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별들은 저마다의 힘으로 정교한 궤적을 그리며 곡예를 펼친다. 그런가 하면 제법 쌀쌀해진 가을바람에 샛노란 은행잎이 흩날리고, 구름은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이처럼 자연은 보이지 않는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그런데 이런 자연의 움직임을 보고 불안해하거나 괴로워하는 사람은 없다. 바람에 낙엽이 지는 건 곧 겨울이 온다는 신호일뿐, 거기에는 어떤 감정이나 의도가 담긴 건 아니기 때문이다. 구름이 흘러가는 것도 그저 바람이 밀어내서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우리 역시 우주의 일부이지만, 우리가 만들어내는 신호와 움직임은 자연현상과 전혀 다르다. 우리의 말과 행동에는 의도와 감정이 담겨 있으며,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도서관 한편에서 책을 읽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창밖에 펼쳐진 초록빛 정원이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감상을 멈추고 책 속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 순간 ‘나’는 사라지고, 오롯이 책 속 세계만이 존재한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자 사라졌던 내가 다시 돌아온다. 어떤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책에 집중하지만, 어떤 사람은 불편함을 느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저 사람이 왜 나를 보지? 관심이 있어서? 아니면 나를 평가하는 걸까?
그가 나를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면? 누군가는 가볍게 넘기겠지만 어떤 사람은 경계심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그가 마치 나의 과거까지 알고 있다는 듯 응시한다면? 어떤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겠지만, 또 다른 사람은 책을 덮고 도서관을 떠날 수도 있다.
이처럼 같은 자극에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는 마치 블랙박스처럼 어떤 신호가 입력되었을 때 그 안에서 어떤 과정이 일어나고, 어떤 감정과 반응이 생겨날지 예측할 수 없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도 장소나, 주변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달 날씨를 알아내고, 해와 달의 움직임을 계산해 달 뒤편에 우주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같은 말을 듣고도 누구는 상처를 받고,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 같은 행동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호감을, 또 다른 사람은 불쾌감을 느낀다. 신호를 보내는 사람도,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도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오해하고, 사랑에 빠지고 예상치 못한 갈등에 휘말린다. 특히 인간관계가 가정이나 직장처럼 견고한 구조 속에서 이루어질 때, 갈등은 더욱 복잡해지고 고통은 더 깊어진다. 심리학조차 관계라고 하는 블랙박스를 완전히 해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풀리지 않는 블랙박스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사실, 신호를 정확히 해석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신호와 메시지가 원활히 흐를 수 있도록 관계의 통로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정원을 가꾸기 일과 흡사하다. 물길이 막히지 않도록 손질하고, 나무가 너무 웃자라 햇빛을 가리지 않도록 가지를 치는 것처럼, 인간관계에서도 감정과 소통이 막히지 않도록 조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자기표현이다.
사소한 잡담이나 가벼운 스몰 토크조차 서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기표현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갑자기 주장부터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다 보면 감정이 상하고 오해가 생기기 쉽다.
반면에, 평소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 두면 상대가 나를 이해할 기회와 배경정보가 많아지고 불필요한 갈등도 줄어둔다. 덤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주는 포지셔닝에도 도움이 된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자. 이게 오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인간관계라는 블랙박스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 삶은 흥미롭고 다채롭다. 좋은 관계는 거창한 사건이나 대단한 뭔가 대단한 대화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평소에 부담 없이 나누는 작은 관심과 대화들이 쌓이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모델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