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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한 어른이 의지를 보일 때

애착관계의 비밀

by 장동혁
제대로 성숙해 독립하도록 만드는 것,


양육의 궁극적 목적이다.


문명이라는 대양도 들여다보면, 결국 양육의 잔물결로 이루어져 있다. 완전히 무기력한 생명이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 그 과정은 기적에 가깝다. 그 기적을, 신은 부모에게 맡겼다. 이때 쥐어준 게 애착관계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부모와 애착관계를 맺어 세상을 배워 나간다. 그런데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부모가 성숙해야 한다는 점이다. 성숙할 기회를 놓쳐버려 어른아이로 남은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는 성숙을 이루고 독립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클레어 키건은 <맡겨진 소녀>에서, 한 소녀의 눈을 통해 애착관계의 비밀을 보여준다.




아내 출산일이 다가오자 아빠는 딸을 먼 친척 집으로 보낸다. 소녀가 맡겨지던 날, 차로 아름다운 풍광 속을 달리면서도 아빠는 말 한마디 건넬 줄 모른다. 킨셀라 부인이 건네준 루바브 단에서 루바브가 흘러내려도 주워 담을 생각도 못한다.


거기다 모든 게 낯설어 쭈뼛대는 딸을 두고, 아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린다. 소녀의 옷가방과 함께. 아빠는 그렇게 무심하고 무책임하다.


그 반대편에 킨셀라 부부가 있다. 그들은 짐짝처럼 남겨진 소녀를 조심스럽게 맞아들인다. 그리고 세심하게 살핀다. 그러자 버려진 장난감처럼 구석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소녀의 자아가 눈을 뜬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낯선 세계를 바라본다.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소녀는 뜨듯하고 축축한 느낌에 잠에서 갰고 뭔가 지독히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긴장한 나머지 자다가 매트를 적신 것이다.


모든 게 끝났음을 직감하고 환불처분만 기다리던 소녀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느닷없이 아줌마가 습기 찬 방을 내준 자신을 탓한 것이다. 그렇게 소녀는 수치심에서 구원을 얻는다. 세탁한 매트에 한쪽 다리를 들려던 개만 공연히 야단을 맞는다.


다리가 길고 유독 말수가 적은 소녀에게 킨셀라 씨는 우편물 가져오기 게임을 통해 다가간다. 그렇게 소녀는 집안일과 마을의 행사에 참여하며 연대감을 경험한다.


막내가 생겼다는 소식과 함께 소녀는 집으로 돌아간다. 낯설어져 버린 익숙함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소녀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아저씨 어깨너머를 보자 아빠가 보인다. 손에 지팡이를 들고 흔들림 없이 굳세게 다가온다. 나는 손을 놓으면 물에 빠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저씨를 꼭 붙든 채 아주머니가 목구멍 속으로 흐느끼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소리를 듣는다.'
...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아빠가 달라졌다. 그토록 무심하고 무책임하던 아빠가 강한 의지를 보인다. 그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딸에게서 위험한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건 진짜 어른들이 가진 따뜻하고도 안전한 권위다. 이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 아빠는 딸을 맡겨지기 전의 세계로 끌고 가려한다.


딸이 감기에 걸리게 했다며 킨셀라 부부를 탓하는가 하면,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딸을 다그친다. 그리고는 킨셀라 부부에게 달려가 애도 의식을 치르는 딸을 노려본다.


하지만 소녀도 더 이상 아빠 처분만 기다리는 딸이 아니다. 비난과 강압의 상징인 지팡이를 들고 흔들림 없이 다가오는 아버지에 소녀는 저항한다. 그리고는 아빠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낸다. 자신을 치유와 성장으로 이끈 진짜 어른들을 해치지 말라고. 그리고 더 이상 나는 그저 맡겨진 존재가 아닌 의지와 바람이 있는 인격체라고.


전에 볼 수 없던 대항의지counterwill다. 자기를 강압으로 대하는 상대에 대해 본능적이고 자동적으로 저항하려는 힘이다.




이처럼 미성숙한 어른은 엉뚱한 데 의지를 보여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이는 상대방이 보내는 관계 신호를 읽어내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역량이 부족해서다. 게다가 충동적인 감정을 다른 관심사와 버물려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데 부족해서다. 미성숙한 어른이 관계 맺기에 서툰 이유다.


실은 이때 아빠가 보인 의지는 의지라기보다는 본능이나 욕구에 대한 집착에 가깝다. 집요하다는 것을 빼고는 의지와 닮은 점이 없다. 집착은 무의식적으로 나와 상대를 지배하려들지만 의지는 자신을 통제할 줄 안다. 소녀 아빠가 보인 행동은 강한 의지 같아 보이지만 실은 의지의 부재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자녀가 느낄 감정은 혼란, 당혹, 답답함, 울분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이는 안정적으로 애착관계가 만들어지는 걸 방해해 아이의 정서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또한 애착관계는 극성이 있다. 새로운 애착관계가 생기면 기존 관계를 밀어낸다. 두 관계 사이에서 혼란이 일기 때문이다. 멀리서 다가오는 또래를 보고 아이가 엄마 손을 슬쩍 놓는 이유다. 이런 현상은 불륜과도 같아 애착불륜이라고도 부른다.


특히 감정 다루기에 서툰 아이들이 애착경쟁을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오직 하나의 애착관계에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소녀 또한 킨셀라 부부와 유대감을 느낄 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낀다.


‘난 아빠가 있는데...‘


다행히도 애착관계는 대체가 가능하다. 양육자가 사라질 때 생존을 위해 새로운 대상과 애착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짧았지만 킨셀라 부부는 소녀에게 훌륭한 애착대상이 되어주었다.


한 조각 햇살이 비치자 시들어가던 생명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광경은 경이롭다. 한편으로 킨셀라 부부가 떠난 뒤 또다시 소녀에게 드리울 그늘이 걱정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떠나는 소녀에게 킨셀라 부부가 챙겨준 애착 소품들이 그녀 곁에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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