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크라잉넛이 보여준 저작권의 미래: 공존과 상생의 정원

by 장동혁


룩! 룩! 룩셈부르크, 아! 아! '아리헨티나',
자! 같이 펼쳐보자 세계지도!


나라 이름을 유쾌하게 외치는 이 노래는, 인디 밴드 크라잉넛의 '룩셈부르크'다. 익살맞은 가사는 사람들 이목을 끌었고,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마저 친숙하게 만들었다.


세상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것들을 무대로 올려, 진심을 담아 노래해 온 크라잉넛. 그들 음악은 대중의 마음을 두드렸고, 마침내 방송과 광고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 나간 것은 아니다. 90년대 초, 지하 공연장에서 ‘말 달리자’를 외칠 때만 해도 반응은 싸늘했다. “영국 펑크록의 아류”라는 지적에, “그러면 우리는 조선펑크다”라며 호기롭게 받아친 지 30년.

지금, 그들은 한국 인디 록의 역사다.


놀라운 건, 단 한 번의 멤버 교체 없이 30년을 함께해 왔다는 점이다. 개성 강한 뮤지션들이 이토록 긴 세월을 함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서로를 잘 알기도 하고, 화해하기 귀찮아 잘 안 싸워요


농담처럼 들리는 이 말속에는 세월에서 우러난 진한 동료애가 깃들어 있다.


동행의 철학


크라잉넛은 작곡자가 저작권 수익을 독점하지 않는다. 멤버 모두를 창작자로 인정해 수익을 균등하게 나눈다. 이들에게 저작권은 소유의 수단이 아니라, 연대와 동행의 증표인 셈이다.


이 철학은 무대 밖에서도 이어진다. 독립군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에서, 그들은 저작권을 국가에 기증했다.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압록강 행진곡, 크라잉 넛


민족의 기개와 정신이 담긴 창작물을 공동의 기억으로 남긴 이 선택은, 저작권을 책임 있는 공유로 바라본 귀한 사례로 남았다.


또한 크라잉넛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비롯해 여러 구호단체에 재능과 수익금을 꾸준히 기부해 왔다. 매년 '크라잉넛쑈'를 열어 신인 밴드의 성장을 돕기도 한다. 팬들의 사랑을 사회로 되돌리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이들에게 저작권은 수확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라는 정원을 더욱 풍성하게 가꿔주는 물길과도 같다. 책임감을 갖고 권리를 행사하되, 그 결실을 다시 공동체로 되돌리는 태도. 바로 이 순환의 감각이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한다.


나눔 속 질서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저작권을 느슨하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음악은 나눌수록 풍성해지지만, 무분별하게 소비되어선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원칙이다.


2013년, 한 밴드가 크라잉넛의 음원을 무단으로 사용한 일이 있었다. 반주만 쓰기로 한 것을, 보컬이 포함된 음원을 틀고 그걸로 음반까지 출시한 것이다. 이에 크라잉넛은 법적 대응에 나섰고, 결국 권리를 되찾았다.


이 사건은 단순한 분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창작 활동의 질서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들은 권리를 무기로 삼지 않았다. 대신, 창작 생태계를 보호하는 울타리로 삼았다. 음악계를 위해 기꺼이 나누되, 그만큼 신뢰와 책임도 따르기를 바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제도 너머, 사람


우리 저작권법의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제강점기, 일본 법제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1980년대만 해도 청계천에는 ‘빽판’으로 불리는 불법 복제 음반이 넘쳐났다. 소비자들은 책임감 없이 소비했고, 사회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변화는 1990년대, 세계화 물결 속에서 시작되었다. 대표적 사례가 가수 신유미 씨의 소송사건이다. 그녀는 자신의 보컬이 무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획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 판결은 2차 저작물의 창작자에게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 최초 사례로 남았다.


이처럼 우리 저작권법은 창작자와 소비자 권리를 지키기 위해 균형을 추구해 왔다. 그런데 지금, 그 균형이 도전과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AI와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창작의 주체와 방식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시대, 기존 저작권법은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보호하고, 어디까지 공유할 것인가?


이런 흐름 속에서, 단속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법이 뛰면 기술은 날아간다는 것을. 그래서 제도는 언제나 변화의 그림자를 쫓는다. 그리고 그 틈을 메우는 건 사람이다.


결국, 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중요한 것은 공존의 감각, 윤리적 선택, 그리고 창작과 그 결과물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다. 이것이야말로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발판이다.


저작권법의 미래


이 점에서 '크라잉넛'의 실천은 저작권법의 미래를 그려보는 단초가 된다.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공동체를 우선하는 태도. 이는 저작권이 단순한 보호장치를 넘어 상생의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지향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야 말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저작권 문화의 씨앗일지 모른다.


창작자가 책임 있게 권리를 행사할 때, 대중은 윤리적 소비로 화답한다. 그 순환 속에서 창작의 결실은 개인의 소유물을 넘어 함께 가꾸는 정원의 열매가 된다. 이 순환에 숨결을 불어넣는 토대가 저작권법이며, 크라잉넛은 그 순환을 실천으로 잇고 있다.


오늘도 그들은 어디선가 외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우리가 함께 있다면.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크라잉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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