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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명약

연을 쫓는 아이에서 본 인정의 효과

by 장동혁
”그래, 그걸 라힘 아저씨에게 드려라. 나는 준비하러 위층으로 가마“ 그 순간에는 내 몸속의 혈관을 모두 열고서 그에게 물려받은 피를 모두 쏟아버리고 싶었다.”
-할레드 호세이니 <연을 쫓는 아이>-


겨울이 찾아와 논밭이 얼면 우리는 산으로 몰려갔다. 닥나무 껍질을 벗겨 팽이채를 만들고, 팽이를 돌리다 싫증 나면 연을 들고 큰길로 나갔다. 맞바람을 뚫고 달리다 보면 연은 어느새 하늘 높이 떠올랐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전통놀이가 되살아난 건, 아름다운 풍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어느 나라 이야기를 읽으면서부터였다. 그 나라를 떠올리면 황량한 벌판과 험준한 산악, 그리고 얼굴을 가린 채 총격을 벌이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프가니스탄이다.


하지만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을 새롭게 보게 될 창을 열어주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전쟁과 테러가 일상인 우범국가가 아니었다. 그곳에도 우리처럼 평범한 일상이 있었고, 아름다움 풍속들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린 시절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을 갈구하는 소년이 있었다.




주인공 아미르는 유복한 집에서 자랐지만, 한 가지가 늘 부족했다. 아버지의 인정이다.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해도 부족할 판에, 늘 친구이자 하인인 하산과 나눠야만 했다. 아버지는 하산을 각별히 아꼈고, 어린 아미르는 혼란과 질투 속에서 자란다.


그런데, 이게 꼭 아미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인정은 비타민과 같아서 없다고 해서 못 사는 건 아니지만, 행복해질 가능성은 낮아진다.


아기의 첫울음이 소중한 생명체로서 "존재의 선언"이라면, 부모가 아기에게 미소를 짓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주는 순간, 그 아이는 처음으로 인정받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처음부터 인정받으며 자라길 바란다. 하지만 세상 빛을 보기도 전에 생명이 부정당하기도 한다.


인정에 대한 결핍과 투쟁은 이후로도 계속된다.

과거, 원하는 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여성이 부정당했고, 지금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우리는 부정을 당한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부정받다 보면 점점 자신을 드러내는 것조차 주저하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칭찬과 인정을 혼동한다는 점이다.


“너 정말 잘했어!” "김대리는 역시 잘해!"

이런 말들은 인정 같지만, 사실 칭찬이다. 칭찬에는 기준이 있다. 기준을 충족하면 칭찬받지만, 그러지 못할 때 칭찬은 사라지거나 비난으로 바뀐다. 반면, 인정에는 기준이 없다.


“오늘 하루 힘들었겠다.”

“네가 화가 난 게 이해 돼.”

“그럴 수도 있겠다.”


이처럼 인정은 상대의 감정과 욕구,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칭찬은 평가하는 사람에게 주도권이 있지만, 인정은 받는 사람이 주체다. 그래서 칭찬을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뭔가 불편한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인정을 받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존감도 올라간다. 칭찬과 인정은 어떤 면에서, 정제당이 들어간 음식과 천천히 분해되며 당이 되는 음식의 차이와도 같다.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끊임없이 성취를 갈망하거나 과도한 경쟁심을 보이거나 반대로 자기 비하와 회피에 빠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친다. 직장에서 상사의 칭찬을 갈구하거나, 연인에게 과하게 집착하거나, SNS에서 ‘좋아요’ 수를 비교한다.


그러다 안되면 아예 인정받기를 포기하고, 관계를 피하거나 감정을 숨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 오는 월요일 아침,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가?

“여태 안 일어나고 뭐 해? 노랑차 왔잖아, 얼른 유치원 가야지!”

이 순간 아이는 감정이 부정당한다.


반면,

“월요일인데 비까지 오니까 가기 싫은가 보구나.” "엄마랑 더 있고 싶구나"

이렇게 말하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이해받았다고 느낀다. 인정받은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결국 더 건강한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인정은 단순한 공감과는 다르다. 상대의 감정을 읽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감정을 존중하는 행동까지 포함한다. 피곤해 보이는 연인에게 “오늘 힘들었겠다”라고 말한 뒤,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는 것. 우울해 보이는 친구에게 “무슨 일 있어? “라고 묻고,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


작은 차이 같지만, 이런 순간들이 모이면 관계는 달라진다. 무엇보다 단단한 행복의 발판이 만들어진다.




연을 쫓는 아이에서 아미르는 아버지 인정을 받기 위해 친구인 하산에게 몹쓸 짓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평생을 방황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에서 그는 깨닫는다. 진정한 인정은 타인에게서 강제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줄 수도 있는 것임을.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평가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할 때, 관계는 더 깊어지고 자유로워진다.


통장 잔고가 충분해야 든든하듯 ‘인정 계좌’도 풍족할수록 관계는 안정적이다. 특히 어린 시절 받은 인정은 복리처럼 불어나지만, 공백은 성인이 되어도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인정에 목말라하며 끊임없이 나 좀 봐달라고 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피곤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계의 명약이 있다면 하나 소개해 달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 게 있다면 인정일 가능성이 높다. 부부싸움이 벌어질 때 "나 때문에 당신 속이 많이 상했구나!" 이 한 마디면 된다. 그게 뻔히 보이는 데도 인정해주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서로를 평가하는 대신 인정할 때, 더 높이 날 수 있다. 관계를 통해 함께 떠오를지, 아니면 바닥에 떨어져 바람에 날릴지는 인정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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