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숙소가 뉴오타니 호텔이다. 누군가 김대중 대통령 방일 당시 묵었던 호텔이라고 언질 하니 로비가 술렁인다.
일과가 끝나고 방배정이 시작됐다. 담당자로부터 방 키를 받아 든 순간 나는 너무 놀랐고 심장이 살짝 가라앉았다.'룸키가 여전히 열쇠라니...' 두툼하고 묵직한 촉감이 반가웠고 금방이라고 20년 전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황동색 열쇠를 꽂아 돌리자 동경 시내 야경이 나를 반긴다.
사회 초년생이던 2001년 여름이었다. 그 해 나는 첫 해외출장을 떠나게 된다. 일은 힘들고 부담스러웠지만 설렘도 컸다. 그런데 그때 묵은 호텔이 뉴오타니 호텔이다.
출장 준비를 하며 기관 담당자와 메일을 가끔 주고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집이 우리 회사 근처란 걸 알게 된다. 여러 날을 망설인 끝에 한번 보자고 했다. 처음 만나기로 한 날 그녀는 회사 체육대회 응원연습 후라 땀 냄새날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러시아어를 전공한 그녀는 러시아 정세에 빠삭한 나에게 놀랐다. 어려서부터 시사에 관심이 많던 나는 냉전기 미국과 소련 지도자 이름 정도야 기본이었다.
출발일 아침,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월곡동 정류장에 나갔다. 연구소장이 먼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이어 그녀의 베이지 색 캐리어도 도착했다. 연구소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모르는 채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일과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시내로 나갔다. 볼멘소리로 그녀는 상사가 시장조사해 오라고 숙제를 내주었다고 했다. 편의점에 들러 생활용품 가격을 파악하는 게 일이었다.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그녀 일을 도왔다. 별 일 아니지만 그녀를 돕는다는 게 즐거웠다.
조사를 마치고 나와선 근처 이자카야에 들렀다. 도와줘 고맙다며 생맥주를 사겠다고 했다. 시원한 맥주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홉의 잔향을 느끼며 밤거리를 걸을 땐 환희마저 느꼈다. 호텔 문 앞에서 씽긋 미소를 나눈 뒤 열쇠를 돌리고 서로의 방으로 들어갈 땐 살짝 설레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굿 뉴스와 베드 뉴스, 뭣부터 들을래요?” 굿 뉴스는 정확히 남아 있지만 베드 뉴스는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다. 굿 뉴스는 우리 회사 관련 기사가 일본 경제신문에 실린 것이다. 그녀가 남긴 소중한 선물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호텔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전통의 힘이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평안함과 중후함 그리고 노련미가 느껴지는 서비스를 호텔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다. 거기다 황동 열쇠가 간직한 내 젊은 날 추억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