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9-220529 at 광주 31사단
진급식
계급장의 작대기가 하나 늘었다. 일병이 되었다. 이등병을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찾아오는 불안감. 이제는 어떤 일을 시켜도 할 수 있어야 하며, 못해서 욕을 먹어도 모른다는 이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커튼을 열고 닫으며 아침 점호 때 마다 선임을 깨워야 하는 생활관 막내. 군생활 고작 15%의 일병의 하루는 고달프다.
체육대회와 어린이날
감염병이 끝나간다.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내가 알던 세상이 어느새 바뀌었단다. 군대는 '일상 회복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도 명령으로, 단계별로 이루어진다. 뭐 사실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겐 어린이날 직전 사단 체육대회가 있다는 점과 그 날 푸드트럭을 비롯해 맥주 한 잔씩을 준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다음 어린이날에는 부대 개방 행사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체험 행사를 연다고 한다. 울타리 밖의 사람들을 울타리로 들여오는 과정은 보여주기식이다. 뭐 진짜 보여주려고 들여오는건 맞는데, 들어온 사람들에게 뭐라도 보여줘야하니 보여 줄 만한 것들을 어찌저찌 만들어서 펼쳐놓는다. 무엇이 인과인지, 선후인지는 잘 모를 그런 행사다. 높으신 분들이 이러쿵 저러쿵 몇 마디 던져놓으면 밑에 사람들만 여기갔다 저기갔다 여기로 옮겼다 저기로 옮겼다 노력을 해댄다.
유격 훈련
뛰어 !
악 !
갓 !
유! 격! 자! 신!
윽! 엑! 악! 잌!
별 기억이 없다. 유격 체조하고 뛰고 구르니 일주일이 지났다. 라고 하면 기록의 의미가 없으니.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새벽에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군장을 매었다. 비닐 밥 하나씩을 각자 쥔 채로 직할대 집합 장소로 걸어간다. 유격의 시작은 행군이라며 이런저런 훈화 말씀 한 두줄 듣고나니 출발이다. 걷고 쉬다 걷고 쉬다 걷고 쉬다 걷고 쉬다 걷고 쉬다 걷고 쉬다 걸으니 도착했다. 정말이다. 조금 더 자세히 써보면 걷다 쉬다 올라갔다 쉬다 내려갔다 쉬다 걷다 쉬다 올라갔다 쉬다 내려와서 걸으니 도착했다. 숙영지를 편성하고 나니 입소식을 한단다. 충성에서 유격으로 경례 구호가 바뀐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유격 체조를 배우고 좀 구르고 뛰어줬다. 행군을 통한 숙영지 도착 이후 프로그램은 반복적이었다. 체조로 좀 굴린 후에 장애물 극복 훈련을 반복한다. 말이 장애물 극복이지 줄 타기 무엇 건너기 어디 넘어가기 그런 것들이다. 스포츠 센터가서 뛰어나디고 줄 잡고 건너는거랑 뭐가 딱히 다르나 싶었다. 다르다고 느낀건 안전장치가 줄 하나 정도 걸치는 수준이라는 것 정도. 보물찾기 비슷한 독도법도 하고, 군종부에서 핫도그 선물도 서프라이즈로 쏴주고, 본부근무대 군악대가 버스킹 공연도 했다. 그렇게 5일쯤 이것저것들을 "극복"하고 보니 퇴소가 눈 앞이었다. 다시 한 번 훈화 말씀 한 두줄을 들으니 마지막 저녁식사에 막걸리에 고기가 나왔다. 막걸리에 뭐 얼마나 취하겠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생겼다. 병사고 부사관이고 장교고 술 취하니까 다 똑같은 각각의 20대 30대 40대였다. 막걸리에 적당히 취한 사람들이 버스킹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와 몇의 선임은 술 뿌리는 것 보니 왠지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생각과 대화를 하며 술을 자중했는데, 그 덕에 여러가지 사건을 맨 정신에 또렷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거기에 22-00 불침번까지 섰는데, 유격장 전체를 돌면서 순찰하는데 화장실이 남아나질 않더라. 그렇게 퇴소날이 밝았고, 퇴소 행군 40km라는 계획은 어디로 갔는지 군장은 다 차에 싣고 바로 사단으로 걸어서 복귀했다. 그렇게 유격훈련이 끝났다. 아 물론 나를 비롯한 짬찌들은 물자 정리한다고 조금 더 늦게 끝나긴 했다.
힘들었는데, 재밌었다. 살면서 언제 유격훈련 해보겠어. 근데 내년에 또 하고 싶진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