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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콤플렉스 벗어나기

가까운 관계에서 경쟁 다루기

by 장동혁

오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나 부장 승진했다!


반가운 소식에 축하한다고,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며 웃었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왠지 씁쓸하다. 이런 감정이 처음은 아니다. 친구 성공 소식 뒤에 찾아오는 이 불편한 감정의 정체는 뭘까?




일찍부터 우리는 비교하고 경쟁하는 법부터 배웠다. 시험성적, 대학입시, 취업, 승진까지 모든 과정이 비교와 경쟁의 연속이다. 잘하면 인정받고, 뒤처지면 조용히 잊힌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겪었고, 상처가 쌓이며 옹이가 되었다.


실패가 좌절로만 끝나지 않는다. 또다시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 자리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사람의 성공조차 편안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경쟁에 대한 PTSD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르는 사람보다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이 잘될 때 더 복잡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뭘까?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신경림-


친구사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다. 친구는 서로 닮아 있고, 가장 자유롭고 대등한 관계다. 역할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가장 순수한 인간적 유대이기도 하다.


그런 친구가 갑자기 달라져서 돌아온다면? 이질감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랜 시간 함께 길을 걷던 친구가 멀어지고, 격차로 인해 더 이상 같은 세계를 공유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상실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까운 사람 간 경쟁은 관계를 왜곡시킨다. 함께 울고 웃던 친구가 불편해지고, 전처럼 편하게 이야기 나누기 어려워진다. 경쟁은 상대를 향한 시선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꿔버린다. 친구가 성공하면 내가 초라해 보이고, 친구가 실패해야만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카인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성경 속 카인과 아벨처럼 가까운 사이의 경쟁이 더 큰 고통을 가져온다는 의미다. 특히 친구나 형제처럼 비슷한 출발선에서 시작한 관계에서는 상대의 성공이 곧 내 실패처럼 느껴져서, 관계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경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절한 경쟁은 성장의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까운 관계에서 같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경우 득 보다 실이 크다. 부모 사랑 앞에서 형제간 경쟁을 벌이거나, 인정을 두고 친구 간에 경쟁할 때 갈등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면 카인 콤플렉스를 어떻게 다루는 게 좋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경쟁을 협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경쟁 속에서는 상대의 장점이 위협으로 느껴지지만, 협력의 관점에서는 성공의 자원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회사 발표자로 동료가 선정되었을 때, 낙담해 거리를 두기 보다는 오히려 내가 협조할 부분이 없는지 물어볼 수도 있다.


가까운 사이가 경쟁자로 보이기 시작할 때 자문해 보는 것도 좋다. “내가 왜 이 친구와 경쟁하려고 하지?” “이 경쟁이 정말 필요한 걸까, 아니면 내 불안 때문일까?” “서로에게 도움이 될 방법은 없을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친구의 성공이 나의 위협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가까운 사람과의 경쟁이 괴로운 이유는, 우리는 원래 경쟁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서로 지지하고 함께 성장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주변이 잘될 때 나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이며, 더불어 살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성장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경쟁에서 벗어나, 함께 잘되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의 성공 앞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 그것이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오랜 경쟁 속에서 길러진 불안 때문이라는 걸 이해한다면,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언젠가 내게도 좋은 소식이 찾아왔을 때, 친구가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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