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정직한 거울

피드백과 관계 메타인지

by 장동혁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정색을 했다.


“너는 가끔씩 ‘끙...’하고 신음 소리를 내더라.”


내게는 그런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에 걸려, 다른 이에게 물어보니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그날 이후, 나는 내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핸들을 크게 돌릴 때, 숨을 잠깐 참았다 내쉬며 나오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낸 건 분명 나다.

남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나, 그런 그를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그동안 말없이 그 ‘소음’을 들어야 했을 지인들을 떠올리니,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그들이 말한 '나'는, ‘조하리 창이’ 말하는 ‘맹점의 나’,

그토록 오래 함께 살아왔지만,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나'다. 아마 타인의 눈을 빌리지 않았다면, 평생 모른 채 살 수도 있었다.


조하리 창과 맹점의 '나'


심리학자 러프트와 잉햄은 '인간의 자기'를 네 가지 창으로 설명한다.


1. 개방 창 – 나도 보고, 타인도 보는 나

2. 은폐된 창 – 나만 보고, 타인은 보지 못하는 나

3. 맹점의 창 – 타인만 보고, 나는 보지 못하는 나

4. 미지의 창 – 나도 타인도 보지 못하는 나


사건은 주로 보이지 않는 ‘맹점’과 ‘미지’의 창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이 창을 밝히는 일에서 자기 객관화는 시작된다.


자기 객관화: 어둠을 밝히는 일


자기 객관화는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는 능력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쯤 있는지,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를 아는 힘.


예전처럼 삶의 궤도가 고정되고, 선택할 일이 많지 않던 시대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능력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회는 복잡해졌고 관계망은 촘촘하고 섬세해졌다.

자기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시행착오로 인해 소중한 자원들 잃게 된다.


만일 내가 녹음 작업에 참여해 ‘끄응...’ 소리를 자꾸 낸다고 해보자. 다음 중요한 녹음에서 내가 빠질 수도 있다. 이유도 모른 채.

더 곤란한 건, 내가 누군가의 특이한 버릇을 지적할 때다. 정작 나도 그런 줄 모르면서. 그 순간 나는 내로남불의 주인공이 된다.


이 시대, 자기 객관화는 자기 성찰을 넘어, 생존의 기술이며 관계 유지 전략이다.


피드백: 아프지만 정직한 거울


자기 객관화를 가능케 하는 유용한 도구가 있다. 피드백이다. 하지만 피드백은 불편하다. 전에 내가 “지금 나 놀리는 거야”라며 정색했듯, 방어가 먼저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피드백은 내가 보지 못하는 나를 가장 정확히 비춘다.


피드백을 무시한다는 건, 표지판을 무시 한 채, 크루즈 기능만 믿고 달리는 차과 같다. 거울을 외면하면, 계속 같은 자리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다.


관계 메타인지: 자기 객관화의 확장


학습에서 메타인지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능력”이라면, 관계의 메타인지는 “내가 지금 어떻게 보이고,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이는 단순한 매너나 사회성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전략이자, 관계를 살리는 기술이다.


나를 아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


살아간다는 건 결국 선택과 관계의 연속이다. 관계의 질과 효용성은 ‘내가 나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오늘도, 농담 한 마디나 조용한 표정 속에 피드백이 담겨

당신에게 건네졌을지도 모른다.


잘 보이지 않는 그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자. 어제와는 다른 낯선 내가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가 옆으로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