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나는 일본 효고현에 있는 산골 마을을 찾았다. 마감 중인 글을 정리하고자 떠난 여행이었다. 일주일 중 절반은 오래 알고 지낸 다나카상 집에서 머물렀다.
그런데 출발 직전에야 1월 1일이 일본 최대 명절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미안한 마음에 일정을 변경하려 했으나. 다나카상은 “염려 말고, 그대로 오라”며 나를 반겼다.
글을 쓸 거란 말에 방에 고타츠까지 마련해 두었다. 그리고 나 때문에 자녀들 방문을 이틀이나 미루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죄송한 마음이 컸지만, 이렇게 된 이상 정중히 신세를 지기로 했다.
문제는 감기였다. 한국에서 달고 간 감기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어간 약도 어디 숨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난방이 되지 않는 다다미방에서 밤새 기침 소리가 울렸다. 멈출 줄 모르는 기침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다나카상 부부는 80이 넘은 노부부로, 둘 다 환자다. 이에 죄송한 마음이 더했다.
아무래도 약국에 가야겠다고 하자 다나카상은 “집에 약이 있으니 그걸 먹으라”라고 한다. 하지만 증상에 맞는 약을 조제해 먹어는 게 나을 것 같다며 다시 정중하게 부탁했다. 결국 다나카상이 약국에 데려다주었는데, 차로 무려 20분 거리에 있었다. 번거롭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미안함은 더욱 커졌다.
그럼에도 다나카상 가족은 내가 주는 불편함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게다가 끼니마다 손이 가는 요리를 정성껏 내주었다. 소고기 나베와 덴푸라, 야키소바… 있는 밥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수준이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지내며 글을 정리할 수 있었고, 이따금씩 시골길을 걸으며 산란한 마음도 가라앉혔다.
교토로 떠나는 날, 아침식사를 마친 뒤 다나카상의 부인 후미코상이 내게 말했다.
아토 유마(あっという間)네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그녀는 메모지에 직접 써가며 설명했다. ‘앗 하는 사이 지나가버렸다’는 뜻으로 내가 머문 시간이 그녀에게도 소중했다는 의미였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이어서 그녀가 한 말이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장상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안심이 돼요
뜻밖의 말에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런 모습으로 비쳤다는 흐뭇함과 함께 마치 내가 사기꾼이라도 된 듯한 기분.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일까?
내가 나를 잘 안다. 까칠하고 예민하며, 때로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차갑게 구는 내 모습을. 결국 나는 솔직히 말했다.
“사실 우리 아버지께는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후미코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내게 장상은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에요.”
그제야 깨달았다. 15년 간, 내가 그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왔다는 사실을. 장 보러 갈 때마다 장바구니를 건네 들었고, 마트에서는 카트를 밀며 그녀 뒤를 따랐다. 다나카상의 빨간색 컨버터블을 탈 때도 뒷좌석에 조심히 몸을 구기며 들어갔고, 식사 후에는 언제나 식기들을 싱크대로 옮겼다.
이번 여행은 말과 행동이 결국 관계로 이어진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 마음에 어떤 이미지로 남는가는 모두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의 결과였다.
교토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나는 한국의 가족을 떠올렸다. 그들에게도 내가 ‘안심이 되는 사람’일까? 아니면, 좀 더 따뜻하게 다가가야 할 사람일까? 그리고 사흘 동안 마스크 쓸 생각을 못한 것을 후회했다.
떠나기 전날 동네 북 카페에 간다고 하니 후미코상이 마스크를 건네주었다. 그제야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을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떠난 다음 날, 후미코상은 하루를 앓아누웠고, 다나카상은 통화를 하며 코를 훌쩍였다. 그들에 대해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이번 여행은 내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