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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가졌는가

인생 여정을 함께할 친구와 정리할 친구

by 장동혁

영원할 것만 같던 친구가 멀어지고,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다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진정한 친구란 어떤 친구일까?" "내 곁에 진정한 친구가 있을까?"


그런가 하면 진정한 친구는 1명이면 족하고 2명은 벅차며 3명은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진정한 친구는 만나기도 어렵지만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함석헌 선생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는 진정한 친구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먼 길 떠나며 가족을 맡기고도 안심할 사람, 세상이 나를 버려도 나를 지지해 줄. 사람, 마지막까지 구명정을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사람이 곁에 있는지 묻는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뭉클하다가도 “과연 그런 친구가 세상에 존재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가 하면 유안진 선생의 바람은 좀 더 현실적이다. 저녁 먹고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 하자고 말할 친구, 옷에서 김치냄새가 나도 고개 돌리지 않을 친구. 그런 친구가 근처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곁에 두는 게 오히려 손해인 친구도 있다. 매사 부정적인 친구,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거나 경쟁심을 드러내는 친구, 감사할 줄 모르는 친구가 그렇다. 그런데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 관계를 서서히 잠식해 가는 친구가 있다.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친구다.


양가감정이란 한 사람에 대해 서로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보고 싶다가도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고, 가까이하고 싶으면서도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다. 이는 다이어트 중 냉장고에서 발견한 병 콜라와도 같다. 이 감정은 가족이나 친구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주로 생긴다.


내게 그런 친구가 있다. 모든 게 잘 맞아 붙어 다니다시피 했고, 한 때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때만 되면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만나곤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그 친구가 불편했고, 떠올리기만 하면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만나려다가도 망설여졌다.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개운치 않은 마음을 만났다.


이유가 있다. 어딜 가든 그는 상석을 고집했고 무엇이든 주도하려 들었다. 다들 테이블 세팅하느라 분주할 때도, 모른 척하다 건배사는 낚아챘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땐 그냥 지나치던 것들이 하나 둘 거슬렸다.


이처럼 좋다가도 싫고, 기대하다가도 꺼려하는 나 자신이 이해되질 않았다. 복잡한 감정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감정이 모호해 쉽게 해결할 수도 없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쌓이다 보면 엉뚱한 상황에 터지기도 했다.


물론 그 원인을 친구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내게 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함께해서 문제가 된다면, 그 관계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 친구의 어떤 점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그게 그 친구의 행동 때문인가, 아니면 내 내면의 문제일까?”


소중한 친구라면 용기 내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이 때는 문제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는 게 좋다. “네가 모든 걸 주도하려 할 때 나는 불편하더라 ” “왜 모든 걸 결정하려고 하는지 궁금해”


진정한 친구라면 내 생각과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는 개선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 꺼내는 것조차 어렵거나,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변화를 거부한다면 그 관계는 조율할 필요가 있다.

상대감정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과 함께 해 좋을 건 없다. 만남의 빈도를 서서히 줄이거나, 그 관계에서 지나치게 감정을 소모하지 않도록 경계를 설정하는 것도 좋다.




인생이란 항해에서 가족이 배라면, 친구는 선원이다. 배에서 내릴 수는 없지만 선원은 교체할 수도 있다. 엄습하는 먹구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보고 싶은 곳만 바라보는 동료가 항해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친구란 함께하며 기쁨은 보강하고 슬픔은 상쇄시키는 파장과도 같다. 또한 성과나 순서 매기기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관계다. 따라서 함께하며 감정적으로 소모만 된다면 그 관계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길을 잃고 헤멜 때 곁에 있어줄 사람이 있는가? 성취에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픔에 고개 돌리지 않을,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어쩌면 그 사람은 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줄 때, 그리고 갈림길이 보일 때마다 서로 제 갈길 가기보다는 함께 생각을 나누고 성장해 가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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