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중에서
“내가 공장에서 누에고치 나르면서 땀 흘려 번 돈을 일락이한테 쓰는 건 나도 바라는 바지만, 피 팔아 번 돈을 그 애한테 쓰는 건 왠지 좀 그렇다구.”
싫어. 난 앞으로 아무 일도 안 할 거야. 이제 집에 오면 좀 쉬어야겠어. 쉬는 게 어떤 건지 아나? 바로 이런 거라구. 등나무 평상에 누워서 두 다리를 의자에 걸치고 있는 거지.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싶어? 바로 당신을 벌주기 위해서야. 당신이 저지른 잘못 말이야. 당신은 나를 배신하고 그 후레자식이랑 잠을 자서는 일락이 까지 낳고....... 그 생각을 하니 또 열받네. 그런데도 나더러 쌀을 사오라구? 꿈 깨시지.
“자. 업혀라.”...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 놓고......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 거 아냐. 널 십일 년이나 키웠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 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하란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 테니.....”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보이자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은 문득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