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신병위로외박

by HOON

220530-220630 at 광주 31사단



너 휴가 언제나가니

자대에 온지 한 달 정도 되었다. 같은 처부의 선임들은 슬슬 신병휴가 나갈 때가 되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나는 가급적이면 늦게 나가고 싶다 답했다. 입대 할 당시만 해도 전염병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휴가를 모아 미복귀 휴가로 전역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최대한 버티고 버텨 마지막을 기약하겠다는 의지였다. 일과 중 선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금요일에 유격 훈련으로 인한 전투휴무를 준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선임 중 한 명이 그럼 그 때 맞춰서 신병휴가를 갔다오라고 이야기를 했다. 금요일 전투휴무에 주말 쉬고 월화수목금 휴가를 갔다오면 주말에 월요일이 현충일이니 황금 연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5일짜리 신병위로휴가가 거의 11일이 되는 것이었다. 생각치 않았지만, 급하게 휴가를 준비하게 되었다.



변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

무엇이 좋은걸까. 인간은 변하는가. 누군가의 기억에 어떻게 남고 싶은가. 그 이전에, 나의 기억에 그들은 어떻게 남는가. 단기 기억, 장기 기억. 단어 한마디, 카톡 한 줄의 의미를 대수롭게 생각하는 인간으로써 나는 어떻게 그들을 기억하고자 하는가. 나는 왜 그들을 기록하고자 하는가.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 섬세하고 싶은?

자그마한 것들도 놓아주지 못해 쩔쩔매는?


잘 모르겠다. 마치 위 두 개의 문장과 같이, 모든 것은 한 끗, 한 장, 앞 뒤의 차이일지도. 그러하지 않은가. 사람이 180도 변했다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360도 변하면 그대로라고 하지만, 그 사람을 세워놓고 내가 그 사람의 다른 점을 찾기위해 빙빙 둘러보다보면 그 사람의 뒷모습, 즉 180도를 찾을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빙빙 돌아가며 시각을 달리 하더라도. 그 사람의 본질과 성질은 한치의 변함없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내가 빙빙 둘러간 것이라면.


...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단 하나도 움찔이지 않았음을.



신병위로외박

잠이 오지 않는다. 몇 시간 뒤면 저 위병소를 합법적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사회로 나간다는 생각에, 집으로 간다는 생각에, 언제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쉽게 잠 들 수가 없다. 그렇게 몇 시간을 뒤척이다 잠든 아침. 아침점호 후 식사를 먼저하고 총기를 옮기고 휴대폰을 받는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휴가증 발급이 안된다. 같이 휴가 출발하는 선임이 그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준다. 늦게 결제해준 행보관님을 원망하며 기다린다. 아, 어제 깜빡하고 못 닦은 전투화나 닦자.



4박 5일 = 4.5초

아이스아메리카노 뿌링클 해물찜 막창 팔도비빔면 샤브샤브 맥주한잔 맥크리스피버거 육회 소주두잔 잔치국수 차돌박이(소주반잔)



커다란 현타

아 이래서 첫휴가를 최대한 늦게 나가고 싶었는데. 어제만 해도 저 담장 너머에 있었는데. 다시 난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공간에 들어와 있다. 여전히 난 개짬찌이며, 아침저녁으로 커텐을 치고, 중앙현관의 어항에 물을 채우며, 점호마다 큰 소리를 내야하며, 브런치데이가 되면 상을 차리고 치우고 닦는. 후임이 생겨서 좋겠다는 소리와 ‘짬 찬 척 하지 말라’라는 쓴소리를 듣는 선임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작년에 고깃집 알바를 했을 때, 같이 일하는 누나가 일 끝나고 맥주 한 잔 하면서 해줬던 말이 있다. 자신도 초반에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극도로 집중하고 너무 긴장을 해서, 2-3시간 일하고 나면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고. 나도 그랬으니, 너도 지금 많이 힘들 것이라고. 자신은 그걸 알고 있다고.


그 누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일을 정말 잘했는데, 그런 말을 내뱉어서 놀랐다. 아마 오늘의 내가 누나의 그 상태에 가깝지 않을런지. 불침번 근무자가 생활관 문을 열고 들어오기만 해도 잠이 깨고, 나팔 소리가 울리기 전 마이크 노이즈 소리에 눈이 떠지고, 말 한 마디 실수하지 않으려 어떤 소리를 들어도 허허 웃으며 ‘그렇습니다 괜찮습니다’를 연발하는.


어쩌면 그 때와 같은 공감의 한 마디를 듣지 못하는 곳이기에 조금 더 삭막한 곳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난, 이러한 감정을 사람들에게 내보이지 않는, 철저하게 숨기는데 도가 튼. 모르겠다. 이 글이 하나의 대나무숲이 되어 조금이나마 괜찮아진다면. 그걸로 좋은 것 아니겠나.


괜찮다는 말은 가끔 거짓말이다.



우리의 주적은 누구

누구나 쉽게 이런 글을 적진 않을 것이다. 그 순간에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억울도 하지만 그 공간을 떠나는 순간, 그 의무를 다하는 순간 사실 그땐 그랬지 혹은 다시 생각하는 것 조차 관심을 주기 싫은 공간으로 남는게 대부분일테니. 그러나 난 기록한다. 난 잊어도 글은 기록되어 남아있으니. 누군가는 다시 기록을 읽고 기억 혹은 인지 할 수 있으니. 아니 어쩌면 기록을 통해 나는 쉽게 잊을 수 있을지도.


머리카락 1-2cm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이다.



나 정도면 삼촌은 아니고 형이지 않냐

간부 2명, 용사 2명인 소수의 인원으로 파견 임무를 간다. 몸이 힘든 작전은 아니다. 방공이 그렇듯 작전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상황 대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파견 지역으로 이동해 2교대 12시간 근무 투입이 시작되었다. 간부 1명과 주간 12시간을 보내려면 할 것이 많지 않다. 가만히 앉아 있기. 장비 점검. 스트레칭. 약간의 대화. 사회에서의 경험을 묻길래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눴다. 차 뒷편의 임시 흡연장에서 다른 부대 간부와 병사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 간부가 자신의 사촌 동생이 딱 너희 나이라며, 그럼 자신은 진짜 형이지 않냐는 주장을 펼친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나에게 묻는다. 자신을 사회에서 군복 벗고 봤다면 몇 살로 봤을 것 같냐고. 난 사실 그의 나이를 알고 있다. 그 나이에 몇 년을 빼서 답하자 나이 많아 보인다는 거냐며 코웃음을 친다. 이 무슨 염치없는 경우인지 싶지만 허허 웃어준다. 자신 정도면 삼촌은 아니고 형이지 않냐는 것이다. 뭐래는거야.



그 날이 올까

친구와 연락을 한다. 요즘 시험기간이라 힘들단다. 너넨 시험이 끝나도 군사훈련 시작 아니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같이 재수를 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며 삼수를 해서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간 놈이다. 시험 끝나면 미팅도 나갈거라는 말에, 우당탕 던져버린 한마디. “나 내년 8월 13일 전역이니까 14일 새벽 비행기로 동남아 여행 고” 답장이 바로 날아온다. “오 굿”


입대를 며칠 남겨두지 않았을 때,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다 시간이 잠깐 남을때면 유투브를 보며 메모장에 전역하며 무얼 할지 적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그 때 별 생각없이 적었던 계획. 전역 다음 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동남아로 날아가 작살나게 물놀이 하기. 정말 난 1년 뒤 그렇게 떠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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