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1-230813 at 광주 31사단
마지막 인사
말년 휴가를 하루 앞둔 날. 마지막으로 포상에 올라갔다. 첫 진지를 두 달쯤 탔을 때 전역을 앞둔 선임이 마지막으로 포상에 올라와 바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내가 일병이었는데, 어느새 작대기 4개가 된 지도 수개월이 지난 사람이 되어 그 바다에게 다시 한번 작별인사를 한다. 1조 포상, 2조 포상에게 인사를 하고 나의 수많은 고민을 받아주었던 육안감시초소로 향했다. 풍력발전소를 들러리 삼아 뱉었던 수많은 생각들과 삼켰던 파도와 내음을 마지막으로 되짚었다. 아마 다시는 출입하지 못할 곳에서 바라보는 마지막 풍경.
말년 오셨다
주둔지에 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친구들이 침대에서 일어나 경례를 한다. 어 안녕 안녕. 넌 통신이니? 넌 운전병이니? 아 넌 발칸이야? 건너 건너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어이 아저씨 아직 안 갔어? 야야 나도 가고 싶어. 이제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갈 때 된 것 같은데. 아저씨 전역하면 뭐 할 거야?
떠나야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마지막 휴가
동기들이 하나 둘 스토리를 올린다. 10일 남짓 남은 전역일 계산기를 올린다. 대부분 말년 휴가 중이고 조금 일찍 나갔다 온 동기는 며칠 안에 복귀한다고 한다.
끼리끼리
말년 병장 휴가 나왔다고 하니 기꺼이 스테이크 써는 식사를 사주겠다는 옛 과외 쌤의 차에 올라탔다. 어이 아저씨. 요즘은 18개월에 월급도 100만 원씩 준다매? 예 전 당당하게 말하고 다닙니다. 꿀 빨면서 군생활 했다고. 같은 시답잖은 이야기부터, 입시 시절부터 해왔던 이야기, 내가 군대에서 겪은 생각들을 차례차례 나눴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쌤이랑 이야기를 하고 며칠 뒤 친구와도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기에 더 공감이 가는 것 같다. 요지는 결국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게 된다는 것. 참 바보스럽게도 난 이 끼리끼리라는 말이 사람의 수준이라는 걸 20년간 깨닫지 못했다. 정확히는 사람의 수준을 학력과 비슷하게 취급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제는 자제해야 하는 말이지만, 군대에 와보니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나는 대부분이 인문계 고등학교 가서 많아봐야 문과 이과 예체능 3개 중 하나의 길을 택해 2년이든 4년이든 대학을 들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 만나보니 꼭 그렇지 않더라. 이게 인간 군상이구나 싶게 다양한 사람과 섞여서 지내게 되었다. 나의 옛 가치관이었다면 분명 학벌에 따라 사람의 수준이 다르고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도 비슷한 사람이었어야 한다. 그런데 공고 나와 돈을 벌다 군대에 온 후임과는 가깝게 지냈고, 이름 좋은 인서울의 4년제 대학을 다니다 온 후임과는 같이 지내기 어지간히 힘들었다. 이상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참한 사람이라는 답을 내놓던 나인데 참 모순적인 삶을 살았구나 싶다. 그런 가치관을 욕심부리며 딱딱하게 살다가 조금씩 쌓이는 삶의 경험이 유화제의 역할을 한다. 그 삶의 경험에 있어 군대라는 곳은 많은 것을 제공해주는 것 같다.
친구와 벤치에 앉아서 했던 한 마디가 군 생활의 의의를 꽤나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아 적어 놓는다.
"아무튼 군 생활 하면서 그런 나의 가치관들도 조금씩 수정되면서 완성돼 가는 것 같아."
마지막 장면
전역식을 겸하며.
이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다.
이 노래의 가사 중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다.
그것으로 18개월간의 군 생활도, 이 글도 전역식을 진행하려한다.
돌아보면 지난 날이 다 찰나였듯이,
생각보다 짧은 영화 한편이었어.
우리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