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now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오기
상대방 말의 마침표 보는 일 보다 힘든 게 있을까?
오늘도 나는 대화를 시작하기 전 굳게 다짐한다. 이번만큼은 꼭 여유로운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어주겠노라고.
하지만 대화가 무르익고, 누군가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그 다짐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덤불 속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먹잇감을 노리는 한 마리 맹수가 된다. 상대방 말을 자르고 들어갈 기회를 재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듣는 척하지만, 반박할 거리나 논점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미소를 짓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상대 말을 어떻게 끊고, 자연스럽게 들어갈지 계산이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말은 흩날려 사라진다.
이처럼 제대로 듣는 일은 인내가 꽤 필요한 기술이다. “경청은 노동이다”라는 말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상담사에게 지불하는 상담료도 결국 그 노동의 대가다.
그렇다면 남의 말 듣는 일이 왜 그토록 힘든 걸까? 그냥 귀만 열어 두면 될 것 같은데. 가장 큰 이유는 ‘다 알고 있다’라고 하는 착각 때문이다.
‘I Know!!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러니까 그만! 이제 내 차례라고!’ 상대 말이 늘어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외침이다. 가까울수록 이 목소리는 더 빨리, 더 강하게 튀어나온다. 그러다 결국 상대방 말의 마침표를 보지 못하고 잘라버리고 만다.
자녀와의 대화에서 이 증상은 더욱 심해진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자녀를 보며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No Way!! 내가 너의 과거를 알고, 현재도 알며, 심지어 미래까지도 아는데 무슨 말을 더 하려는 거야?’
자녀 인생 전부를 안다고 여기니, 헛소리라고 생각되는 말을 듣는 게 지루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정말 우리가 타인을 다 아는 게 가능한가?
잠깐만 생각해 봐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지 몇 마디 말로, 작은 우주라고 하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다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은 우리 뇌가 경험을 바탕으로 추측한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상대를 다 안다고 착각하는 걸까?
우리는 자기 생각에는 쉽게 접근하지만, 상대방 머릿속은 들여다볼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은 깊고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상대 생각은 단순하고 예측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가 아닌 몇 마디 말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로 취급하게 된다.
제대로 듣는 것은 읽거나 쓰는 일보다 어려운 기술이다. 그냥 귀를 열고 고개를 끄덕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적극적 경청이란,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동기와 감정, 의도까지 읽어 내는 과정이다. 많은 경우 말의 내용보다 표정, 어조, 톤에 진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경청을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서둘러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태도다. 이것이 상대 말을 성급히 판단하고 끊어버리는 주범이다. 해결책을 주겠다는 조급함 속에서 우리는 상대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놓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서툰 조언이나 섣부른 위로를 건네게 된다.
상대가 나에게 해답을 기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보다는 누군가의 지지를 얻어 확신을 가지고 결정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모든 답은 이미 자신에게 있다”란 말도 있지 않은가.
둘째, 상대도 나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상대가 하는 말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다 결국, 상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놓쳐버린 채 내가 듣고 싶은 대로만 듣게 된다.
대화중 고구마 백개 먹은 듯 답답함이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I Know"라고 하는 착각에 빠져 있지 않은지부터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