마 논산을 다시 오는 건 30년 뒤 아들이 군 입대 할 때 쯤이 아닐런지.



저기가 우리 집이야

경산역에 도착했다. 기차가 완전히 멈출 때 쯤, 창문 밖으로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교 때문에 왔다갔다 하면서도 여러번 보았고, 기차 타고 부산 여행 갔다 올 때면 늘 보던 ‘경산역에서 보이는 집’이지만 오늘은 왠지 느낌이 조금은 다르다. 걸어서 15분. 조금 서두르면 딱 10분이면 집으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며칠 뒤, 군 운전적성시험을 보러가는 인원으로 선발되었다. 영외로 나가 대구 어디로 시험을 보러 간다고 한다. 여기서 떨어지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퇴교를 해야하며 주특기 재배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한 기수에 고작 한 두명 떨어질까 말까 한다고 하니. 오랜만에 바깥 구경 한다는 조금은 좋은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어… 차가 가는 방향이 우리 집 쪽이다. 이대로 쭉 가면 우리 동네가 나온다. 설마설마 하더니 우회전만 하면 집에 도착하는 길에 이르렀다. 물론 그 곳에서 나는 직진 할 수 밖에 없는 몸이지만. 같은 버스에 탄 동기들에게 말한다. “저거저거 길만 건너면 우리 집인데.” 시험을 보고 돌아오는 길, 다시 한 번 되네었다. ‘여기서 좌회전만 하면 집인데…’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우스갯소리로만 말하고 듣던 두돈반으로 운전 연습을 한다. 며칠이 지나자 우리는 어느새 정이 들어 ‘돈반이’라는 애칭으로 그들을 부르고 있다. 여러가지 코스를 연습하고, 군 면허시험을 본다. 면허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정든 ‘돈반이’를 다시 볼 일은 없다. 5톤 상용차량으로 영내와 영외 운전 연습을 이어간다. 오늘 운전이 영내인지 영외인지 그저 시키는 대로 운전만 하던 일상이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예정에 없던 정비교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코로나 상황으로 교육 기간이 일주일 짧아져 필수적인 운전교육 정도만 실시하고 배출한다 했었는데, 이번 기수는 인원이 많지 않아 정비교육을 진행하고 배출한단다. 오랜만에 돈반이를 만났다. 정비를 하기 위해 본네트를 까는 순간, 본네트 안쪽에 투박한 글씨체로 적혀 있는 9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무난히 흘러가던 야수교에서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음을, 여기는 군대임을, 너는 아직 이등병 짬찌임을, 집 가려면 500일이 남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문구로 다가왔다. 어쩌면 돈반이가 나에게 주는 나지막한 충고는 아니였을지.



잘 살아라

야수교에서의 신분은 교육생이다. 훈련소를 수료했기에 훈련병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훈련소에서는 제한되었던 것들이 하나 둘씩 풀린다. 교육 입소 첫 날 훈련소마냥 빡빡하게 소리치던 압박에서 PX, 전화, 담배, TV, 개인정비시간 등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야수교에서는 배식조를 하면 일과를 빼주고 저녁에 포상전화 시간을 준다. 오랜만에 수화기를 들어보았다. 훈련소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전화 사용이 거의 불가피했다. 한 명 쓰고 환기하고 소독할 바에 그냥 다 같이 쓰지 말자는 논리였다. 인편으로 전해받은 전화번호 몇 개를 두드렸다. 낯선 전화번호에 경계심 가득한 여보세요가 들린다. 대학 동기가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서 다 같이 모여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나보다. 좌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일 년 전, 몇 개월 전만 해도 그 공간, 그 책상에서 같이 밤을 새었는데, 많이 달라진 지금의 상황이 꽤나 웃기다. 아직 군대에 오지 않은 동기들에게 외친다. 여기 진짜 좋아. 빨리와.


왜 안믿지.



나의 자대는 어디에

수료식을 마치고, 오후 일과를 어영부영 보내고 나니 청소 및 취침 시간이 가까워진다. 21시가 넘으면 슬슬 잠이 온다는 군인들이지만 오늘 만큼은 모두가 긴장한 채로 담당 구역을 청소한다. 자대의 위치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조교들과 중대장의 밑밥이 있지만 이를 진심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은 없다. 빡빡해 피하고만 싶은 저녁 점호를 기다린다. 점호를 위해 침상위에 20명이 곧게 앉았다. 숨을 죽인 채, 넌 특전사, 넌 KCTC, 난 수방사라는 농담아닌 진담을 던진다.


절대 소리를 내거나 웃지 말라는 훈육조교의 엄포와 함께 자대 발표가 시작된다.


…, 장성역, 31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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