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뒷모습
우리 남매에게는 여수에 관한 오래된 노래가 있다. 잊고 있던 노래가 어느 날 기억 속으로 날아들었고, 하루를 처치하기 급급한 나에게 녹진한 삶의 향기를 전해주었다. 어린 시절 잊을만하면 낡은 보따리와 함께 등장했던 분 이야기다.
그을린 얼굴에 수숫대처럼 마른 그분을 우리는 여수아줌마라 불렀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분 출입이 뜸해지더니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한들 누구 하나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봄 기운처럼 찾아온 아줌마의 기억에 우리는 모두,
"아, 여수아줌마..."
를 외쳤다.
아줌마만 다녀갔다 하면 우리 남매는 풀 방구리 쥐처럼 다락을 오르내렸다. 부옇게 먼지 쌓인 책이나 철 지난 옷가지들 사이로 반가운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세간들 사이로 마른 홍합과 멸치, 새우처럼 평소 손에 쥐기 힘든 주전부리가 쌓여 있었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돌처럼 단단한 홍합을 침으로 녹여가며 씹었다. 한참을 씹어 말캉해지면 달큼한 향이 올라왔다.
돌이켜보면 그분은 보따리를 들고 내륙을 돌며 건어물을 팔던 행상이다. 터치 몇 번으로 알래스카 산 연어가 식탁에 오르는 요즘으로서는 상상조차 힘든 풍경이리라. 어쩌면 역사책 한 구석에서나 만날 법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교통사정 좋지 않던 시절 아줌마 보따리는 우리 가족의 건강 식탁이었던 셈이다.
힘겹게 보따리를 내려놓은 아줌마는 큰 숨부터 돌렸다. 눈치껏 부엌으로 달려가 물 한잔 떠다 드린 뒤 우리 관심은 온통 보자기로 향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을 이기지 못한 아줌마는 환하게 웃으며 보자기를 풀었고, 펼쳐진 보자기 위로는 건강한 햇살과 짭조름한 해풍을 머금은 해산물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어서 마주 앉은 아낙의 이야기보따리도 열렸다.
어서 빨리 홍합맛을 보고 싶던 우리는 마당에 늘어선 해바라기 그림자 길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날은 여우비가 마당을 때렸고, 어떤 날에는 싸라기눈이 마루 위를 굴렀다.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던 여인들의 대화는 "인자 가야 쓰겄네..."와 함께 끝이 났다.
그 시절, 마루 위로는 얼마나 많은 삶의 이야기가 쌓였을까. 하나 아줌마 무릎 짚고 일어나기만 고대하던 우리 귀에 삶의 실체가 담긴 이야기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분 출입이 잦아든 게 언제부터인지 기억에는 없다. 새집을 지어 이사할 무렵 일수도 있고,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면서부터 일수도 있다.
무슨 까닭인지 한 때 우리와 연을 맺은 여인의 삶이 궁금해진다. 이른 나이 남편을 잃고 시작한 일이라고 한다. 치미는 천불을 바깥바람으로라도 식혀야 했었다고도 한다. 어쩌면 남겨진 자식들 벌어진 입이 무엇보다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아쉽기는 어머니도 한 가지인가 보다.
"그땐 나도 어렸지, 지금 같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더 나눌 텐데"
어둑새벽 곤히 잠든 아이들 이불을 살핀 뒤,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집을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는 삶의 무게로 젖은 보따리를 열차 안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전주역에서 허기진 배를 국밥으로 달랜 뒤 진안 행 버스에 올랐으리라. 다녀갈 때마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굽이치는 재를 넘으며 그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바람이라도 치는 날에는 그 짐을 지고 우리 집까지 어떻게 왔을까. 이제야 삶의 무게를 홀로 진 여인의 고된 여정이 그려진다.
파란 대문이 열리고 시원한 미소가 들어선다. 냉큼 나가 보따리부터 받아 든다. 이어 누군가의 체온이 필요했을 메마른 손을 잡는다. 뜻밖의 행동이 싫지 않은 눈치다. 이내 펼쳐진 보자기 위로 삶의 애환이 터져 나오고, 눈을 맞춘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엿한 ‘봄’ 임에도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전히 겨울인 2월과 제법 봄 맛 들기 시작하는 4월에 치어서일까. 마치 3월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우리 가족에게 작지 않은 의미를 남긴 분에 대한 추억이다.
늘 그렇듯 진짜 소중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게 지나간 뒤에야 그 의미를 깨닫는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소중한 것의 뒷모습만 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