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국가, 사회계약론
2년 전인가, 청주에 살았을 때 얼굴에 두드러기 같은 게 나서 피부과를 찾아보고 있었다.
검색을 통해 피부과를 알아봤을 때 시내에 피부과들이 꽤나 많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던 찰나,
각 피부과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는 필러다 뭐다 죄다 미용 시술에 대한 것만 있어서 혹시나 해서 전화해서 물어봤다.
"안녕하세요, 피부에 두드러기 같은 게 나서 방문하려고 하는데 치료 가능한가요?"
"아니요~저희는 미용 시술만 하세요~"
에이 설마..'다른 곳에 전화해 보면 다르겠지'
설마가 사람 잡았다.
정말 거의 모든 피부과에 전화를 다 돌렸던 것 같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저희는 미용 시술만 합니다~"
혹시 '피안성'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이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의 줄임말이다. 여기에 더해 '정재영'이라는 단어도 생겨났는데,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의 줄임말이다.
이 둘을 붙여 '피안성 정재영'이라고 부른단다.
이 단어가 왜 등장했느냐?
해당 과목으로 의사들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왜?
비급여 진료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비급여 진료가 뭐?
비급여 진료란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진료료 환자가 진료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급여 항목에서는 의사의 재량권이 인정되며, 그렇기 때문에 병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비급여 진료시장이 팽창됨에 따라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의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진료시장은 축소되고 있다. 지인 중 한 명이 딸 둘의 애아빠인데, 소아과에 한 번 가려고 하면 새벽부터 '소아과 오픈런'을 해야 한다고 한다. 받아주는 응급실이 없어 계속해서 떠돌 수밖에 없는 '응급실 뺑뺑이' 이슈도 무시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이다.
앞서 언급된 내용은 정부가 현재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제시하고 있는 근거 중 일부분이다.
지방에 위치한 병원들의 육성을 통해 지역 의료를 강화하고, 비급여 진료 항목들을 억제함으로써 필수 의료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정부가 제시하는 이유는 허다할 것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의 여론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태도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태도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수반은 국민의 투표로 인해 선출된 선출직이지, 지명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의 표를 얻었기 때문에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옳다.
해당 내용은 '사회계약론'에서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다. 사회계약론하면 가장 많이 거론되는 학자는 아마도 홉스(Thomas Hobbes), 로크(John Locke), 루소(Jean-Jacques Rousseau) 일 것이다. 이들 각각이 전개하는 사회계약론의 논리는 전부 다르지만,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사회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개개인들이 본인들의 권리를 사회에게 일정 부분 양도함으로써 보호받고자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 권력의 정당성은 국가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즉, 국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일정 부분 국가에게 양도함으로써 국가 권력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일방적으로 국민들에게 뜻을 관철시킬 수는 없다. 특히 로크는 정부가 국민들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을 경우 극단적으로는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저항권' 개념을 제시하기도 하였으며, 루소 역시 정부는 국민의 의지가 반영된 결정을 통한 공동체 이익 실현을 주장하였다.
(물론 홉스는'리바이어던'이라고 불리는 절대군주를 내세우면서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하긴 했다)
위와 같은 사회계약론의 내용을 현 상황에 비추어 보면, 현 정부는 의사들의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위 내용에서 한 가지 간과된 사실이 있다. 바로 '권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사회계약론자들이 그렇게 외쳐대는 그놈의 권리가 도대체 무엇이냐?
예를 들어, 생명권이라던지 자유 또는 재산권, 평등권 등이 포함된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권리가 가장 우선하느냐에 대한 내용은 사회계약론자들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권리가 하나 있다.
바로 '생명권'이다.
홉스는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구성하게 된 이유는 자연상태에서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해당 투쟁 상태는 목숨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과 불안정의 상태라고 정리할 수 있다. 즉, 인간들이 애초에 사회를 만든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함이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 로크는 말 그대로 개인의 자유를 매우 중시한 학자이다. 그는 특히나 개인들의 사유 재산이 중요하고, 이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권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로크 역시 홉스와 마찬가지로 모든 권리 중 개인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생명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재산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루소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나 재산권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생명권이 보다 더 근본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하며, 특히 개인의 권리는 공동체의 일반 의지와 조화를 이루며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환자들의 '생명권' vs 의사들의 '자유' 또는 '기회' 또는 '재산권' 등등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사회, 즉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생명이 우선적으로 안전하게 보장되어야 자유, 기회 또는 재산권의 가치가 확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권리들의 우선순위를 따지지 않더라도, 현재 의사들의 파업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지 논하기 위해 쓴 글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On Liberty, 1859)'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유론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국가의 권력이 개인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우려하며,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다수의 폭정'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개인에게 있어서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과 스스로의 삶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 그리고 개인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 행동에 대해 사회가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바로 '개인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이다.
이는 '위해원칙(Harm Principle)'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된다.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만 해를 끼치는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의 행동으로부터 타인이 피해를 입을 시, 국가는 정당한 사유로 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밀이 주장하는 '해(Harm)'이란 단순 불쾌감이나 모욕을 넘어서, 타인의 권리나 이익에 실질적인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의미하며, 신체적 폭력이나 재산에 대한 침해 등이 포함된다.
사회계약론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자유를 그렇게나 중시하는 밀에 따르면 현재 의사들의 파업 행위는 환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신체적 위험을 가하고 있으며 이는 정부로부터 제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의새' 밈(meme)을 아는가? 여기서 '의새'란 현재 시점으로 의사들의 숙적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의사 파업 관련 브리핑에서 '의사'를 '의새'로 발음한 이후 밈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정부의 복귀 요청에도 불구하고, 밈을 통해 차관의 발언을 조롱한 의사들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냉랭하다.
환자들의 생명의 무게가 그들에게는 그저 밈으로 대꾸할 만큼 그렇게나 가벼운 것인가?
그들의 부재로 인해 병원에서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노동은 그저 남 일인 것인가?
국민들의 건강을 볼모로 잡아,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하는 파업 행위가 정당한 것인가?
혹자는 의료 개혁이 의사 파업의 대책이라고 한다. 동감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현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개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금이다.
하지만 의료 개혁이 먼저가 아니다. 궁지에 몰려있는 환자들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것이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의료 개혁이라던지 다른 정책이라던지 그것들은 다음의 일이다.
누구는 의대 증원 정책이 영부인의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또는 총선을 앞두고 하는 정치적 쇼라고 한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포퓰리즘을 통해 정권을 안정시키려는 태도는 철폐되어야 마땅하다.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의사들의 파업으로 인한 의료 대란이 벌써 3주 차에 접어들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의사들은 본인들의 본분을 잊지 않고 현장으로 돌아오길 간곡히 요청한다.
'자업자득(自業自得)', 본인이 저지른 행동은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