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uld가 많은 그대에게

관계를 무겁게 하는 기준 가지치기

by 장동혁

조카가 중학생이던 시절이었다. 방학만 되면 조카는 우리 집으로 와, 방학 끝날 때까지 지내곤 했다. 사춘기라, 동생이나 부모님과 부딪히며 스트레스가 많았었나 보다. 마트 시식코너를 돌며, 종종 말하곤 했다.

삼촌, 여기는 스트레스가 제로예요!

한창 예민할 때, 우리 집은 조카에게 작은 피난처였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음껏 먹고, 쉬고, 밤 새 친구들과 통화도 하며 지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흐뭇했다.


한 달이 지나, 삼촌 사는 데로 전학 오겠다고 떼쓰는 조카를 달래 집으로 보냈다. 도착할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는데, 웬일인지 받질 않는다. 걱정이 되어 다음 날 다시 거니, 이번엔 받았다.


“어제 왜 전화 안 받았니?”


조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TV에서 재밌는 거 하고 있어서요

순간, 발끈했다.

‘걱정돼서 전화했는데, TV 때문에 안 받다니.’

하지만 얼마 안 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꼭 받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내가 왜 서운한 걸까?’ 조카는 약속을 어긴 것도, 무례하게 군것도 아니었다.


단지 ‘삼촌 전화니까 받아야 한다’는 내 마음속 당위, 즉 슈드(should)가 조카를 위반자로 만든 것이었다.


우리 안에는 수많은 슈드가 자란다.

• 연인이라면 바로 답장해야 한다.

• 친구라면 알아서 챙겨야 한다.

• 방은 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 내 글엔 ‘좋아요’를 눌러야 한다.


이 기준들은 약속도, 합의도 없이 혼자서 만들어낸 것들이다. 마치 금융에서 이익만을 좇아 만들어지는 ‘파생상품’처럼.


금융상품도 원래는 계약과 책임이 명확한 안전한 구조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이익을 좇다 보니,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이 생기고, 그것이 위험을 키우며 결국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관계도 그렇다.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와 같은 도덕적 의무가 개인을 거치며 “부모 말을 따라야 한다” “먼저 연락해야 한다”는 식으로, 실체 없는 기준으로 변질된다.


그러다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서운해지고, 실망하게 된다. 내 안의 슈드들이 관계를 무겁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관계에는 계약서가 없다.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조율해 가며 관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한쪽만의 슈드가 일방적으로 작동하는 순간, 관계는 위험해진다.


그런 슈드들은 관계를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기보다는, 덩굴처럼 얽히고설켜 서로를 지치게 만든다.


상대 때문에 서운하고 화가 나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 서운함이 지켜야 할 약속이나 책임을 상대가 어겨서일까? 아니면 나만의 슈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의무는 계약에서 생기고, 서운함은 기대에서 생긴다. 기대가 많을수록 실망도 크고, 슈드가 많을수록 관계는 불편해진다.


이제는 마음속 슈드의 가지치기를 할 때다. 관계가 짙고 푸르게 자라려면, 불필요한 당위와 기대의 가지부터 먼저 쳐내야 하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래도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