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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Sep 22. 2024

상실의 시대를 따라 떠난 여행

가나자와 노토반도에서 만난 하루키의 청춘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오코의 곁에 조용히 있어 주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고, 어떤 결정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원할 때 다가갈 수 있고, 그녀가 원치 않으면 물러나는 것. 나는 그녀가 스스로 정해지길 기다렸다.


  이렇게 말없이 받아주고 기다려 주기만 하는 남자. 어떻게 봐야 할까. 지치고 힘들때 다가가 기대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더 나가기 힘든 벽이 될 수도 있다.


  부모님 그리고 다나카상 내외와 함께 일본 관서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가나자와에 한 번 가보고 싶어 한 부친 덕에 성사된 여행이다. 효고현과 후쿠이현 그리고 가나자와가 있는 이시카와현을 돌아봤다.


  그 루트는 마침 읽고 있던 소설 <상실의 시대>와 맞닿아 있었다. 다나카상이 사는 효고현에서 하루키가 자랐고 가나자와는 와타나베가 보름간 배낭여행을 떠난 곳이다. 아마도 노토반도를 따라 걸었으리라.


  책을 읽고 있던 중 여행을 떠났고 나머지 부분을 여행지에서 읽었다. 그래서일까. 소설 속 젊음들의 애절한 몸짓이 더 와닿았다.

  

  소설 속 와타나베는 단풍이 곱게 든 숲 속 호수와도 같다. 친구들은 그에게서 신비한 매력을 느꼈고 그의 곁에서 안정을 찾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호쿠리쿠 고속도로 터널을 지나며 무엇이 그토록 친구들을 와타나베에게 기대도록 만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조용하고 사려 깊은 성격은 친구들이 그에게 의존하도록 만든 요인이다. 늘 그자리에 있을 것 같고 내 모습 그대로 머물러도 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세상과 결이 달라 쓰라림을 겪게 된 친구들이 그의 곁을 찾는다.  


  절친 기즈키가 그랬고 그의 여자 친구 나오코 그리고 캠퍼스 연인 미도리와 연상의 연인 레이코가 그랬다. 별종 선배 나가사와의 애인 하쓰미 까지도.


  레이코는 와타나베에게서 어른스럼움을 발견했고, 고독과 상실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그를 존경하기까지 한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모습을 높이 평가하며 그와의 대화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거기 까지다.


왜 그렇게 아무 말도 안 하고 나한테 순순히 따라오는 거야? 난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나오코 )
나는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와타나베)


  어쩌면 여자는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보다는 자기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면의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와타나베에게 여자들은 매력을 느끼지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 그에게 답답함도 느낀다. 이는 깊은 이해와 소통의 여지를 남기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긴장감을 만들기도 한다.


  자기 표현은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데 없어선 안될 유용한 수단이다. 자기 표현이란 내가 주관적으로 경험한 걸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 표현들은 타인이란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컨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 표현 잘하는 사람이 관계도 잘한다.


  표현이 없어 내면에 쌓인 생각들은 엉뚱한 곳에서 주장으로 불거지기 쉽다. 그러다 강요로 발전하기도 한다. 거기다 감정적으로 복잡하기 까지 하다면 관계는 더욱 위험하다. 사소한 것까지 표현하는 게 불필요해 보이기도 하지만 안하는 것 보다는 백번 낫다.


   안타깝게 그의 곁에 머물었던 사람들 중 미도리와 레이코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어쩌면 늘 변함없이 그곳에 있어준 이 남자는 고통스러운 삶을 정리하고 마감하기 위해 의식을 치르는 지성소 같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나자와로 넘어가는 국경에는 주상절리 명소 도진보가 있다. 나오코의 죽음 소식에 와타나베가 침낭 하나 메고 한없이 서쪽으로 걸었던 곳이다. 한 때 위용을 자랑했을 도진보 타워도 세월의 풍상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돈을 주고 올라갈 것 같지 않아보인다.


  주차 후 타워 뒤쪽 해안을 따라 이동하자 천하 절경이 등장한다.

  연소를 마치고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이 “이제 그만 오지”라며 손짓하는 것 같다. 곧 태양을 집어 삼킬 바다도 하루키 청춘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안식이 잠깐의 자유낙하면 충분하다는 듯 은근하게 유혹한다.



  깎아지른 듯 수직으로 떨어지는 주상절리 위에는 펜스나 안전표지판 같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표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려는 자를 무슨 수로 막겠는가. 아예 드러누워 절벽 아래로 고개를 떨군 채 SNS에 목숨 거는 젊음들도 보인다. 50여 년 전 와타나베를 이곳으로 불러냈던 고뇌와 방황이 그들에게도 있을까.

  저무는 태양을 말없이 응시하는 후미코 상은 무엇을 생각 하고 있을까. 소설 속 청춘들이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맬 때 그녀는 전후 일본을 재건한 산업역군이자 세 아들의 엄마였다. 팔순으로 달려가는 외유내강형 일본 여인에게도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은 있을 것이다. 도촬 하려다 서로 눈이 마주친다.


  끈질긴 태양의 유혹과 설득에 취한 돌계단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간다.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 한 나는 료칸 문을 열고 온천마을로 나섰다. 그 시절 젊음의 흔적을 만나려는 생각이었지만 요란하고 생경한 이 시대 젊음들에게 그만 밀려나고 만다.


  어쩌지 못한 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한 손에 들어가는 사케 캔을 구입해 따려는 순간, 알바가 다가온다. 그리고는 공손하게 말한다.


  "손님, 이곳에서 커피나 음료는 가능하지만 주류는 곤란합니다만..."




  효고현 다나카상 집으로 돌아온 날 밤, 후미코상은 정성껏 페어웰 파티를 준비한다. 스키야키다. 나오코 소식을 들은 와타나베가 레이코와 정사를 나누기 전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었던 요리다.

  소설에는 솔직하고 디테일 한 성적 묘사가 등장한다. 이는 실존의 불안 속에서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 방황하는 젊음들이 보여주는 혼신의 몸짓 같아 애절하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펙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치유하는 일이라면 성행위도 불사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케이스를 만난 적이 없단다. 그의 자기 고백에 따르면 와타나베와 레이코의 사랑 행위는 서로 말고는 알아볼 이가 없는 깊은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이 아니었을까.


  스키야키는 익어갔고, 카펫 위에는 그 어떤 유혹에도 꿈쩍 않는 둔한 노파 하나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도도하고 매력적인 아가씨 뮤짱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젠 앞도 제대로 못 본다는 말에 뭉클해진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흐르는 세월만큼은 어찌할 수 없나보다. 해마다 새순이 돋는 나무가 그런 면에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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