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입, 네 개의 귀

말 씨가 피어나는 곳

by 장동혁

엘리베이터 문에 아이가 끼이는 사건을 조정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주위를 살피지 않고, 급하게 ‘닫힘’ 버튼을 누른 탓이다.

엘리베이터 기능을 이용한 것뿐이라고 주장했음에도,

일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150만 원의 합의금을 배상해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습관처럼 문을 살핀다.


그러다 어느 날, 관리소장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마침 잘됐다 싶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엘리베이터 끼임 사고가 종종 나더라고요.”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재빠르게 선을 그은 것이다.


“우리 아파트는 센서가 작동해서 그럴 일 없어요.”


순간 당혹스러웠지만, 말을 이어갔다.

“주민 중에도 주변을 안 보고 급하게 문을 닫는 사람이 있던데요.”


나는, 평소처럼 눈을 크게 뜨고, "그래요?"하는 반응을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결 같이, “우리는 센서가 작동해서 사람 있으면 문이 멈충다.”만 반복했다.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건, 나 또한 엘리베이터 사고 이야기만 반복했다는 점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말은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 심리학자 ‘슐츠 폰 툰’은, 우리가 하는 말에는 네 가지 층위가 있다고 말한다. 말은 기주(基酒)에 여러 재료가 섞인 칵테일처럼 겹겹이 섞여 전달된다.


1. 사실: 전달하려는 정보

2. 자기 개시: 말하는 이의 생각이나 감정

3. 관계: 상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4. 호소: 상대에게 바라는 행동이나 반응


그리고 상황에 따라 그 방점이 달라진다.

그날, 나는 단지 사실을 전하려던 게 아니었다. 경험을 나누고, 안부도 묻고, 조심하자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장은 오직 '사실의 층'으로만 응답했다. 그러다보니 대화가 청문회처럼, 건조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말귀는 그냥 열리지 않는다


“법대로 합시다”

이 마리 정말로 소송하겠다는 뜻일까?


그보다는 억울함을 토로하는 감정 표현,

더는 보기 싫다는 관계 단절의 신호,

혹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달라는 호소일 수도 있다.


이 걸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로펌을 찾는다면,

말의 층위를 놓친 결과다.

말은 언제나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고,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해석의 초점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말귀를 듣는 능력


회의 운영방식에 대한 토론 시간. 팀원이 “회의를 돌아가며 진행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다. 그러자 팀장이 “문제 있어? 지금도 잘 돌아가고 있잖아”라고 답한다면? 팀원은 개선(사실)을 말했지만, 팀장은 도전(관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처럼 말의 층위가 빗나날 때, 대화는 어긋난다.

그래서 말하는 이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듣는 사람은 그것이 어떤 층위에서 나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능력을 우리는 ‘말 귀 알아듣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 말의 마침표가 찍히기도 전에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진심으로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원하는 것을 직접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에둘러 말한다.

상대 말 스타일을 이해하는 것도 관계의 지혜다.


말의 씨앗은 마음밭에서 피어난다.


그날, 어디론가 향하는 소장을 붙잡기보다는,

커피라도 한 잔 들고 소장실을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그 자리라면,

내 말의 속뜻도 전해지고,

그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말의 씨앗은 입에서 나오지만, 그것이 꽃을 피우는 곳은 상대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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