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동혁 Aug 23. 2024

오! 오타루

빛바랜 것들의 향연

  북해도를 떠 올리면 따라오는 것들이 있다. 고소한 우유와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그리고 4박 5일간 걸은 길들이다.



 

 작은 항구 도시 오타루도 핼러윈 데이 행사가 한창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길을 걷다 보니 왜 우리는 그렇게 모던한 것에 집착하는지 의문이 다. 송도 주민이 되면서부터 든 생각이다. 그냥 지나치면 후회할 것 같아 컵에 담긴 멜론도 하나 사서 물어본다.


  여기저기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도시와 세련되고 쾌적한 도시 모두 살아본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진정 네가 원하는 곳이 어디냐고. 삶과 삶이 만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동네를 사랑하면서도 쉽게 답을 내지 못하는 건, 모자 안에서 화려한 것들을 쏟아내는 자본이란 마술사의 몸짓에 매료되어서일 거다.


  오타루 그렇지 않다. 낡고 오래된 것투성이다. 그들은 과거를 밀어버리고 새것으로 채우는 대신 물려받은 걸 그저 닦고 가꾸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그들은 그 도시의 주인이 되었다. 마치 낡고 허름한 것 속에 삶의 실체가 담겨있다는 걸 알기라도 하듯.


  어쩌면 그런 마음들이 모여 무엇이든 간에 혼을 담아내는 장인정신이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이들이 가진 것들은 하나 같이 견고하다. 급변하는 시대에 작은 변주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할 테다.


  한 무리 학생들이 차량에서 쏟아져 나온다. 도시를 닮아서일까. 학생들도 하나 같이 순수하다. 그러고 보니 올봄 다나카상 가족과 남도여행을 할 때도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만났다. 그때 다나카상은 한국 학생의 화장술에 진심으로 놀랐다. 특히 입술.




  대로를 벗어나 뒤안길로 들어선다. 그곳 또한 주민과 삶을 함께해 온 건물들이 숨어 있다. 이 도시를 꾸미는 소품들은 특별한 게 아니다. 더 이상 쓸모 없어져 퇴역한 것들, 삶 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별나고 싶은 마음만 없을 뿐 아름다움에 대한 그들의 감각은 탁월하다. 세월과 체념이 빚어낸 아름다움. 은은하면서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이도시를 만든 건 세월의 중력과 속도를 버텨낸 견고함과 그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이다.


  서로 보조를 맞춰 걷고 있는 늙다리 개와 오렌지 빛 카디건을 걸친 노인의 뒷모습이 오타루란 작품을 완성한다.



작가의 이전글 57. 위대한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