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가 사는 곳은 별일까 아니면 행성일까? 장미꽃이 자라고 가끔 화산이 불을 뿜는 걸 보면 별은 아닌 게 분명하다.
밤하늘을 밝히는 별은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진 플라스마 덩어리로 단단하지 않다. 게다가 강한 중력이 끊임없이 별을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괴하지 않는 건 왜일까. 핵융합작용으로 인한 복사압이 중력과 절묘하게 평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세계에서 우리 역시 두 힘의 작용을 받고 있다. 끊임없이 우리를 압박하는 타인의 기대와 요구. 그리고 그걸 버터 내는 내면의 힘, 참 자아다.
직장 상사가 던지는 말 한마디에 위축되고, 대수롭지 않은 듯 자식 명문대 합격 소식을 전하는 친구의 너스레에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한다. 건강한 자아를 가졌다면 곧 회복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외부 힘에 눌려 한없이 안으로 파고들어 간다.
심지어 타인의 반응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자기 욕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찰스 휘필드 교수는 이를 성인 아이라 불렀고, 전체 인구에 80%에 달한다.
참 자아는 태어날 때부터 내재된 힘으로, 자기 존엄과 자존감의 원천이다. 하지만 부모나 사회의 기대를 맞추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참 자아는 상처를 입고 수축된다. 그러다 결국 타인의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호의존적 자아가 만들어진다.
이처럼 병약해진 자아는 치유와 회복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이 여정은 맨몸으로 사막을 횡단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어 보인다. 우리의 주의와 관심을 독차지해 자아와의 만남을 방해하는 스마트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정보를 “타락한 명령”이라 불렀고, 하이데거는 “정보를 모은다는 것은 명령을 수집하는 것”이라 경고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정보 중독에 빠져 자아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자아 회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실천을 통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하루 10분이라도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보자. 알림을 끄고 산책을 해도 좋고 책을 읽으며 분산되어 있던 시선을 내게로 돌려보자.
내면과의 대화도 유용하다. “내가 지금 원하는 건 무엇일까?” “지금 내 기분은 어떤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거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고 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에 익숙해질 것이다.
휘필드 교수가 제안한 ‘자아 건강을 확인하는 질문’에 답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한 행동이 충동적이라고 느낀 적이 있는가?”
“누군가 내 감정을 물을 때 막막하다고 느끼지는 않는가?”
“항상 완벽해야 한다고 느끼거나, 다음엔 좀 더 완벽하게 해야겠다는 생각 하는가?”
“윗사람이나 화가 난 사람을 만날 때 왠지 더 불안해지는가?”
하나라도 자주 그렇다고 답했다면, 당신은 자아 회복을 위한 여행이 필요하다. 모든 질문에 해당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에 무심한 채 타인의 반응에만 의존해 행동한다면? 점점 빛을 잃고 주위에 끌려다니다 인생 여정에서 길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건강한 자아는 관계라는 우주 속에서 삶을 밝히는 별과 같다. 외부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힘으로 스스로 빛날 때 진정으로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참 자아를 찾는 여정을 시작해 보자. 작은 실천이 쌓일 때 당신은 더 단단해지고 더 빛나게 될 것이다. 그 시작은 최소한 걸을 때만이라도 스마트폰의 관심 투정에 매정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