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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에게 없는 한 가지

파국을 막는 작은 싸인, 유화적 제스처

by 장동혁
“어느 쪽으로 돌아서도 그에게 단검 공격이 빗발쳤다…."
플루타르코스(46년경~120년), 『카이사르의 일생』


기원전 44년 3월 15일, 서양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날 중 하나다. 고대 로마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암살당한 것이다. 그것도 백주 대낮에. 당시에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양에서는 지금도 3월 15일을 The ides of March라 부르며 카이사르의 암살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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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는 8년 만에 갈리아를 정복하고 본국으로 귀환한다. 성대한 개선식을 기대했건만, 원로원은 그에게 최종권고를 보낸다.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오라”

너무나도 커져버린 그의 위세에 원로원이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루비콘 강을 건넌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희대의 명언과 함께.

이 순간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불리한 정세 속에서도 폼페이우스 세력을 물리치고 내전에서 승리한 그는, 이제 로마에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탁월함’이란 단어가 마치 그를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라는 간결한 보고서가 그의 삶을 대변한다.

그는 군사적 능력, 결단력, 정치적 재능, 카리스마까지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탁월함이 그를 역사 속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카이사르는 생사고락을 같이한 병사들뿐만 아니라 제국의 시민들까지 매료시켰다. 그러나 그의 정적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원로원 파는 그를 독재자로 인식했고, 그의 추진력과 결단력은 그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혁을 성공시키겠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방대해진 제국을 통치하기엔 원로원 제도가 수명이 다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개혁 의지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미 암살에 대한 경고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자신이 겪어온 수많은 역경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불사조 같은 존재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이런 태도는 정적들의 퇴로를 막았고, 그들에게 최후의 선택만을 남겨주었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최우선으로 움직인다.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느끼면 이를 드러내며 방어하고, 두려움은 적대감을 낳는다. 원로원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줄어드는 걸 보며, 그들은 극단적인 두려움과 절망에 빠졌다.


현대 심리학은 두려움은 적대감의 씨앗이며, 극한의 대치 상황에서 유화적 제스처가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작은 행동 하나로 상대의 불안을 줄이고 신뢰를 쌓아, 치명적인 대결을 피할 수 있다. 너와 나의 대결을 우리와 문제의 대결로 전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대한 것을 사과하거나 후회하는 거다. “아까 내가 너무 흥분했었나 봐, 책상을 치며 말한 거 미안해” 상대방 입장을 인정하거나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법도 있다. “네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 해”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거나 상대에게 솔직하게 의견을 구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지?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해결하면 좋을까?”


이 짧은 한 마디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긴장된 대치를 협상 테이블로 바꿀 수 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일 카이사르가 원로원을 향해 유화적 제스처를 썼다면 어땠을까.


그는 자신의 개혁이 가져올 변화를 원로원에서 설득하며 그들의 불안을 줄일 수도 있었다. 원로원의 저항을 무시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며 타협점을 찾았더라면 역사의 흐름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탁월함에 압도된 나머지, 정적들의 두려움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개혁이 옳다는 확신 아래, 반대 세력을 설득하기보다는 강하게 밀어붙였다. 결국, 그것을 파멸로 여긴 정적들은 자신의 숨통을 죄어오는 적에게 최후의 반격을 가했다. 그것이 바로 단검이었다.


불세출의 영웅 카이사르는 자신의 능력 하나로 모든 난관을 극복해 왔다. 어쩌면, 그런 그가 평범한 인간들의 가련한 처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오만함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이 패턴은 역사 속에서, 그리고 오늘 우리 삶에서도 무한 반복되고 있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리더들이 상대의 두려움을 간과할 때, 결국 파국이 찾아온다. 반면, 상대방의 불안을 다독이고 신뢰를 쌓은 리더들은 오래 살아남는다.


마당에서 격하게 장난을 치던 반려견이 갑자기 발라당 누워 배를 드러내는 때가 있다. 이는 상대를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포즈를 보임으로써 상대를 안심시키려는 본능이다. 때로 동물들의 본능적 행동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가 숨어 있다. 상대를 굴복시키기보다 안심시키는 것이야 말로, 가장 강한 자만이 취할 수 있는 여유이자 생존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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