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뜻밖에도 그의 마음을 손쉽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시선의 방향과 거리다.
서양에서는 자기감정이나 의도를 주로 언어를 통해 전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비언어적 신호가 그 역할을 한다. 때에 따라서는 말보다는 행동이나 눈치, 또는 공간적 거리에서 속마음이 더 잘 드러나곤 한다.
오랜만에 옛 직장 동료들이 모이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5분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조금 늦게 도착한 동료가 나타난다.
그가 어디에 앉을까?
그의 자리 선택은 당신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가 될 터다. 따라서 당신은 그가 잡은 자리에 따라 반응할 필요가 있다.
만일 동료가,
"오래 기다렸어?"
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당신 곁에 앉는다면? 그는 홀(Hall)이 말한 친밀 영역대(0~60cm) 안에 있는 친구다. 당신을 편하고 친근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신체적 거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가벼운 터치조차 거리끼지 않는 사이로 맘 편히 대화를 나누면 된다.
그런데 동료가
“길이 좀 막히네...”
라고 말하며 가방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정면에 앉는다면? 관계가 나쁜 편은 아니지만 아주 친밀한 사이도 아니다. 이는 협상이나 면담 같은 공적인 상황에 적합한 포지션으로, 상대는 당신을 여전히 업무 파트너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당신과 경쟁적이거나 대립적인 관계일 수도 있다. 이 때는 개인역(60cm~120cm)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간혹,
"여기 앉아도 돼?"
라고 말하며 가까운 쪽 사이드에 앉을 수도 있다. 이 경우는 뭔가 긴밀히 할 말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그때는 상대 말과 표정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게 좋다.
드물지만, 대각선 자리 나 당신과 먼 쪽 사이드 자리에 앉으며
“음… 메뉴 뭐가 있더라...?"
하며 메뉴판부터 본다면? 당신과 거리를 두고 싶거나 불편한 감정이 든다는 신호다. 그는 당신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가 낮고 당신과 형식적인 관계 정도로 유지할 생각이다. 이때는 다른 동료가 얼른 나타나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는 눈빛이나 고개 방향, 상대와의 거리 등을 통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을 전달하곤 한다. 따라서 한국과 같이 눈치를 중시하는 고맥락 사회에서는, 이러한 비언어적 신호를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죽하면 귀를 막고 표정만 보는 게 더 정확하다는 말이 있겠는가.
만약 당신 결혼식에 연락도 없이 불참한 동료가 먼저 와 있다면?
당신은 어느 자리에 앉을 것 같은가? 굳이 거리를 좁혀가며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좋지만, 불편을 감수해 가며 감정을 소진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